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혜연 교수가 강의를 시작한 직후 가곡 '선구자'를 부르고 있다.
최민수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 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 가곡 선구자' 중에서
'나의 삶, 나의 길'을 주제로 한 강연이 시작되자 서혜연 교수가 부르는 '선구자'가 강연장에 울려 퍼졌다. 서 교수가 첫 소절을 내뱉자마자 청중 모두가 압도된 듯했다. '음색이 굵고 극적으로 힘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뜻의 '드라마틱 소프라노'에 걸맞은 단단한 울림이었다.
서혜연 교수는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성악의 기본으로 발성과 호흡을 제시했다. 머리의 비어 있는 공간으로 소리를 보내 울림을 증폭하는 두성 발성과 횡경막을 사용해 긴 호흡을 끌어올리는 복식 호흡이 성악가에게는 기본 소양이라는 것이다.
서혜연 교수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성악은 결국 목이 악기이기 때문에, 목이 한번 망가지면 악기를 다시 바꿔 낄 수 없다"며 "성악가는 무대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목 관리를 위해 엄격한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고 고충을 밝혔다.
음악과 함께 살아온 삶
성악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마친 서혜연 교수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성악 이전에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서 교수는 "6살 때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 교습소를 갔는데, 피아노를 처음 본 그때부터 꿈을 피아노 치는 사람으로 정했다. 엄마 몰래 피아노 선생님께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며 "전적으로 제가 원해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고 웃어 보였다.
피아노를 배우던 서 교수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TBC 방송국 어린이 노래회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피아노를 칠 때는 너무 떨렸는데, 노래할 때는 너무 즐거웠어요. 예원학교에 입학했는데 선생님께서 제가 손이 너무 작다고 피아노 전공보다는 노래 전공을 권유하셨어요. 그때는 선생님께 너무 서운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저를 성악가의 길로 인도해준 거니까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혜연 교수는 중학교 1학년 때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예술고등학교 졸업생이 협연(協演)하는 광경을 보고 본격적으로 성악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를 봤던 그때 저는 5년 뒤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꼭 저 자리에 서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때부터 성악가와 무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졌어요. 다른 길로 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이후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서 교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베르디 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국제 성악콩쿠르를 비롯한 다양한 대회에서 수상한 그녀는 모든 부분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만 기록된다는 Albo d'Oro(황금명부)에 등재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과 밀라노시가 공동주최한 오페라 <마하고니>에서 주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오페라 <나비부인>, <투란도드>, <아이다>, <나부코> 등으로 유럽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후배 성악가들 음악하기에 좋은 여건 만들어주고 싶어"
서 교수는 그는 "좋은 발성은 저음에서 고음까지 잘 이어지면서 둥글게 소리가 나야 하는데 누구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극복해야 한다"며 성악가의 삶이 끝없는 수련과 인내, 극복, 자기관리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페라 공연 한 번 하려면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움직여야 해요. 협업하는 과정에서 성악가의 배려심이 다 드러나게 된다"며 오페라 성악가가 되려면 착한 마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악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진실성과 성실성, 책임감 등을 꼽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대에는 관객이 있죠. 저희한테는 관객과의 약속이 있기에 반드시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음악을 대할 때도 수박 겉핥기로 하지 말고, 노래 속 가사와 악보 하나하나의 의미를 이해한 후 불러야 해요. 가사의 뜻을 모르고 노래를 부르면 그건 가짜잖아요. 가사를 이해하면서 노래를 불러야 관객과 대화가 되고 음악이 살아있는 걸 느껴요. 우리가 정성을 들여서 음악을 표현하면 관객은 그걸 느끼고 함께해요."
서혜연 교수는 삶을 돌아보며 만남의 소중함, 감사와 겸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스승들을 열거하며 감사함을 표한 그는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좋은 성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성악 스승님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 교수는 자신이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건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자신도 교수로서 좋은 스승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성악을 하며 무대에 서는 건 개인적 만족이지만, 교육은 내가 배운 걸 후대에 가르쳐 주는 일로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좋은 선생님들에게 많은 걸 배웠는데 이걸 나만 알고 끝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배운 걸 후대에 전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수가 된 계기였어요."
서혜연 교수는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하며 후진 양성에 힘쓸 예정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성악가들이 한국으로 들어와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라면서 "한편으로는 후배들에게 큰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신진 성악가들이 세계 오페라 무대로 나아가 공연할 수 있도록 제가 연결 고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희망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미래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자기가 좋아하고 재능 있는 일을 찾을 것, 현재에 충실할 것, 목표를 크게 가지고 포기하지 말 것, 좋은 선생님을 만나 가르침을 잘 따를 것 등을 조언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서혜연 교수가 강연 이후 청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민수
음악평론가 김승렬(춘천·48세)씨는 "서혜연 교수가 외국의 유명한 오페라 성악가들을 서울대로 초빙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강연을 보러 왔다"며 "성악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나재석(서울·18세)씨는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는 분의 강연이 눈앞에서 펼쳐지니까 좋았다"며 "시민지성 한림연단 강연에 매번 참여하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한편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이 주관하는 시민지성 한림연단은 지난 2023년 1학기부터 시작된 공개형 강연이다. 학기마다 6명의 명사를 초청해 주기적으로 특강을 열어 춘천시민과 대학생들의 비판적 지성을 배양하는 데 힘써왔다. 시민지성 한림연단의 다음 강연자는 이순원 소설가이며, 오는 4월 30일 오후 7시 한림대학교 캠퍼스라이프센터 비전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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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 소프라노, 한국 오페라 발전의 '선구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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