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州)의 권리냐, 연방의 권한이냐?' 미국 정치의 오랜 쟁점 중 하나는 수정헌법 제10조와 헌법 제6조 우월조항(Supremacy Clause) 사이의 긴장이다. 한쪽은 연방 헌법이 국가 최고법임을, 다른 한쪽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권한은 주와 국민에게 귀속된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미국의 건국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최근에도 달아오르고 있다.
예컨대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은 주의 권한을 연방정부가 침해한 사례로 비판받아왔다. 2022년 대법원이 이를 뒤집으면서, "낙태에 대한 결정은 주의 권한"이라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같은 맥락에서 2025년 3월,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령 14242호를 통해 연방 교육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교육 정책을 다시 주정부로 이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실 미국 연방정부는 오랫동안 '돈'을 통해 주의 자율성을 간접적으로 통제해왔다. 연방정부가 도로, 교육·복지 분야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은 그 자체로 주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됐다. 주가 연방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자금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연방정부가 정한 속도제한, 교육 기준, 식단 정책까지도 이러한 보조금과 연계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논쟁을 단순히 미국의 일로만 봐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 정치와 행정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단일국가(unitary state) 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인 구조로 인해 지역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 예산·인사·교육·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앙정부의 지침과 예산 배분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역이 스스로 정책을 설계하고 실험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교육 분야는 더욱 그렇다. 교육부는 교과과정·평가체계·입시제도 등 전반적인 구조를 획일화해 지역 특성을 반영한 교육 실험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 교육자치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구조적인 제약 앞에서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복지 영역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지자체는 '집행기관'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지역의 필요나 여건을 반영한 복지 설계는 예산 제약과 중앙의 승인을 이유로 번번이 좌절된다. 그 결과, 현장의 창의성과 책임성은 사라지고, 형식적 집행만 반복되는 관료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주권은 누구의 것인가?'
연방제 국가인 미국조차도 주권의 분산을 두고 끊임없는 헌법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단일국가인 한국은 '중앙=국가'라는 등식에 무비판적으로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중앙정부의 책임성과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주권이란 단지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권리만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권리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미국의 10차 수정헌법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권한은 누구의 것인가? 그 답은, 국민의 것이다. 이 질문을 한국의 새 지도자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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