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이 남로당 폭동? 다큐멘터리가 증언하는 진실

다큐 <목소리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등이 전하는 진실

등록 2025.04.14 16:23수정 2025.04.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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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분 토론> 중 한 장면
<100분 토론> 중 한 장면 MBC

"4.3사건은 남로당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한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폭동이었다."

지난 4월 4일 MBC <100분 토론>에서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던진 이 한마디는 제주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뿌리부터 왜곡하는 발언이다. 과연 제주4.3사건은 남로당에 의해 제주도민 3만여 명이 살해되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폭동'이었을까?

이러한 역사 왜곡에 반박이라도 한 듯, 지난 11일 '제주4.3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등재됐다. 군·사법기관 재판기록, 도의회 피해조사기록, 진상규명, 민간인 학살에 대한 피해자의 증언 등 국가 폭력과 진실 규명 및 역사적 화해의 과정을 담은 기록물이다. 이는 제주4.3사건의 진실이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인류 공동의 가치로 국제적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목소리들>이 증언하는 국가폭력

지난 4월 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목소리들>은 이런 역사 왜곡에 정면으로 맞선다. 다큐의 첫 장면은 제주도 표선면 토산리에서 시작한다. 이곳 주민들은 매년 음력 11월 18일이면 함께 제사를 지낸다. 1948년 12월 18일, 토산리 주민 150여 명이 한날한시에 무차별 학살당한 비극을 기리기 위해서다.

다큐가 집중하는 것은 4.3 당시의 여성들이다. 토산리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은순씨는 그날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토산리 실상기'에 따르면, 18~40세 이하 남성들을 '남로당 가입'으로 분류하고 여성들은 달빛 아래 얼굴을 비춰보곤 선별했다. 14명의 여성과 젊은 남성들은 파출소로 끌려갔으며, 남성들은 이틀 만에 여성들은 10일 만에 살해당했다. 여성들의 나이는 고작 16~23세였다.

"배고픈 미친개를 야산에 풀어놓은 격"이란 표현으로 암시된 성폭력의 참상은 오랜 세월 침묵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에 당시 제주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하고, 원치 않은 결혼을 강요받았다. 다큐 속 여성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남로당 폭동'이라는 프레임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잔혹성을 증언한다.


 지난 2일 다큐멘터리 <목소리들>이 개봉했다.
지난 2일 다큐멘터리 <목소리들>이 개봉했다. 목소리들

제주4.3의 시작점, 1947년 3월 1일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하루의 사건이 아니다. 진실의 시작점은 1947년 3월 1일 3.1운동 28주년 기념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경찰이 탄 말에 어린아이가 치여 죽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향해 경찰이 무차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3월 10일 민관총파업이 일어났고, 주민들뿐 아니라 학교와 경찰들까지도 파업에 동참했다.


육지에서 급파된 응원경찰과 극우 성향의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 투입되면서 제주도민들은 극심한 탄압에 시달렸다. 많은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한라산 중산간지역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소속 300여 명이 봉기를 일으켰다.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은 제주도에만 계엄령을 선포했고, 그해 12월 31일 계엄령은 해제됐다. 그러나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 약 2만 5000~3만 명이 희생당했다.

'폭동'이 아닌 '항쟁'?

4월 3일 봉기를 일으킨 남로당은 조갑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기 위한 폭동 세력'이 아니었다. 이들은 군인과 경찰, 서북청년단의 무자비한 탄압에 저항하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남로당은 항일 경력이 있는 민족해방운동가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핵심 가치는 민족의 완전한 해방, 자주통일 독립, 일제 잔재 청산이었으며, 민족의식 교육을 지향했다. 제주4.3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김달삼 역시 대정중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교사 출신이었다.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는 박순석씨의 증언을 통해 남로당 교원들의 교육활동에 대해서 조명한다. 당시 남로당 교원이 진행하는 교육은 단순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연병장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 예고편 속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 예고편 속 한 장면이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승만의 반공국가 건설 야망과 민간인 학살 계획

그러나 이승만이 설계한 대한민국에는 민족문제 해결이나 국민주권, 기본권 확대와 같은 자유민주주의는 없었다. 그가 최우선 가치로 삼은 것은 '반공'이었다. 그는 제주4.3사건을 통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국가의 적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국가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1948년 1월, 이승만은 남한단독선거를 강행하려 했고 김구는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을 주장했다. 같은 해 3월 28일, 드레이퍼 미 군사차관은 제주도에 미국 해군기지 설립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이승만은 이를 적극 수용했다. 이승만에게 제주도는 미국의 지원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한 교두보였다.

