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임대주택 대상자선정 등기 전세임대주택 대상자선정 등기
김가영
그러다 2024년 여름, 서울시에서 날아온 한 통의 우편. '서울형 주거상향지원사업' 안내 책자였다. 서울시와 주택도시공사에서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정착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주민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침수 당시 사진도 함께 냈다.
5개월 뒤, 2025년 새해와 함께 오래 기다렸던 소식이 들려왔다. LH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도심 내 저소득계층 등이 현 생활권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대상자가 거주를 원하는 주택을 물색하면 LH가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LH
주거취약계층 임대주택 설명 참고). 침수를 겪고, 그로부터 2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서울 전역을 돌며 살 집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어느 중개사무소를 가든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요즘 전세 매물 찾기 힘들어요."
전세 사기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고, 그 여파는 내게도 그대로 닿았다. 거기에 LH 조건까지 맞는 집을 찾겠다는 내 말에, 중개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LH로 계약 가능한 집이 나왔다고 하면, 밥을 먹다가도 뛰쳐나갔다. 눈이 쏟아지는 날씨도 날 막을 수 없다. 그렇게 찾아간 집들은, 막상 가보면 대부분 허름한 구축이거나 경사진 골목 끝에 자리한 경우가 많았다. 어디 하나쯤은 늘 아쉬움이 따라붙었다.
반대로 집 상태가 괜찮고 가격까지 맞는 매물은 이미 가계약이 끝나 있거나, 가계약을 하려는 순간 다른 중개사무소를 통해 가계약이 돼서 놓친 경우도 있었다.
집을 찾아 나선지 두 달이 지났다. 몸과 마음이 지쳐 포기를 생각할 때쯤 마음에 두고 있던 지역에 LH 가능한 매물이 올라왔다. 지하철역 10분 거리에 있는 전셋집으로 3층에 7평 10년차 다세대주택이었다.
비록 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꼬불꼬불하고 꽤 들어가야 했지만 6, 4, 1호선이 1km 이내 거리에 있는 지리적 장점이 큰 집이었다. 전셋값도 LH 전세자금대출과 기존 보증금을 합치면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곧장 엄마와 상의했고, 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저… 방금 본 집, 가계약할게요!"
'청년의 표'보다 '청년의 삶'을 먼저 들여다봤으면
서둘러 필요한 서류를 모아 LH에 권리분석을 요청했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열흘이 흐르고, 마침내 주택 계약 가능 통보를 받았다. 이틀 뒤, 계약을 위해 중개사무소를 찾았다.나, 집주인, 법무사, 중개인 총 네 사람이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았다. 다들 표정이 묘하게 비장했다. 나는 끝도 없이 등장하는 서류에 기계처럼 도장을 찍었다.
계약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법무사가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확인서'에 서명을 요청했다.집주인과 중개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거취약계층'이라 적힌 서류에 내 이름을 적으려니 묘한 부끄러움이 따라왔다.
계약을 마치고 중개사무소 문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말 그대로 날아갈 듯 가벼웠다.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한 길고도 험난했던 여정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LH에 월 21만 원 정도의 임대료를 낸다. 임대료와 관리비, 예상 공과금까지 합쳐 대략 월 35만 원을 예상하고 있다.
내 주변에도 이제 막 서울살이를 시작한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들 역시 고작 5~6평 남짓한 작은 원룸이 평균 월세 70만원이라는 현실 앞에 말을 잃곤 한다. 청년들에게 셋방살이는 통과의례가 아니며, 침수된 지하방은 주거취약계층을 증명하는 근거도 아니다.
올해는 대선이 끝나고 장마가 올 것 같다. 아무도 죽지 않고, 쫓겨나지 않고, 잠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데, 2번의 장마를 지나야 하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 대선 과정에서 청년의 표를 바라기 보다, 아무쪼록 청년의 삶을 먼저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대부분의 청년은 '취약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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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전셋방 침수 후 3년, 18번의 탈락 끝에 얻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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