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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방향 262번 버스... 40평생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버스에서 만난 휠체어 탄 승객·자연스러운 승객들 태도 인상적... 23년 기준 저상버스보급률 38%, 지역은 더 열악

등록 2025.04.17 12:06수정 2025.04.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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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주거, 문화, 의료시설 등 모든 면에서 서울은 지방을 압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교통편이다. 1호선~9호선, 인천철도, 공항철도, GTX-A 등 서울에는 무려 24개의 지하철 노선이 있다. 내가 사는 부산의 지하철 노선은 6개이다. 정확히 서울의 1/4이다.

서울에 사는 지인들 대부분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서울 내에서의 이동은 웬만하면 1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빈틈없는 지하철노선, 여기에 버스 환승까지 더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이에 비해 경남지역의 경우 부산과 인접한 양산과 김해 일부를 제외하면 도시철도를 볼 수 없다. 같은 나라에 살지만 사는 형태는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는 수도권에 거주하더라도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유아차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 등 교통약자가 이에 해당한다. 지하철 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도, 저상버스 보급율이 전국 1등이어도 이동이 힘든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잊지 못할 강렬했던 기억

 서울역으로 향하던 262번 버스. 이런 버스를 타게 되어 영광이었다.
서울역으로 향하던 262번 버스. 이런 버스를 타게 되어 영광이었다. 권진현

지난주에 업무차 서울에 들렀다.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난생처음 귀한 경험을 했다. 내가 타고 있던 저상버스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승객이 탑승한 것.

왕복 10차선 대로변이었다. 달리고 있는 버스 우측 뒤편으로 어르신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밀고 오는 청년이 보였다. 버스와 휠체어의 거리도 멀었고, 차를 세워달라는 제스처도 없었기에 그냥 지나칠 줄 알았던 버스가 갑자기 끝차선으로 붙으며 서행했다. 버스기사님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정차한 다음 뒷문을 개방했다.

손님들의 반응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서 대략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누구 하나 불평을 하거나 인상을 쓰지 않았다. 천천히 차가 정차하고, 뒷문이 열리고, 휠체어가 들어오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 주변에 있던 (앉아있던 사람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옆으로 물러났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휠체어를 밀던 사람의 태도였다. 그는 다른 승객들에게 가볍게 양해를 구했지만 그 상황을 미안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기다려주고 휠체어가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준 것처럼, 그 또한 자연스럽게 휠체어를 이동시킨 뒤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내리시기 전에 미리 말씀해 주세요. (내리시기) 불편하지 않게 미리 참고 좀 하려고 그럽니다!"


기사님의 말을 끝으로 버스는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40 평생 처음 본 광경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친근하고 자연스러웠다. 익숙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 '제17차 버스행동'에서 활동가들이 저상버스에 타고 있다. 2023.7.25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 '제17차 버스행동'에서 활동가들이 저상버스에 타고 있다. 2023.7.25 연합뉴스

기차를 타고 내려오며 생각했다.

'저상버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왜 휠체어를 탄 고객이 타는 것은 처음 봤을까?'

서울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서울은 저상버스 보급률이 가장 높은 도시니까, 부산하고는 뭔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버스에 탑승하는) 휠체어 사용 시민은 정말 드문데. 정말 귀한 경험 하셨네요!"

서울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함께 글을 쓰는 글벗들에게도 물어봤다. 서울, 경기도 가평, 제주, 미국에서 운행되는 저상버스는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 서울시민 : "(저상버스) 공급을 무조건 더 늘려야 해요. 왜냐면 저상버스는 평범한 사람한테는 있으면 편한 거지만 장애인이나 유아차 이용자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거든요. 그런데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가 아니다? 이동권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죠. 저상버스의 보급률이 높아지는 것,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구역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이 개선될수록 교통약자의 저상버스 이용이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 제주도민 : "지역일수록 고령층 비중이 높아요. 고령층 운전도 말리는 분위기고요. 그런데도 어르신들은 여전히 힘겹게 버스를 타고 다니십니다. 아무래도 저상버스가 많으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을까요."