1948년 10월 28일자 미군정보고서는 한국경찰이 미군의 강력한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으며, 100여 명의 민간인 사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보고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1949년 4월 1일자 미군정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승만 정부는 9연대가 모든 저항을 뿌리 뽑기 위해 중산간 지대의 모든 주민이 무장대의 게릴라를 돕고 있다는 '가정' 하에 "민간인 대량 학살 계획"을 채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10 총선거 이후 추가 학살이 계속되었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2년 9월 21일까지 약 2만 5000~3만 명의 제주도민이 목숨을 잃었다.

 1999년 제주MBC가 방영한 <다랑쉬굴의 침묵>은 토벌대를 피해 숨은 11명의 주민 유해 발굴 현장과 토벌대의 만행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1999년 제주MBC가 방영한 <다랑쉬굴의 침묵>은 토벌대를 피해 숨은 11명의 주민 유해 발굴 현장과 토벌대의 만행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제주MBC

침묵 속에 가려진 증언들

당시 정부는 '빨갱이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대량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후 제주도민들은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긴 세월을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침묵이었다.

다큐멘터리 <비념>에 등장하는 일본 오사카로 피신한 두 여성은 촬영팀에게 "(제주에) 가면 나 안잡히오?"라고 물었다. 가족들이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학살당한 지 66년(다큐멘터리 촬영당시 기준)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

1999년 제주MBC가 방영한 <다랑쉬굴의 침묵>은 토벌대를 피해 숨은 11명의 주민 유해 발굴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토벌대는 굴로 숨어든 이들을 '무장 빨갱이'로 규정하고 잔인하게 학살했다. 처음에는 총격을, 이어서 수류탄을, 마지막에는 굴 입구에 마른 잎을 쌓아 불을 질러 질식사시켰다.

그러나 발굴된 유해와 함께 발견된 '무기'는 몽둥이, 대야, 숟가락 같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필품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저항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오직 생존을 위한 본능만이 있었을 뿐이다.

토벌대의 만행은 끝없이 이어졌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찍어 죽였고, 걷지 못 하는 노인과 여성은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했다. 여성 수용소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끊임없이 불러내 성폭력도 자행했다.

한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여성을 앞에 세워두고 나체로 뛰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살기 위해 옷을 벗고 뛰었지만, 한 바퀴 돌아오자 그녀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이것이 '남로당 폭동'이란 프레임으로 가려진 참혹한 국가폭력의 실상이다.

왜곡된 역사 인식과 현재의 레드 콤플렉스

지난 4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직후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져 간 제주4.3, 광주 5.18 영령들이, 총칼과 탱크 앞에 맞선 국민들이 이 위대한 빛의 혁명을 이끌었다"고 발언했다. 같은 날 <100분 토론>에 등장한 조갑제는 이에 대해 "4.3사건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다르다"고 단정 지었다. 그러나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 송순희씨는 "5.18광주사태를 유심히 봤다. 우리(제주4.3사건)와 비슷했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극우 진영은 제주4.3사건을 '남로당의 무기봉기'로만 규정한다. 홍준표는 2018년 제주4.3 70주년에 대해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 김달삼이 350여 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경찰서를 습격한 좌익 무장폭동"이라고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2023년 8월 당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역시 제주4.3사건을 "좌익을 중심으로 한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레드 콤플렉스', 빨갱이 논리는 보수 세력의 정체성과도 같은 도구가 되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좌파세력을 척결하려는 논리는 제주4.3사건 당시의 '반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큐멘터리 <목소리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비념> 포스터이다.
다큐멘터리 <목소리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비념> 포스터이다. 제주4.3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제주4.3,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제주4.3사건을 왜곡하는 세력들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여전히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제주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현대사의 핵심 과제다.

'제주4.3 피해조사 1차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신고된 희생자 1만 1655명 중 82.93%인 9674명이 군경토벌대에 의해, 11.26%인 1314명만이 무장대에 의해 희생되었다. 2017년 재심 판결문은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 재심청구인들이 육지로 이송되어 교도소에 구금생활을 한 것이 '판결'에 의한 형의 집행이었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제주도민들이 재판 없이 불법 구금되었음을 사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다.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속 한 구절이다. 제주의 어멍·아방·할망·하르방·삼촌은 3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 폭력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맞서 진실을 지키지 위해 여전히 견디고 있다.
#조갑제 #제주43 #목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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