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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의 연속...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3장면

[추모] 인간의 고통에 대해 종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등록 2025.04.23 06:42수정 2025.04.23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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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에 가톨릭 교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추모하고 있다. 추모에는 이슬람교도들도 예외가 아니다. 프란치스코는 이슬람 국가를 제일 많이 방문한 교황이다. 의례적인 방문이 아니라 모스크에 가서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함께 종교 예식에 참여했을 정도로 타종교와의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튀르키예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모로코 방문 당시 현지 언론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톨릭교회의 인물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양심"으로 지칭했다고 소개했다.

종교를 가리지 않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은 재위 기간에 교황이 일관되게 전한 메시지가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종교인이다. 그렇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종교 지도자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3장의 사진으로 추모에 동참하고자 한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다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첫 번째는 2014년 8월 방한 당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면이다. 울면서 교황을 향해 손을 내뻗는 유가족들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라"는 신약성서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교황은 4박 5일의 방한 일정 동안 세월호 유가족을 3번 만났다. 도착 직후 서울 공항에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그리고 '천주교 순교자 시복 미사'가 열린 광화문에서다. 광화문에서 카퍼레이드할 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0일 넘게 단식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 앞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편지를 전달받았다.

한국 땅을 밟은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2명뿐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과 1989년에, 프란치스코는 2014년에 방한했다.


교황은 서유럽 출신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었는데 최초로 동유럽의 폴란드 출신 교황이 선출되었으니 바로 요한 바오로 2세다.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이다. 가톨릭교회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교황들만 한국을 찾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평화를 위해 발에 입을 맞추다


 2019년 4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내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가며 아픈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등 남수단 정부와 반대파 지도자 5명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있다. 이날 교황은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남수단 지도자들에게 "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라"고 호소했다.
2019년 4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내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가며 아픈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등 남수단 정부와 반대파 지도자 5명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있다. 이날 교황은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남수단 지도자들에게 "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라"고 호소했다. YTN

두 번째는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을 이어가던 남수단의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들을 2019년 4월에 바티칸으로 초청했을 때의 사진이다.

수단은 남과 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북부는 아랍계 중심의 이슬람 문화권이었고, 남부는 아프리카 토착 민족 중심의 기독교 문화권이었다. 영국은 식민 통치를 하면서 문화적,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남과 북을 별도로 관리했다. 식민 지배가 종식된 후 하나가 될 수 없었던 남과 북은 50년간의 긴 내전을 치른다. 2011년에 남부가 남수단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함으로써 반세기에 걸친 내전은 막을 내린다.

신생 독립국 남수단 앞에는 꽃길이 아니라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수단 대통령 살바 키르가 부통령 리크 마차르를 쫓아내자 그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반란을 일으킨다. 남수단은 내전 소용돌이에 빠지고 마는데 약 40만 명이 사망했고,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양측은 극적인 평화협정을 맺는다. 앞으로도 평화를 지키자는 의미에서 바티칸에서 이틀 간의 피정을 하기로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키르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 마차르를 앞에 두고 평화협정 준수를 신신당부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무릎 통증으로 거동이 많이 불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모든 참석자의 발에 일일이 입을 맞췄다. 사전에 계획된 일이 아니었는데 평화를 위한 간절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교황이 착용하는 둥글고 납작한 흰색 모자 '주케토'가 벗겨질 정도의 간절함이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인류 위해 홀로 강복식을 하다

 2020년 3월 27일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강복식을 위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2020년 3월 27일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강복식을 위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바티칸뉴스 화면 갈무리

마지막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초토화되었던 2020년 3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홀로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로마와 온 세계에)를 하는 모습이다. 우르비 에트 오르비는 교황의 공식적인 축복(강복)과 강론을 의미하는데 전통적으로 1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에 한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특별히 강복식을 했다.

시간은 금요일 저녁이었고 바티칸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진은 교황이 강복식을 집전하기 위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홀로 단상으로 걸어가는 장면이다. 자가격리 조처로 강복식에는 아무도 참석할 수 없었다. 황량하기까지 한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를 위해 홀로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격려의 강론을 했다.

2020년 3월 2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복식 ⓒ 바티칸뉴스


이 3장의 사진은 하나로 연결된다. 많은 인간이 고통 받고 있을 때 종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몸소 보여주었다. 12년 간의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가톨릭 교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이 시대의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엘리 위젤은 종교를 이렇게 정의했다. "종교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진정으로 종교는 인간과 다른 인간의 관계 속에 존재할 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의 의미를 행동으로 입증했다.

신약성서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서 체포되어 감금된 상태에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바오로는 지하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묶인 상태였고 곧 죽음이 닥칠 것을 예감한 가운데 이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에는 자신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며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겠노라 결의를 밝히는 대목이 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4:7~8)

지난 며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우 위독한 상태였다. 신자들 앞에 나타날 상황이 아니었는데 부활주일 미사에 깜짝 등장했다. 교황이 항상 영적 전투 중에 장렬히 전사하고 싶어했다며 부활주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것이었다고 측근들이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주일 저녁에 선종했다. 사도 바오로의 기도로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신의 품으로 돌아갔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딴지일보에도 실립니다.
#프란치스코교황 #프란치스코교황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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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종교사회학과 국제정치학을, 인도네시아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한국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관심사는 동남아입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여론형성을 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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