▲ 이수연 상임이사가 코로나19 당시 브라이언 문과 화상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이수연
<태안신문>이 해외 기획취재를 통해 우운 선생의 선양사업에 군불을 지피고 있을 무렵, <태안신문>의 보도를 유심 있게 바라본 이가 있었다. 우운 선생 부부의 유해봉환이 가능하도록 판결이 나오기까지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이수연 전 태안부군수다. 현재 우운 선생의 선양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이 상임이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로 날아가 체류하는 동안 가장 먼저 맨티카 소재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있는 우운 선생의 묘지를 참배했다.
하루라도 빨리 우운 선생을 고국으로의 귀환을 바랐던 이 상임이사의 염원은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와 우운 선생의 손자인 브라이언 문(고 윌리엄문의 차남)이 힘을 보태면서 더욱 현실화됐다.
유해봉환의 가장 큰 걸림돌이 유족들의 동의가 관건인데,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였음에도 브라이언 문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교감을 가지면서 설득에 나섰다. 결국 브라이언 문과 함께 다른 가족들의 동의를 이끌어내 미 법원의 청원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직계 혈족인 윌리엄 문 옹이 생존해 있었다면 법원의 청원 절차까지는 불필요했지만 우운 선생이 묻힌 파크뷰 묘지 측에서 현행 캘리포니아 주법상(Ca.Health and Saf.Code7526) 묘지 이장 신청 권한은 망자의 생존하는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로 제한한다는 유권 해석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우운 선생의 후손 중 손자, 증손 세대는 "법원 판결"을 받아야 유해발굴 등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법원의 청원 인용이 필요했다. 결국 3년 3개월의 법정 싸움 끝에 '승인 명령'을 이끌어 냈다.

▲ 윌리엄문 옹의 가족사진. 뒤에 서 있는 이가 브라이언 문.
김동이
브라이언 문은 법원의 청원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윌리엄 문)가 할아버지(문양목)의 유해를 캘리포니아 맨티카에서 한국의 출생지로 옮기는 데 동의했다. 그의 어머니 문찬성의 유골도 함께 옮겨지는 계획이었다"면서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뤄진 조치고, 나는 아버지의 소원을 기리기 위해 모든 사촌들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문제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주재 한국영사관의 윤홍선 씨와 문양목의 손자 모두 유해를 한국으로 이송하기로 동의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작성했고, 모든 사촌들이 편지에 서명했다"라고 유족 동의를 이끌어낸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움직임(유해봉환)에 찬성할 수 있는, 생존한 1급 친척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문양목의 손자들은 아버지의 소원을 보고 싶어 하고 유해가 한국으로 옮겨지길 소망한다"는 내용을 청원서에 담아 법원에 제출했다.

▲ 파크뷰 공동묘지관리인이 우운 선생의 부인인 문찬성 여사가 우운 선생 묘소에 함께 묻혀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동이
유족들의 동의가 이뤄지면서 우운 선생 혈족들의 공동참배도 이뤄졌다. 참배한 혈족들은 묘역의 환경정비는 물론 묘지측에도 이장에 협조해달라고도 했다. 유해봉환을 위한 적극 행보에 나선 것이다.
최홍일 변호사와 새크라멘토 한인회의 공조도 '결정적 장면'

