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자신만의 이권을 지키려는 엘리트들의 본모습"(https://omn.kr/2ctkf, 이하 '원문')은 미국 과학계 논란을 빌려 전문가 일반을 "특권층"으로 낙인찍고 비난하는 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부당한 기득권과 엘리트 비판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분노를 조장하여 반지성주의를 부추기는 위험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건강한 공론장을 위해 이 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비판인가, 비난인가
원문은 과학자들을 "그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뜨고 싶은 이들", "보조금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특권층"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지식 생산의 복잡한 과정과 공공 연구의 필요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전문가 전체를 탐욕스러운 이권 카르텔로 매도하는 프레임입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를 넘어, 전문 지식 자체의 가치를 폄훼하고 전문가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조장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입니다.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기보다 '도덕적 타락'과 '위선'이라는 손쉬운 비난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것입니다.
원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을 자의적으로 선별하고 노골적으로 왜곡한다는 점입니다.
원문은 "대학들이 연구비의 너무 큰 부분을 간접비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 이유"라면서 "프로젝트 2025는 과학기술연구에서 정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소개한다. 이는 명백한 왜곡입니다. 미 국립보건원(NIH) 간접비는 연구실 유지, 행정 및 회계 지원, 윤리위원회(IRB) 운영, 시설 관리 등 연구 수행에 필수적인 인프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공적 자금이며, 대학과 연방정부 간의 협상을 통해 비율이 결정됩니다. 이를 마치 연구자 개인의 사익 추구를 위한 자금처럼 묘사하는 것은 제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거나, 혹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야비한 수법에 가깝습니다.
하버드 의대 정규직 교수가 150명뿐이라는 통계를 근거로 '비정규직 착취 시스템'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의료계 특유의 '협력 교수(affiliated faculty)' 시스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피상적인 해석입니다. 많은 의대 교수들이 소속 병원에서 급여를 받으며 대학에서는 '임명직(academic appointment)'으로 교육과 연구에 참여하는 구조적 특성을 무시한 채, 한국의 정년트랙 개념과 단순 비교하여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자 맥락 제거입니다.
NIH 예산 삭감이라는 현상을 제시하면서, 그 배경에 있는 수십 년간 지속된 공화당의 '작은 정부' 기조, 재정 감축 압력 등 복잡한 정치·경제적 맥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원인을 '과학자들의 방만함'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책임 소재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왜곡되고 선별된 사실에 기반한 주장은 독자에게 현실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확한 진단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이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정보 오염' 수준이며 공론장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반지성주의의 함정을 경계하며
원문은 트럼프 행정부나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같은 인물의 반과학적 행보를 과학계 공격의 '정당한 근거'처럼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동기나 과학 부정 행태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생략합니다. 오히려 과학계가 '자업자득'으로 공격받는 것처럼 묘사하며, 문제의 원인을 정책 결정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합니다. 이는 독자에게 '당해도 싸다'는 식의 감정적 정당화 유도, 과학 기반 정책 결정의 중요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대중을 위한 팬데믹 연구'(Pandemic Research for the People) 같은 시민 주도 활동을 '진정한 대안'으로 제시하며, 기존 연구 시스템 전체를 폄하하는 논리 역시 비약입니다. 풀뿌리 활동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공공 연구 인프라 전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은 비현실적 낭만주의입니다. 또한, 과학계 내부에서도 연구 윤리, 고용 문제 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꾸준히 존재함에도, 원문은 이를 "소수"로 축소하거나 "유의미한 반성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단정하며 건강한 내부 비판의 가능성마저 폄훼합니다.
원문은 과학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사실 왜곡과 감정적 선동을 통해 전문가 전체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글입니다. 이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특정 집단에 대한 도덕적 단죄로 해결하려는 반지성주의의 전형적인 수사입니다.
진정한 문제 해결은 정확한 사실 진단과 구조적 분석에서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와 같은 공론장은 자극적인 '숟가락' 프레임이나 검증되지 않은 비난 대신, 사실에 기반한 건강한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 모색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독자들 또한 감정적 선동에 휩쓸리기보다, 제시된 정보의 사실 여부와 맥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지적 토양을 황폐하게 만드는 반지성주의의 확산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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