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표석 제주 사람들은 슬픔의 역사 속에서도 살았다. 그래서 평화의 섬이다.
오찬호
양민학살 담론은 '어쩔 수 없이' 그것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4.3 이후의 역시나 동네북 제주의 신세의 결과다. 4.3은 망각을 강요받았기에, 희생자들이 인정받는 유일한 길은 동정심을 끌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등장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4.3 설명이 누구나 딱 여기까지만 이해하고 있는 이 한 문장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 죽었다."
어찌 그런 역사 속 사람들이 순진할 수 있단 말인가. 민중들은 울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안 살겠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 지독한 수레바퀴에 짓눌리다 보면, 누구나 꿈틀거리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일 수 없다.
양민학살 이야기는, 같은 논리로 4.3은 무장폭동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토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토벌대에게 희생된 사람 이야기만큼, 무장대에게 희생된 이야기도 많다. 희생자의 15% 정도가 무장대에게 당한 경우로 집계되는데, 적은 숫자가 아니다. 4.3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1만 5천 명 정도지만 일가족 몰살이 워낙 많고, 50년 후에 진행된 전수조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정확할 수가 없다. 최소 3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무장대 습격으로 희생된 이들도 4천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토벌대에게 죽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반사적적으로 '무장대에게 죽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나게 하고 그때부터 4.3은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다 맞는 말이 된다. 모든 죽음이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 수레바퀴는 사라진다. 그 끝에는, 양민학살도 잘못이고 무장봉기도 잘못이라는 납작한 해석만이 남는다. "왜 제주에서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이 들어갈 틈이 없다.
4.3이다. 대구와 서울에 거주하다가 제주로 가서 느낀 건 4.3에 대한 어마어마한 온도 차이였다. 4년을 살다가 다시 육지로 돌아오니, 역시나 그 어마어마한 온도 차이를 반대 방향으로 느낀다.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내일이 4.3인데 학교에서 한 마디도 말이 없어. 어디 포스터나 현수막도 하나도 없어. 아무도 모르는가 봐. 제주와 너무 다르네."
이 무관심, 바로 그때의 수레바퀴가 아직도 제주도 위에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 그러니, '정치, 이념 이런 거 모르고 그저 묵묵하게 일만 하던 순진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말을 또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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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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