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제주MBC가 방영한 <다랑쉬굴의 침묵>은 토벌대를 피해 숨은 11명의 주민 유해 발굴 현장과 토벌대의 만행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제주MBC
침묵 속에 가려진 증언들
당시 정부는 '빨갱이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대량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후 제주도민들은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긴 세월을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침묵이었다.
다큐멘터리 <비념>에 등장하는 일본 오사카로 피신한 두 여성은 촬영팀에게 "(제주에) 가면 나 안잡히오?"라고 물었다. 가족들이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학살당한 지 66년(다큐멘터리 촬영당시 기준)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
1999년 제주MBC가 방영한 <다랑쉬굴의 침묵>은 토벌대를 피해 숨은 11명의 주민 유해 발굴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토벌대는 굴로 숨어든 이들을 '무장 빨갱이'로 규정하고 잔인하게 학살했다. 처음에는 총격을, 이어서 수류탄을, 마지막에는 굴 입구에 마른 잎을 쌓아 불을 질러 질식사시켰다.
그러나 발굴된 유해와 함께 발견된 '무기'는 몽둥이, 대야, 숟가락 같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필품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저항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오직 생존을 위한 본능만이 있었을 뿐이다.
토벌대의 만행은 끝없이 이어졌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찍어 죽였고, 걷지 못 하는 노인과 여성은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했다. 여성 수용소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끊임없이 불러내 성폭력도 자행했다.
한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여성을 앞에 세워두고 나체로 뛰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살기 위해 옷을 벗고 뛰었지만, 한 바퀴 돌아오자 그녀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이것이 '남로당 폭동'이란 프레임으로 가려진 참혹한 국가폭력의 실상이다.
왜곡된 역사 인식과 현재의 레드 콤플렉스
지난 4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직후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져 간 제주4.3, 광주 5.18 영령들이, 총칼과 탱크 앞에 맞선 국민들이 이 위대한 빛의 혁명을 이끌었다"고 발언했다. 같은 날 <100분 토론>에 등장한 조갑제는 이에 대해 "4.3사건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다르다"고 단정 지었다. 그러나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 송순희씨는 "5.18광주사태를 유심히 봤다. 우리(제주4.3사건)와 비슷했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극우 진영은 제주4.3사건을 '남로당의 무기봉기'로만 규정한다. 홍준표는 2018년 제주4.3 70주년에 대해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 김달삼이 350여 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경찰서를 습격한 좌익 무장폭동"이라고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2023년 8월 당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역시 제주4.3사건을 "좌익을 중심으로 한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레드 콤플렉스', 빨갱이 논리는 보수 세력의 정체성과도 같은 도구가 되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좌파세력을 척결하려는 논리는 제주4.3사건 당시의 '반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다큐멘터리 <목소리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비념> 포스터이다.
제주4.3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제주4.3,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제주4.3사건을 왜곡하는 세력들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여전히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제주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현대사의 핵심 과제다.
'제주4.3 피해조사 1차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신고된 희생자 1만 1655명 중 82.93%인 9674명이 군경토벌대에 의해, 11.26%인 1314명만이 무장대에 의해 희생되었다. 2017년 재심 판결문은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 재심청구인들이 육지로 이송되어 교도소에 구금생활을 한 것이 '판결'에 의한 형의 집행이었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제주도민들이 재판 없이 불법 구금되었음을 사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다.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속 한 구절이다. 제주의 어멍·아방·할망·하르방·삼촌은 3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 폭력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맞서 진실을 지키지 위해 여전히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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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이 남로당 폭동? 다큐멘터리가 증언하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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