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방에서 먹은 라면
옥윤서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 나는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아 만화책을 보며 플라스틱 쟁반에 투박하게 담긴 라면을 한 입 먹어봤다. 특별한 재료나 레시피가 들어간 건 아니었다. 메뉴가 많은 것도 아니고, SNS 감성으로 예쁘게 플레이팅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어떤 라면도 이 맛을 내진 못할 것이다. 조용한 가게에 들리는 종이책 넘기는 소리, 오래된 책 특유의 종이 냄새, 내 손에 들려있는 만화책 한 권. 오늘자 내 SNS에는 이 별것 없어 보이는 라면이 올라갔다, 적어도 내게는 매우 특별한.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만화방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1996년 전국 만화방 수는 약 1만 2천 개였는데, 2020년 671개로 줄었다. 이마저도 만화 카페를 합친 수치여서, 만화방은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이 시작한 만화 검열제로 만화와 관련된 수십 명의 작가와 만화방 운영자들이 고발되며 만화 출판사 수십 곳이 문을 닫기도 했고, 이후 인터넷 보급에 따른 웹툰 산업의 성장으로 만화책 자체의 관심이 줄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만화방은 단순히 만화를 읽는 공간을 넘어 당시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소외된 이들이 모여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장소였음을 떠올리게 해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1994년 개봉한 영화 <장밋빛 인생>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서울의 허름한 지하 만화방을 배경으로, 사회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만화방에 모여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깡패, 위장취업 중인 노동 운동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받는 작가 지망생, 성폭력 피해 이후 삶을 이어가는 만화방 주인.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만화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는다.
이 작품은 당시 1980년대를 살았던 이들, 그리고 그 시절을 기억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만화방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는지 일깨워준다. 만화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언제든지 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도피처였던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
요즘 뉴스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이 120만 명을 넘어섰고,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도 연간 4천 명에 육박한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숨 쉴 틈도 없이 팍팍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도피처를 찾아 잠시나마 자유를 느끼고자 한다. 나는 만화방을 다녀온 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만화방이 마지막 도피처였다면,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남아있는가, 하고.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스스로 던져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희망이 있기에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희망을 찾으려는 의지가 (사람을) 전진하게 만드는 거야.
- 만화 <암스(ARMS)> 중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2
공유하기
20대 중반인 내가 답답할 때마다 이 만화방 찾아가는 이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