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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 어린이 손님만 수천 명... 왜 사라져야 하나요?

[혁신파크를 지키는 이야기들 6] 청소년들에게도 서울혁신파크가 필요하다

등록 2025.04.16 10:33수정 2025.04.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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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혁신파크엔 오늘도 변함없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바람이 가지를 슬쩍 치고 지나가니 꽃잎이 눈처럼 흩날립니다. 점심을 먹고 산책 나온 듯한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십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는 어린아기와 손잡고 걸음마 연습을 합니다. 숨이 차 혓바닥을 빼고 헥헥거리는 강아지와 함께 운동 나온 젊은남성은 자신도 물 한 모금 마시고, 강아지에게도 한 모금 줍니다.

벚꽃 아래 벤치에 꽃모자를 쓴 채 앉아 있는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계십니다. "종일 심심한데 여기 나와야 그나마 사람 구경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어린이집 꼬마들이 보이지 않네요.

우리는 모두 어디 사는 누군지 모르는 사이입니다. 띄엄띄엄 있는 벤치의 간격만큼 타인과의 거리를 예의처럼 지키면서도 어색함 없이 혁신파크의 평안을 누립니다. 오히려 이 허전한 공간에 띄엄띄엄 있는 사람과 산책하는 반려동물에 안도와 감사를 느낍니다.

아빠 손잡고 걸음마하던 아기가 넘어지면 나도 모르게 "아이쿠!" 하면서 일어날 때까지 지켜봅니다. 반려인이 주는 물을 달게 마시는 반려견을 보면 속으로 '시원하겠다!' 합니다. 커피 마시는 사람들 머리에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서 '좋은 시간, 좋은 공간'을 느낍니다. 이 순간 우리는 서로 '친밀한 이웃'이 되고, 이곳에 오면 우리는 모두 익명성 상태에서 '공원이웃'이 됩니다. 관계를 만들어주는 곳, 혁신파크.

지금은 곳곳에 높은 담장이 생겨 답답하고 위협적이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주 작아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혁신파크를 찾아옵니다. 우리가 혁신파크를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 늘 같은 이유와 마음으로 혁신파크를 찾는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 때문이 아닐까요. 그 곳에 가면 '이웃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반려인과 함께 혁신파크를 이용하는 강아지들. (왼쪽)빵식 (오른쪽)딩동 (왼쪽)빵식이 카페 쓸 입구에서 반려인과 함께 서 있다. (오른쪽)딩동이 폐쇄 된 청년청 앞에 서있다.
▲반려인과 함께 혁신파크를 이용하는 강아지들. (왼쪽)빵식 (오른쪽)딩동 (왼쪽)빵식이 카페 쓸 입구에서 반려인과 함께 서 있다. (오른쪽)딩동이 폐쇄 된 청년청 앞에 서있다. 빵식, 딩동

혁신파크에 쌓인 우리 삶의 더께

우리 지역아동센터는 혁신파크 길 건너에 있습니다. 혁신파크 곳곳에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과 삶이 묻어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크고 작은 행사에 때로는 관객으로, 때로는 행사의 주체로 참여하면서 혁신파크를 가장 잘 이용한 '지역주민'으로 성장합니다.


2016년인가, 서울혁신파크에서는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하루만 진행하는 '빤짝놀이터'가 열렸습니다. 어른들은 '세상모든 기발한 놀이'를 마련하고, 어린친구들은 '이보다 더 신날 수 없는' 하루를 놀았습니다. 청소년들은 동생들을 위해 '어린이극장'을 운영하고 간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날은 서울 곳곳에서 어린이 손님 수천 명이 와서 어린이날을 맘껏 즐겼습니다. 혁신파크가 아주 큰 일 했습니다. 그 후로도 혁신파크에서는 '놀이장터'와 '주민잔치'가 자주 열렸고, 어느 해 한 달에 한 번씩 열린 '꽃피는장날'에서는 제철농작물과 건강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담장을 허문 혁신파크는 일년 내 쉬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동네 공원은 주말마다 열린 행사 덕분에 주민의 심심한 일상에 활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공원에서 만나 반갑게 교류하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어린친구들은 어른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지역공동체의 즐거움과 너그러움을 배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센터에서 5분도 안 걸리는 혁신파크는 아이들에게 일상에 가장 만만하고 포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행사와 축제 말고도 우리는 혁신파크에서 일없이 놀았습니다. 아니, 노는 게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행사와 축제보다 일상의 쉼과 놀이가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고 숨통이기 때문이지요. 혁신파크는 아이들을 조건 없이 환대해주었고, 아이들에게 혁신파크는 '최애 공간'입니다. 아주 잠깐 시간이 나면