- 가평군민 : "전 가평에서 저상버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ㅜㅜ 여기도 무릎과 허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은데, 다들 무거운 짐을 싸들고 버스 계단을 오르세요. 이번에 제 남편이 다리가 다쳐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거 보며 느낀 거지만, 늙고 아플수록 시골은 살 곳이 못 되더라고요."

- 미국 매사추세츠주 주민 : "(예전에 잠시 거주했던) 싱가포르는 저상버스 보급율이 100프로였어요. 미국은 보스턴에 저상버스가 있지만 사람들이 대중교통 자체를 잘 안 타는 것 같아요. 대중교통이 위험하다는 인식도 있고, 기름값이 싸서 자차 이동이 흔하죠. 장애인들이 이동할 때에도 대부분 차를 이용해요."

함께 글 쓰는 이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저상버스는 부족하다. 보급율을 높이는 게 절실하다.'

그래서 한번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저상버스는 얼마나 있는지. 지역별 현황은 어떤지.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율 현황. 가장 높은 서울과 가장 낮은 울산의 차이가 무척 뚜렷하다. (출저 : 한국교통안전공단, 국가통계포털)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율 현황. 가장 높은 서울과 가장 낮은 울산의 차이가 무척 뚜렷하다. (출저 : 한국교통안전공단, 국가통계포털) 권진현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저상버스의 평균보급율은 약 38%이다. 서울의 저상버스보급율은 66%가 넘지만, 보급율이 가장 낮은 울산광역시의 경우 15%에도 못 미친다. 서울의 인구는 울산의 8배지만, 저상버스 수는 울산보다 38배 더 많다.

서울과 달리 울산에는 지하철도가 아직 개통되지 않았다. 몇 개의 지표만 보더라도 이 지역의 교통약자들이 타 도시에 비해 이동하기가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저상버스의 수도 많지만 주변 인프라 또한 잘 구축되어 있다. 어디를 가나 휠체어가 지나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큰 건물에는 교통약자를 배려한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이동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교통, 문화, 복지, 거주 등 모든 분야에서 서울은 지방보다 편리성과 접근성이 우수하다. 이래서 어느 정권도 서울 과밀화를 못 막는 것일까?

정책과 시설보다 더 중요한 것

휠체어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이용하는 교통수단 중 저상버스 탑승 비율은 '3%대'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40대가 되어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를 탑승하는 것을 처음 본 게 낯선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통약자들은 부산의 '두리발' 같은 전용 이용수단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들의 이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장애인들의) 교통약자들에 대한 인지가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봐야 어디든 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 텐데. 가끔이라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매일 봐야 저들도 우리와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이동함에 있어서 (나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저상버스의 보급율 증대'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나는 비장애인이다. 장애인들의 삶을 잘 모른다. 부끄럽지만 관심도, 이해도 부족하다. 비장애인의 생각과 시선은 한계가 있기에, 내가 쓰는 이 글이 호소력이 부족하고 현실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나를 향해 함께 글을 쓰는 동료가 말한다.

"장애인이 (글을) 써도 좋겠지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필요성을 더 많이 느껴야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 싶어요. 애 낳아봐야 애 키우기 힘들고 장애 가져봐야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렵다는 인식이라면, 역지사지하는 마음, 연대하는 마음을 바라는 건 너무 욕심같이 느껴져서요. 아이가 없어도, 장애가 없어도, 아직 노인이 되지 않아도 약자의 이동권을 고려하는 사회라면 이 어찌 살기 좋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이게 맞지. 이런 사고가 상식적이고 바르고 건강한 것일테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정책과 시설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생각과 시선이 아닐까.

좋은 글이 아니라도 괜찮다. 현실성이 좀 떨어지고 전문적이지 않은 글이면 뭐 어떤가. 보잘것없는 글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저상버스 #서울 #장애인 #휠체어 #교통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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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래를 좋아하고 국밥과 칼국수를 사랑합니다. 가끔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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