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효릉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의 릉 명효릉, 명,청나라의 황릉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운민
이 도시가 자랑하는 성벽을 올라 그 형세를 살펴보자. 주원장이 진우량을 꺾고 패자로 자리하는1366년부터 20년 동안의 공사 끝에 완공된 것으로 궁성, 황성, 도성, 외성의 4중 구조를 갖춘 유례가 없는 대공사였다. 총 35km의 둘레를 자랑하는 세계최대 규모로 13개의 큰 문을 지닌 구조였다. 그중 남대문인 중화문은 4중 옹성을 지닌 크기로 이 문에만 3천 명의 군인이 주둔할 수 있었다.
1937년 일본군의 공중 폭격으로 문루는 날아갔지만 그 위세는 여전히 당당하다. 이 중화문을 중심으로 천년고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두루 퍼져있다. 난징에서 단 한 군데만 가야 한다면 바로 이곳 부자묘다.
남징의 젖줄 진회화를 따라 부자묘(공자를 모시는 사당)를 중심으로 전통가옥들이 늘어서 있는 전주 한옥마을, 경주 황리단길과 비슷한 인상의 번화가다. 허나 이곳은 밤이 더 화려하다. 강에는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화려한 조명은 밤새 꺼질 줄 모른다.
상인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고 각기 표정에서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예전 이 고장이 번성했을 때 모습이 아련하게 비친다. 바로 이 근방에 과거시험장이 있었으니 유생들은 그 유혹을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라.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만 더 이동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명나라에서 민국시절로 전환된다. 중화민국시절 수도였던 난징은 바로 이곳 총통부를 중심으로 공화국의 정치를 이어나갔다. 기존 관아였던 양강총독부를 개조해서 만들어졌기에 동, 서양의 스타일의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도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주변에는 1912 거리가 근대풍으로 조성되어 있어 답사의 여운을 만끽하는 장소로 충분하다.
자금성보다 규모가 크다는 옛 고궁은 초석만 남긴 채 사라졌지만 초대 황제 주원장은 이곳에 거대한 릉을 조성했다. 이미 손권이 터를 잡아놓고 쉬고 있었지만 그는 오나라의 황제를 영웅이라 추켜세우고 자기를 호위해 주길 바라며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 그 바로 건너편에는 근대 중국을 만든 쑨원의 묘가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고구려, 백제부터 시작해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리의 사신들이 난징을 방문해 기록을 남겼고,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육조박물관의 유물들은 흡사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백제는 남조국가의 박산향로를 뛰어넘는 금동대향로를 만들었다.
중국역사상 10개 도읍지였던 난징은 이처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를 지닌 도시다. 학살이란 아픔을 딛고 다시금 예전의 품격을 도시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공유하기
20년 공사 끝 완공... 난징서 단 한 군데만 가야 한다면 이곳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