"나가서 놀아도 돼요?"
"어디 가서 놀 건데?"
"혁파요!!"(서울혁신파크를 줄여 부르는 말 - 기자 말)

아이들은 '혁파'로 마구 달려갑니다. '혁파'에 가면 세상 밝은 얼굴로 웃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크게 소리치며 놉니다. 포대자루를 긴 밧줄로 묶어 굵고 큰 나무에 매달아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놀이는 어른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는 어른도 아이가 되어 같이 놉니다. 놀이에 진심인 아이들은 놀다가 곧잘 싸우기도 하는데, 그래도 다음 날 어제 싸운 친구랑 또 혁신파크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에게 '혁파'가 없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마음껏 소리치고, 온몸 땀 범벅될 때까지 뛰고, 다툰 친구와 다음 날 무슨 수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혁파'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더 치열하고 절실한 공간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혁파'를 찾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혁파' 곳곳에 아이들 삶의 더께가 덕지덕지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놀이하는 청소년들 은광지역아동센터의 청소년들이 서울혁신파크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놀이하는 청소년들 은광지역아동센터의 청소년들이 서울혁신파크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다. 은광지역아동센터

청소년도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공원이 필요하다

몇 년 전에 친구들과 서울숲에 갔습니다. 서울숲을 이용하는 수와 규모에 놀랐습니다. 서울숲을 온전히 누리면서 사는 그 동네 사람들은 웬 복이냐며 사실 며칠을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서울숲은 아무리 근사해도 자주 갈 수 없는 '그림의 공원'입니다. 그 대신 우리 동네에 '혁신파크'가 있어 위안이 되었고, 새삼 혁신파크가 고마워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혁신파크가 개발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대학교도 되었다가, 컨벤션센터도 되었다가 했습니다. 혁신파크의 개발 소문은 꾸준히 내용이 달라지다가 최종적으로 창조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민간매각으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아무 때나 슬리퍼 끌고 나와서 아무 생각없이 젖어드는 동네정원이 많아야 한다, 뭔가 잘 안 풀릴 때 여유있게 걸으면서 도시생활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서울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느껴지도록 하겠다'는 서울시장님의 포부를 보았습니다. 반가우면서 씁쓸했습니다. 평소 공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유명 건축가는 시장님의 발표에 "정원은 사이즈보다 분포가 중요하다"며 '슬리퍼 끌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가까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장님의 발표에 크게 반색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다른 책에서 '사람이 모여 살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의 공원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공원에서 만들어지는 공통의 추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공원은 누구나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공공공간입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린 공간입니다. 돈 없고 갈 데도 없고, 어디서든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청소년에게는 공원의 위로가 더욱 필요합니다. 공원과 같은 자연 속에서의 휴식이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서울시장님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원을 서울 곳곳에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면서, 우리 동네에 있는 공원은 왜 폐쇄하고, 민간에 매각할 결심을 했을까요? 청소년도 우울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슬리퍼 끌고 아무 생각 없이 혁신파크 벤치에 앉아 힘든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때도 있고, 친구들하고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돈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공짜공간'이 약자와의 동행이자 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정책입니다.

기업에 매각되어 창조타운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혁신파크는 주민의 삶을 더 삭막하게 만들고 주민 공동체의 융합을 저해시킬 것이 불보듯 뻔합니다. 시장님이 마음을 쓰고 동행해야 할 약자는 '놓치기 아쉬운 기회'라고 말하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나 기업이 아니고 혁신파크를 벗삼아 살고 있고 혁신파크의 서사를 생생하게 이어가는 시민들입니다.

점심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잠시 쉬는 직장인과 엄마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가, 주인과 산책 나온 반려견과 지팡이를 꼭 잡고 종일 앉아 계시는 할머니, 그리고 날마다 미친 듯이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 혁신파크의 공공성을 지켜달라고 오늘도 쉬지 않고 말하고 있는 이들이 그 시민이고 주인공입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나에게 혁신파크란' 서울혁신파크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아쉬워 하며 만든 '안녕' 영상. ⓒ 은광지역아동센터

덧붙이는 글 글쓴이 | 김명자 센터장은 은광지역아동센터에서 청소년들과 삶의 더께를 쌓고있다.
#서울혁신파크 #은광지역아동센터 #공유지 #오세훈 #김미경
댓글1

서울혁신파크 기업매각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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