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로 지정된 관동팔경 '죽서루', 천연 암반 위에 그대로 세워졌다.
이준수
죽어서 용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근데 어떻게 용이 바다도 아닌데 강에 나타나지?"
"강도 물이니까 용이 물 타고 왔겠지."
"참 부지런도 하다. 바다만 해도 넓어서 다니기 바쁠 텐데."
강릉에서 삼척까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우리 네 가족은 온통 '용' 얘기로 갑론을박이었다. 비판력이 무뎌져서 '용이 됐다면 된 거 맞겠지' 하면서 수긍하는 어른과 달리 어린이들은 궁금증 투성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용'이 될 수 있냐고!
우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설 앞에서 객관성을 증명하는 시도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전쟁에 지친 신라인이 마음을 기댈 '용'이 필요했다는데. 그래도 확실한 사실 하나는 알려줄 수 있었다. 사람들의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인간인 왕도 '용'이 될 수 있다고.
더군다나 문무왕의 사연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은 으레 '용'이 되는 것이 좋은 줄로만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용을 부러워하는 우리 집 두 초등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용으로 태어나는 것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일동 묵묵부담. 불교 신자인 문무왕에게 가장 편안한 사후 세계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고리를 끊고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용이라 하면 멋지다고 생각하겠지만 불교의 관점에서는 인간보다 못한 축생의 삶이다. 호국용이 되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은 제 발로 윤회의 괴로움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래도 사람보다 용이 나은 것 같은데."
"맞아, 공부도 안 해도 되고."
"또 영원히 살 수 있잖아."
아직 어른의 세계를 짐작하지 못하는 두 어린이는 그저 용이 대단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도 잠시 당대의 신라인에게 감정이입해 보았다. 수백 년 간 지속된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최초의 통일왕국을 수립한 위대한 왕. 어렵사리 평화를 구축한 왕이 인간으로서의 짧은 생애를 마치고 사라진다고 하니 숨이 막혀왔다. 왕이 죽으면 또다시 전란이 발생하지 않을까.
'신라인이여, 걱정하지 말라. 동해의 용이 되어 년년세세 나라를 지킬 테니.'
상상일 뿐이지만 신라인이 된 나는 무척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문무왕의 의지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성질이 있었다.

▲ 용문바위 안내판과 용문바위 위치. 위성지도로 보면 죽서루 바로 인근에 바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준수
살아있는 전설, 용문바위
죽서루를 방문한 날은 하늘이 맑았다. 어쩐지 구름이 용을 닮은 듯했다. 용문바위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입구 너머에 바로 안내판이 등장했다. 죽서루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편으로 빠지자 커다란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단장된 공원에 불쑥 솟아있는 암석을 처음 본 사람은 놀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 멋진 바위를 여기까지 옮긴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감탄은 잘못되었다. 죽서루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바위를 옮긴 것이 아니다. 거대한 암반이 먼저 있었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렸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된 문무왕이 죽서루 부근에서 노닐고 있었다. 이후 오십천으로 빠져나가려다 큰 바위에 가로막히고 만다. 그러자 용은 바위를 비켜 가지 않고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 버린다. 이 바위가 바로 '용문바위'다. 과연 삼국통일의 주역다운 면모다.
바위의 구멍은 제법 직경이 넓었다. 몸을 숙이면 성인도 지나갈 수 있는 크기다. 물론 어른은 직접 들어가지 않고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했다. 반면 어린이들은 다람쥐처럼 몸을 말고 구멍을 지나갔다. 용의 기운을 체험해 보고 싶은 것이리라. 용문바위 위쪽으로도 암반이 이어진다. 상단의 바위에는 성혈(구멍처럼 보임)이 열 개 나있었다.
"아빠, 이 구멍 뭐야? 누가 장난으로 뚫었나?"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성혈이래. 아들 낳으려고 기도했던 곳이기도 하고."
지금이야 아들딸 구분이 없지만, 아들이 귀했던 시절에 득남은 중차대한 요소였다. 칠월 칠석날 자정이면 부녀자들이 성혈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암각화의 유적으로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는 곳이었으나, 후대에 득남기도처로 바뀌었다고 한다.

▲ 기도처로 유명한 용문바위. 구멍은 성인 남성이 들어갈 만큼 크다. 사람들이 얼마나 만졌는지 바위 안쪽 표면이 바위 안쪽 표면이 맨들맨들하다.
이준수
벼랑에서 문무왕을 보다
"용 흔적은 이게 끝이야?"
"벼랑에 용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던데? 여기서 보이나?"
용문바위 다음은 '벼랑'이었다. 혹시 고개를 내밀면 벼랑이 보일까 하여 죽서루에 올랐지만 소용없었다. 벼랑의 표면을 관찰할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 '벼랑'은 포기하고 문무왕과는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오십천 건너편에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삼척시에서 '벼랑'을 비롯해 죽서루의 정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설치한 공간이다. 알고 보니 사진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토 스폿이기도 했다.
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죽서루에서 맞은편 정자까지는 오 분 정도가 걸렸다. 이동 중에 오십천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강물에 햇빛이 반사되어 윤슬이 예뻤다. 용이 와서 노닐만한 장소였다.
"왜 김홍도가 맞은편에서 죽서루를 그렸는지 알겠어."
정자에 오른 큰 아이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과연 송강 정철이 '죽서루 아래 오십천이 비경을 담아 동해로 흘러가니 그 물줄기를 임금이 계신 한강으로 돌려 목멱(남산)에 닿게 하고 싶다'라고 노래할 만했다. 시야 가득 펼쳐진 층암절벽이 일품이다.
"용이 지나갔다는 벽은 어디인 것 같아?"
"저기 V자로 움푹 파인 곳 아닐까?"
"아냐, 일자로 쭉 이어진 데 같은데?
우리는 정답 없는 '용의 흔적'을 찾아 한참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저마다 찾은 용의 흔적은 아무래도 좋았다. 발 딛고 서있는 이곳까지 '문무왕'이 다녀갔다는 뿌듯함이 중요할 뿐이었다.

▲ 죽서루 쪽에서 바라본 오십천 풍경. 맞은편에 전망 시설을 갖춘 정자가 있다. 문무왕의 전설이 깃든 벼랑을 찾는 탐방객이라면 정자로 가야 한다. 걸어서 오 분 거리다.
이준수

▲ 정자에서 바라본 죽서루의 모습. 용이 지나간 듯한 굴곡진 바위 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준수
문무왕의 기운, 당신도 받아가세요
이번 역사 여행은 '전설 찾아 삼만리'에 가까운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지도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축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해?"
"떠올리면 멋진 사람?"
"뭔가 안심이 되는 사람."
"그럼 용이 된 문무왕은?"
"당연히 괜찮지!"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어린이에게도 문무왕은 멋지고 안심이 되는 지도자였다. 역사 여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오늘날의 위안을 얻는 것.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과 관련 있는 여행지를 찾으면 여행의 깊이가 달라진다. 여행에도 시의적절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용문 바위와 성혈은 기도처로도 이름난 곳이니 이참에 문무왕의 기운을 받아가 보는 건 어떨까. 국보 죽서루의 절경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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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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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없는 시대에 아이와 찾은 '진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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