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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떠났고, 코이카는 남았다

미국 해외 원조 중단으로 불발탄 제거 종사자 감원... 한국국제협력단, 라오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

등록 2025.04.08 13:28수정 2025.04.0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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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유닛 58의 불발탄 제거 작업 모습
라오스 유닛 58의 불발탄 제거 작업 모습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원조 프로그램의 '미국 정책 부합도'를 평가하겠다며 90일간의 전면 중단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한 줄짜리 행정 명령은 라오스에선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라오스 내 불발탄 제거 작업 종사자 총 5,500명 중 약 4,000명의 계약이 해지됐고, 국제단체 NPA(Norwegian People's Aid)는 라오스를 포함한 12개국에서 1,700명을 감원했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 전역에 투하한 2억 7천만 발의 폭탄 중 8천만 발이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는 나라에서, 이는 단순한 '예산 삭감'이 아닌 '생명 보호 작업의 중단'이었다(관련기사: 잊혀진 전쟁, 땅속에서 계속된다 https://omn.kr/2cxl0).

다행히 미국 국무부의 일부 사업은 재개되었지만,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통한 지원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무엇보다 현 트럼프의 정책 기조로 볼 때 이 중단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그 땅 위에 사람을 지키는 이름

시코타봉 지역 우프몽 마을의 파나다 캄필라봉은 2019년, 불발탄이 폭파되는 장면을 처음 보던 날을 기억한다. "먼지가 걷히고 나서야 제 발 아래의 땅이 '안전해졌다'는 걸 실감했어요." 라오스 불발탄 제거 부대 유닛(Unit) 58에서 EOD 전문가로 일하는 그녀는 매일 위험 지역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이어간다. 그녀의 손끝이 닿는 곳에서 마을 아이들의 웃음이 돌아온다.

캄말리씨는 평생 흙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불발탄 제거팀 유닛 58이 찾아왔다. "밭에서 불발탄을 발견했어요. 매일 밟고 다녔던 그 땅이, 사실은 폭탄을 품고 있었던 겁니다." 제거가 끝난 후 그는 말했다. "이제야 땅을 믿을 수 있게 됐습니다."

유닛 58, 그 이름의 의미


유닛 58은 라오스 외교부 산하 불발탄제거청(NRA) 소속의 불발탄 제거 전문 부대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 아래 2014년 출범해 현재 22개 팀으로 확대됐다. 국제 표준에 맞춘 전문 훈련을 수행하고, 정화 작업과 기술 조사, 위험 인식 교육, 피해자 지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여성 인력 비율을 높이며,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참여 기회를 확장하고 있다.

코이카는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약 1,977만 달러, 한화로 약 270억 원을 불발탄 제거와 피해자 지원에 투입하고 있다. 이는 UNDP 불발탄 분야 신탁기금 기준, 단일 공여국 중 최대 규모다. 하지만 코이카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많은 돈을 지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오스 유닛 58
라오스 유닛 58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코이카는 처음부터 라오스가 '스스로' 불발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단기적 실적보다 장기적 자립,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을 택한 것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 때문에 라오스가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것이 유닛 58의 운영 방법이다. 현재 유닛 58의 인건비는 라오스 정부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한국은 장비와 훈련, 전략 수립에 집중한다. 라오스 내 불발탄 제거 프로젝트 중 인건비를 수혜국이 자체 부담하는 사업은 코이카 사업이 유일하다.

사업 초기에 라오스는 조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하나라도 더 많이' 제거되길 원했다. 하지만 한국은 단호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라오스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한 걸음씩, 함께 구조를 만들고 문화를 바꾸는 여정을 택했다.

그 결과 미국의 지원 중단 이후 NPA 등 여러 국제기구가 활동을 축소하거나 멈췄지만 코이카가 지원하는 유닛 58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불발탄 제거 그 너머를 보다

코이카는 불발탄 제거를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회복과 포용의 과정으로 바라봤다. 특히 코이카는 불발탄 피해자 지원과 안전 교육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라오스 불발탄 피해자 재활 전문기관인 COPE와 협력해 의족·의수 지원은 물론, 피해자들의 심리 상담과 사회 복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또한 라오스의 불발탄은 테니스 공처럼 생긴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착각해 사고를 당하기 쉽다. 실제 피해자 중 약 40%가 어린이로 코이카는 이 같은 사고를 줄이기 위해 학교, 마을, 라디오 방송을 활용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관계자는 "불발탄 문제는 단기간 사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제도적 지속 가능성과 라오스 정부의 역량 강화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또 "앞으로도 라오스 정부의 운영 체계 고도화, 기술력 강화, 성평등 증진 그리고 제도적 지속 가능성을 위한 협력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라오스 코이카사무소
라오스 코이카사무소 ACN아시아콘텐츠뉴스

끝이 아닌 시작, 글로벌 모델로 확산해야

코이카의 3차 사업은 2026년에 종료된다. 이는 '지원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이카 모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단기적으로는 유닛 58의 전국 정화 범위 확대와 교육훈련센터 설립, 제도화 협력, 다자기금 유치와 라오스 전역에 정화 역량을 분산하고, 지역 공동체 기반의 불발탄 대응 시스템을 확산해야 한다. 또 농업·교육·재활까지 연결된 통합형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코이카가 구축한 이 모델을 국제 사회에 확산하는 것이다. 유닛 58이 아시아의 불발탄 인재 양성 허브가 되고, '전쟁의 유산'을 함께 치유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의 중심이 되는 일이다.

우리가 불발탄을 정화하는 것은 단지 땅이 아니다. 그 땅 위에 다시 삶을 일구려는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코이카가 떠날 때 남겨야 할 것은 장비나 물자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 다시는 쓰러지지 않을 신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ACN아시아콘텐츠뉴스에도 실립니다.
#라오스 #불발탄 #코이카 #트럼프 #원조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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