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산불에 대비한 국가유산청의 위기 대응 매뉴얼
박배민 디자인
국가유산청이 지난 1월 제작한 '국가유산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은, 문화유산이 포함된 지역에 산불, 홍수, 지진 등이 발생했을 때 어떤 기관이 어떤 순서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세세히 규정한다. 위기 경보 단계는 '관심(Blue)–주의(Yellow)–경계(Orange)–심각(Red)' 네 단계로 나뉘며, 국가유산청은 위기 발생 시 가급적 '심각' 단계로 먼저 대응하고, 이후 상황에 따라 경보 수준을 조정하라고 기본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유산청장은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가동한다. 본부는 5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문화유산이 있는 현장에는 수습관리반과 대응협업반이 파견된다. 이 두 반은 유산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긴급 보호 활동을 펼친다.
부석사의 보물 고려목판과 오불회 괘불탱을 영주소수박물관으로 이송(25일 21시~26일 02시)하고, 봉정사의 보물 목조관음보살좌상이 피신(26일 새벽,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할 수 있었던 것도 두 대책반의 활약 덕분이다.
대부분 나무라 불에 취약... 재난 관리 예산은 1.8%, 공동체의 기억이 사라진다

▲ 3월 28일 오전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 기와집과 초가집이 대부분인 마을 안과, 마을 앞 강가에 소방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회마을앞 강변에 서 급수차가 마을 안쪽으로 물을 퍼올리고 있다.
권우성
또한 국가유산청은 단독으로 대응하지 않고, 소방청·경찰청·지자체와 통합지휘체계를 구성해 문화유산을 보호한다. 병산서원에서처럼 현판 분리와 이송, 사전 살수와 현장 통제가 실제로 작동한 사례는, 이 매뉴얼이 단지 문서에 그치지 않고 숙달되어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매뉴얼이 완벽했다기보다는, 운이 따랐다고 보는 게 더 솔직할 것이다. 실제로 현장을 많이 다녀 봐도, 한국의 전통 건축물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져 불길에 특히 취약하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준비하고 있음에도, 현장의 산불 대비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참고 사진] 공주 마곡사 영산전에 소화기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5/0407/IE003439270_STD.jpg)
▲ [참고 사진] 공주 마곡사 영산전에 소화기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
국가유산포털(공공누리 제1유형) 재가공
전국의 목조 국가유산 다섯 개 중 하나는 소화기구가 다섯 개도 구비되어 있지 않다(545건 중 105건, 19.3%). 보물로 지정된 목조 건조물 가운데 소화설비가 전혀 없는 곳이 21곳, 화재경보장치조차 없는 곳이 25곳에 이른다. 수치 하나하나가 뼈아프다(2024년 민형배 의원실 자료 참조).
또한 문화유산 피해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CCTV와 같은 방범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비중도 절반에 불과했다(국가유산 2790곳 중 1550곳, 55.6%).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 영구적인 보존이 필요하다고 평가되는 국보조차 4곳이나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2025년 강유정 의원실 자료 참조).

▲ 국가유산 CCTV 설치 현황 (천연기념물, 명승, 국가민속, 국가등록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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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된 예산만 보더라도,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는다. 2025년 국가유산청 전체 예산은 1조 3,875억 원. 그중 재난 관리에 쓰이는 돈은 240억 원뿐이다.
취약지역 문화유산 보존 예산 9억 원까지 더해도, 전체의 1.8%에 불과하다. 궁중 문화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219억이 책정되었다. 불을 막을 소화기도, 감시할 눈도, 현재 예산으로는 빠듯한 셈이다. 잘 '보존'되어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 2025년 국가유산청 전체 예산 대비 '국가유산 재난안전 관리' 관련 예산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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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국토의 70%가 산지다. 그만큼 매 봄마다 산불은 예고된 재앙처럼 다가온다. 유산에 대한 위험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방어막은커녕 감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도도, 예산도, 인력도 부족했겠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문화유산은 어느 한 기관이나 전문가의 소유가 아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다.
문화유산은 단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시간을 품은 공동체의 기억이다. 지역 주민의 기억이며, 정서이고, 세대를 잇는 매개체다.
잿더미가 된 건물보다, 문화유산에서 살아 숨 쉬던 기억과 이야기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쓰라리다. 2023년 강릉 방해정(放海亭)과 상영정(觴詠亭)을 잃은 후, 고운사의 소실 앞에서 나는 또다시, 그 상실감 앞에 마주 서야 했다.

▲ 광주광역시 증심사에서 재난 상황을 대비한 문화유산 이송 훈련 (2025. 4. 1.)
광주광역시 누리집 (공공누리 제1유형)
한 가지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혹시 자신이 사는 동네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는지 알고 있을까?
앞으로 다시 한번 이렇게 소중한 유산을 지켜야 할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준비로 마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불길이 스쳐간 자리에 다시 숲이 자라게 되듯, 문화유산 보호도 이제는 소멸 이후의 뒷수습만이 아니라 '예방과 준비'라는 숲을 미리 가꾸는 일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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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남긴 흔적을 찾아 다닙니다.
행정학과 관광학을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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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역사가 한 번에... 산불이 삼킨 것은 집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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