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깃발 사이에서 빛나는 '불꽃남자 정대만'
영원한 기록자
남태령 대첩이 있던 날, 그는 광화문에 처음 깃발을 가지고 나갔다. 계엄이 있기 전, 중국 덕후 친구가 보여준 정대만 생일 응원 영상에 엘이디 깃발이 보였다. 중국에선 흔한 것이라고 했다. 갖고는 싶었지만 딱히 쓸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12월 7일 당시 여의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인터넷이 안 되었다. 친구들은 무슨 깃발 아래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말했는데, 깃발 색이나 글귀로는 도저히 서로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 그는 엘이디 깃발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해 줄 줄 몰랐어요. 일주일만 지나면 다른 사람들도 엘이디로 만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대만을 원하더라고요."
중국에서 4만여 원에 맞췄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작하려고 보니 60만 원을 달라는 바람에 포기했다. 사람들이 엘이디 깃발을 만들지 않은 건 비용 때문이거나 중국어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꽃남자 정대만'의 고유한 상징성을 우리는 간직하고 싶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깃발은 다양한 재미와 역동성을 주어서 집회에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같은 깃발이 계속 보이면 다양한 참여자들이 있는 게 아니라 오는 사람만 온다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깃발 없이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집회 주최 측에서 정대만을 찾았다.
"광장을 여는 주최 측에서 원하는데 안 가져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도 삼일절에는 깃발을 안 가져갔어요. 아무래도 일본 만화를 패러디한 깃발이라. 그때 바라본 응원봉이 정말 예뻤어요. 마포대교는 내게 굉장히 친숙한 곳인데,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어요. 일상의 풍경이 달라져 보였죠.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깃발은 모두 7개지만, 시위에 가져간 건 5개다. 하나는 작아서, 또 하나는 색상이 어두워서 제외시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선전전에 꼭 가볼 거예요. 스스로 너무 수치스러운데, 아침에 못 일어나서 못 간 거예요. 엘리베이터 설치는 무리한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건데 왜 안 해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동덕여대도 관심이 가요. 이유 없이 공격하니까 나는 이유 없이 편들어줄 거예요."
그는 아직 자신의 의제가 딱히 없다고 한다. 여성이지만 성격이 무던하고 회피형이라 차별을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서울에 살고, 뛰고 걷는 거 좋아해서 건강하다. 스스로 소수자성을 느낄만한 일이 없었다니 다행이지만, 광장에 있는 한 그도 언젠가 자기 안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고 연루될 것이다.
그는 <슬램덩크> 2차 창작자다. 주로 그림을 그린다. 파면 후에 평일집회를 안 하니까 벌서 작품을 3개나 만들었다. 정대만이 헛된 시간을 보낸 걸 후회하면서 울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 그는 정대만처럼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광장에 나오고 연대한다.
"덕후들은 가볍게 한 번 가볼까, 하는 법이 없어요. 한번 하면 끝까지 하는 외골수적인 기질이 있거든요."
덕후들은 예전보다 많아졌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있으면 해소가 빠르다는 집회의 장점도 알아버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공유하기
집회 주최 측도 찾은 '정대만 깃발'의 탄생 비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