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성 촉석루
김병
그리하여 이들을 진주성 촉석루 삼장사(三壯士)라고 한다. 그 무렵 최경회 장군이 삼장사(三壯士) 시(詩)를 지어 읊조렸다고 한다. 일행과 함께 촉석루 대들보 자락 현판에 걸린 시(詩)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간담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矗石樓中三壯士(촉석루중삼장사)
一杯笑指長江水(일배소지장강수)
長江之水流滔滔(장강지수유도도)
波不渴兮魂不死(파불갈혜혼불사)
촉석루 위 마주 앉은 세 명의 장사들
한 잔 술로 웃으며 남강을 가리키네
남강의 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넋도 죽지 않으리
어찌 된 일인가. 촉석루에 걸린 현판은 물론 진주성 내 촉석루로 가는 길목에 삼장사 시(詩)와 관련된 <촉석루중삼장사기실비(矗石樓中三壯士記實碑)>가 보인다. 비석 첫머리에 선조 임진년 영남 초유사 학봉 김성일은 대소헌 조종도와 송암 이로와 함께 촉석루에 올랐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진주성 촉석루 삼장사란다.
역사적 흐름으로 보아 이들은 삼장사 시와 관련 없고 오히려 1593년 6월 진주성 2차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함께 전사하거나 남강으로 투신했던 최경회, 김천일, 황진 장군이 삼장사라고 한 역사학자가 있다. 진주성 삼장사에 대한 의견이 이처럼 불분명한 모양이다. 진주성 해설사 역시 무엇이 역사적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국조인물고>에 따르면 충청도 병마사 황진 장군이 진주성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의병장 곽재우가 중과부적이라고 한다. 이에 황진 장군은 창의사 김천일 장군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진주성으로 들어가 진주 일대 백성들과 함께 전사한다.
이들은 진주성 2차 전투를 치르기 직전 촉석루에 올라 결의를 다지는 삼장사 시(詩)를 짓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인데 진주성 앞 남강은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으련만 도도히 흐를 뿐 말이 없다.
역사적 사료가 불분명할 땐 각자 다른 해석을 낼 수 있지만, 진주성 내 창렬사가 보여주듯 충청과 호남 그리고 진주 일대 장군들과 백성들이 혼연일체로 진주성을 지켜내려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은 호남, 충청, 경상 사람들이 똘똘 뭉친 혼연일체의 장이었다.
진주성 산책길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임란 때 진주성 앞 남강으로 꽃비처럼 투신했던 자들의 넋을 더욱 기억하고 싶다. 일행과 함께 돌아서기 아쉬워 멈칫하는데 누군가 일갈한다. " 영호남, 충청사람들 모두 진주성을 지키고자 했듯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혼연일체가 돼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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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호남, 충청, 경상 사람들이 똘똘 뭉쳐 지키려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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