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연구대 인계인수식 인계인수서에 서명을 하면 기지 운영의 주체가 다음 차대로 바뀐다
고용수
이날부터 우리는 손님용 숙소에서 기지 본관 숙소로 방을 옮겼다. 그리고 기지의 모든 시설과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세종기지는 남반구에 위치해 북반구에 있는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다. 남극에서도 하계기간이라고 불리는 12월부터 2월은, 한국의 겨울처럼 상대적으로 온화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 기간에는 월동연구대뿐만 아니라 현장 연구를 위해 다양한 연구원들이 기지를 방문한다. 또한, 건물과 발전기 같은 대형 설비에 대한 보수공사도 이때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많은 기술자들도 하계기간 동안 기지에 머물게 되는데 이 사람들을 '하계대'라고 부른다. 세종기지에는 하계기간 동안 약 90명에 달하는 하계대가 머물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월동대의 주요 임무는 연구와 유지보수 업무지만, 이 기간 동안은 하계대 지원 업무까지 더해져 주말과 야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4시 기상하는 이유
월동대원의 하루는 아침 7시 30분에 아침식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8시 15분에는 간부회의, 8시 30분 전 대원 회의를 거쳐, 9시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다. 하지만 하계기간에는 본인 업무를 틈틈이 챙기기 힘들 정도로 하계대 지원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교대로 해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무보트 보조사가 되어야 하고, 일손이 부족한 생물연구팀을 돕기 위해 펭귄마을에 따라가 펭귄조사 업무를 하기도 한다. 또한 주방에서는 조리장을 돕기 위해 교대로 설거지와 요리를 하고, 유지반 대원들의 시설물 보수에도 수시로 투입된다.
한 마디로, 하계기간 월동대원의 일과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밤 늦게 일을 마친 뒤 샤워도 하지 않고 쓰러지듯 잠들 때도 있었지만,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기지 시간으로 새벽 4시는 한국에 있는 아들이 영어 수업을 마치고 간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한국보다 12시간 늦다). 나는 아들과 이야기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도 함께 하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남극에 오면서 스페인어 공부와 남미 친구 만들기라는 목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과 떨어진 이 시간을 결코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매일 일기를 써서 돌아가기 전 책 한 권을 만들고, 일기장과 함께 아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부러 근사한 일기장도 사 왔다. 그리고 인계인수식을 마치고 본관동 숙소로 짐을 옮긴 첫날 밤, 방 안에 앉아 일기장을 꺼냈다.
펜을 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무슨 말을 쓸까?'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일기장을 덮어버렸다. 아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려던 순간, 미안함과 보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와 도저히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근사한 일기장은 책장 한켠에 꽂혀, 아직도 한 줄도 쓰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쓰지 못한 일기장 일기를 쓰려고 했지만, 아들 생각이나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오영식
내가 남극에 온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비유하곤 했었다. 하지만, 남극기지에 근무한다는 건, 군에 입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군대는 가끔 외출, 외박, 휴가라도 있지만, 남극기지는 1년 동안 외부로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극 생활의 가장 힘든 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1년 동안 안아줄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매일 힘든 일과속에서 나를 지탱하게도 하고, 동시에 무너뜨릴 것 같기도 하다. 아들 곁을 떠나 남극에 온 지 130일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아들과 매일 통화한다. 그런데 항상 묻고 싶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걸 물어보면 왠지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태풍아! 아빠 안 보고 싶어?"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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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극세종과학기지 대기과학 연구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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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40여 개 나라 여행한 아빠, 이번엔 남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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