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유대인 절멸을 실행한 나치 기계의 톱니 하나가 아니라 톱니를 작동시키는 주체적 확신범이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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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 인터뷰'를 이끈 빌럼 사선은 나치 친위대 종군 기자였다. 독일 패전 후 나치 확신범들은 아르헨티나로 모여들었는데, "아르헨티나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나치들이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빌럼 사선은 아르헨티나 극우 저널 <길>에 활발히 기고하며, "나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나치즘의 부활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잡지 <길>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치 거점으로 기능하며 도피한 나치들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하는 것을 물심양면 도왔고, 황당하게도 '새로운 독일의 건설'을 꿈꾸는 동지회를 구성하게 했다. 아이히만이 '사선 인터뷰'에서 나치 확신범으로의 진면목을 숨길 이유가 없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멀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확신범들이 남미로 모여든 걸까. 당시 "아르헨티나는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독일인 전문가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독일인들의 도주를 돕는 것은 의미 있는 투자로 여겨졌다."
이뿐 아니라 독일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이에는 잘 작동되는 연결망이 있었고, 조직적 규모의 조력자들이 나치들의 도주를 성사시켰다. 또한 전후 아데나워 총리가 이끈 독일 정부가 나치 전범의 체포와 처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짚어볼 만하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목격했을 당시는 '사선 인터뷰'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때였기에 주체적 나치 확신범 아이히만을 짚어낼 수 없었다. 아이히만이 교활하게 생성해내는 막대한 신문 기록은 그 자신과 나치의 범죄를 축소 은폐하도록 치밀히 고안되었고, 당시 아이히만 재판은 그의 죄의 규명보다 숨은 전범을 찾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1979년 이후 '사선 인터뷰'인 아르헨티나 문서가 열람 가능해지자, 이를 바탕으로 당시 "아렌트를 비롯한 재판 참관인들이 갖기 어려웠던 시각을 제공했다."
당당한 나치 학살 기술자... "사형 수행 자랑스러워, 좋은 적은 죽은 적"
'사선 인터뷰'의 아이히만은 매우 당당한 나치 학살 기술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나치와 아이히만을 지지하는 남아메리카 약속의 땅에서 그는 "자유롭고 떳떳하게 친위대 중령인 아이히만이라는 걸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을 절멸을 위해 아이히만 특공대를 운영하며, 자신이 얼마나 열렬히 활동했는지 자랑스럽게 소신을 밝혔다.
"...개인은 명령이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신념을 가지고 명령을 따라야 한다... 최종 해결 업무는 전체적으로 직업적 살인이었다... 제국의 유일한 좋은 적은 죽은 적이다. 나는 명령을 받으면 항상 사형집행자와 함께 그것을 수행했고 지금까지도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유대인 절멸은) 전무후무한 업적이었다... 유대인 수송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게 그것은 정말 죽도록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는 그가 예루살렘 재판에서 "나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고 한 말이 얼마나 기획된 거짓말이었는지, "나 역시 일개 희생자입니다"라는 최종 진술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방대한 분량의 나치 전범 기록을 끝까지 읽은 까닭은, 평소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을 나도 무심히 수용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자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국은 반헌법적 계엄 이후 파시스트의 준동이 횡행하며 불안과 긴장을 증폭시켰다.
최근 가짜 뉴스와 역사와 정보를 조작해 선동의 일렬에 선 주체가, 무능한데 교활하기만 한 관료, 호가호위하는 몰염치한 국회의원,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타락한 '똥별'들인 엘리트 계급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강하게 환기시켰다.
아이히만은 기계적 톱니로서가 아니라 극우 민족주의라는 일관된 사고체계로 무장하고 600만 유대인 학살에 기여했다. 저자는 대량학살의 거악은 "개별적인 사디즘의 개별 사례들의 총합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정치적 사유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현 시국에도 큰 시사점을 던진다.
명령을 받았다고 그토록 처참하고 계획적이고 일관되게 대량의 민간인을 학살할 수는 없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집단범죄이론은 모두가 공범이고 유죄이므로 결국 모두가 유죄가 아니라는 기만적 결론으로 달아날 구실을 제공해왔다. 이는 악의 노련한 회피 술책이다.
'12.3'의 밤,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을까. 한반도의 지나간 학살의 역사는 증명한다.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위기의 우리 사회가 각성하고 성찰할 일이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 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
베티나 슈탕네트 (지은이), 이동기, 이재규 (옮긴이),
글항아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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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아이히만... 그의 발언 읽으며 계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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