▲ 조현포 새크라멘토 한인회장과 이수연 상임이사.
이수연
이 상임이사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 분위기를 한인 사회에 전하기 위해 새크라멘토 한인회 등 미국 서부지역 CA 5개 한인회나 UC Fresno대학,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 등 학계와도 관계망을 넓히며 유해봉환을 열망하는 입장을 견지토록 하는 한편 성금 모금 홍보활동도 펼쳤다.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도 만나 주정부의 허가절차에 힘을 실어 줄 것도 요청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깊은 인연을 맺은 최홍일 변호사와 조현포 새크라멘토 한인회장과의 만남은 '양목문의 유해발굴 청원 승인 명령'에 결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상임이사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수시로 소통했던 조현포 한인회장은 한인사회와의 가교역할을 하며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성금 모금 운동도 펼치며 교포사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홍보하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향후 유해봉환에 대비해 파묘, 화장, 봉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미교포 추모 행사 등 제반 준비 사항을 준비하고 있다. 4월 중 교포사회와 태안군, 기념사업회 간 역할분담 조율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 무료변론으로 법원의 승인 명령을 이끌어낸 최홍일 변호사가 우운 선생의 묘소에서 국가보훈부 이희완 차관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수연
수임료를 받지 않고 'Pro-bono(공익을 위한 무료 변론)'에 나선 최홍일(Mark Choi) 변호사의 재능기부는 화룡점정이다. 산호퀸 법원 담당판사의 심리 대응논리를 분석해 법리를 압도하는 변론이 법원의 승인 명령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Sacramento)에서 민·형사 소송, 이민법에 정통한 엘리트 법조인으로 정평이 나 있을 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아메리칸 드림의 젊은 기수로, 이 상임이사와는 두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덴탈 회사(e-Smile Dental) 창업 초기에 법률 자문역을 인연으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다. 조현포 새크라멘토 한인회장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최 변호사는 특히 법원의 승인 명령이 확정되기 전 방미 중인 국가보훈부 이희완 차관 일행의 캘리포니아주청사에서 열린 보훈부장관(Lindsey Sin)과의 간담회에도 배석해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 인허가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우운 선생 묘지 참배를 안내하면서 우운 선생의 일대기와 미주 독립운동 활약상을 상세히 브리핑하며 이 차관 일행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대한민국 총영사관 고문변호사를 맡아 동포사회 권익신장과 국익 변호에도 왕성한 법률지원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최 변호사는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이수연 상임이사-미국 총영사관 조혜란 정무영사-조현포 한인회장 등과 핫라인을 정례적으로 가동해 유해봉환을 위한 제반 준비과정에서 누수를 방지하고 빈틈없는 수용 태세를 구축해 나간다는 복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과 국가보훈부의 조력도 '큰 힘'

▲ 지난해 11월 임정택 샌프란시스코총영사가 리들리 독립운동 발상지 현장답사시 이수연 상임이사가 장인환·전명운 열사 비석 옆에 우운 선생 비석 건립을 제안하고 있다.
이수연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과 국가보훈부의 조력도 법원의 승인 명령에 큰 힘이 됐다. 또한, 향후 유해봉환시에도 이 두 기관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총영사 임정택, 담당자 조혜란 정무영사)은 국가보훈부와 함께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을 위한 현지절차 이행에 손을 맞잡고 있다. 파크뷰 공동묘지관리사무소측과도 유해봉환 신청에 따른 행정절차와 소요경비 등도 협의하는 등 전방위적인 활동도 펼쳤다.
국가보훈부는 특히 장관 명의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파크뷰 공동묘지관리사무소에 우운 선생의 원활한 절차 이행을 요청하는 서한문과 협조공문에서 "문양목 선생과 그의 배우자인 문찬성씨의 묘역을 국립현충원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문양목의 유족들이 제기한 청원서를 캘리포니아 정부에서 친절하게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문양목 선생의 유해 반환이 한미 양국이 더욱 우호적인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어 발송해 법원의 승인 명령에 일조했다.
우운 문양목 선생은 누구

▲ 2016년 맨티카 소재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있는 우운 선생을 참배한 <태안신문> 취재팀이 묘비 앞에 <문양목 평전>을 바쳤다.
김동이
2004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바 있는 충남 태안군의 대표적인 해외항일애국지사인 우운 문양목(文讓穆, 1869년 6월 7일~1940년 12월 25일)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가담해 1907년 하와이로 피신하고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동보국회를 결성해 대동공보를 간행했다.
1908년 스티븐스가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자 그를 방문해 발언 취소를 요구하고,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를 지원했다.
1908년 7월 한인소년병학교 사관 양성을 통한 항일무장투쟁을 지원했으며, 1910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군인 양성운동과 지방총회 설립 활동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1940년 12월 25일 71세를 일기로 순국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정부는 우운 선생의 해외 항일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해 지난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우운 문양목 선생의 생가지인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에 세워진 충운사. 충운사에 내에는 문양목 선생의 존영이 모셔져 있다.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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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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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목 지사 유해발굴 청원 미국 법원 승인명령 확정 이끈 '숨은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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