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좋아하는 창작물들
조용미
그는 정치에 대한 반감이 컸다. 친척이 선거에 나가면서 공천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정당과 정치인들의 저열함에 질려버렸다. 부모님은 그에게도 정당 가입을 강권했지만 아직 주관이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특히 큰 정당이 싫었다. 그런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정부상태'가 되자 오히려 수순대로 사건이 해결되는 걸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인식되었다. 정치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기도 전에 세상이 그를 진보로 만든 셈이다.
"큰 정당부터 공천제도를 바꿔야 해요. 정말 일할 사람을 기준으로 뽑아야 하는데 인맥과 줄 서기로 서로 나눠먹기를 하잖아요.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역은 인물이나 공약은 안 보고 당 색깔만 보고 찍으니까요."
그는 뒤늦게 깃발을 들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긴장이 풀리려던 찰나,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내란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에 면접 준비를 접고 깃발을 들고 나왔다.
깃발에는 '이제 세상은 암흑에 잠길 것이라 하여도 우리는 불을 켤 것이다'라는 문구를 썼다. '호그와트가 암흑에 잠길' 때 '누군가는 불을 켜'는 것처럼 바로 그 누군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사회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광장은 이전보다 재밌어졌다. 스티커를 만들어서 명함 나누듯이 서로의 깃대에 붙인다든가 깃발 흔드는 걸 칼같이 동기화한다든가 모든 것이 가볍게 다가왔다. 절대 가볍지 않은 마음을 가볍게, 지지부진한 정치를 좀 더 즐겁게, 투쟁을 오래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되면 금속노조에 연대해보고 싶어요. 민주노총은 무서운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억울한 사람들이더라고요. 자본에 당하고 시민은 모르쇠 하는 그 힘든 세월 어떻게 버텨왔는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는 8개 정당과 비상행동이 공동으로 하는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각 정당이 어떤 정책비전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려 하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정당들은 조금씩 색깔이 달랐지만 이미 암묵적 동의가 된 사항들이 꽤 많았다. 근데 왜 아직도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점점 당원들의 정치역량이 높아지고 있으니 제대로 된 정당 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단순히 잘하는 정치인들을 응원해 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 질문할 때다.
그는 작은 정당이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이번에 나름 마음에 드는 정당을 찾았고, 일할 사람도 보였다.
"입법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끄러운 일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과 대안까지 제시하더라고요. 진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지금 국회의원들은 아무것도 못 하게, 정치를 그만두게 하고 싶어요. 계엄을 옹호하던 입으로 감히 대선에 나오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그는 꼭 토론해보고 싶었던 의제가 있다. '한 명의 남자아이는 어떻게 극우화되는가'에 대한 대응과 대책이다. 정책토론회에서 제안해보고 싶었는데 자유토론시간이 없어져서 못내 아쉬웠다. 포털이나 SNS 시스템에도 압박을 가해야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먼저 문제를 가시화하고 원인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여성이라고 무시하고 장애인이라고 차별하는 사회 말고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동권 보장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우리도 쓰잖아요. 캐리어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텐데, 왜 그걸 망각하고 보장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는 정치를 주제로 스몰토크 하는 사회, 일상적으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게 당연해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 한 잔을 두고 기후 얘기를 하고 대응책을 논하고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퀴어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제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제발 정치 얘기 좀 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삶은 정치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치 얘기를 못 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고요. 보통 정치나 종교 얘기는 피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잖아요. 근데 계엄을 겪고 저도 정치 얘기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당신을 이해한다고 친구에게 말했죠."
보통 퀴어들은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이나 생활동반자법 등 법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는 계엄을 겪으면서 "일상에서 정치는 거부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4개월여를 보내며 그는 이제 정치적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는 소설을 써봐야 알 것 같다. 그에게 광장은 "시작점"이다. 광장의 가치를 유지해야 하고 잊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각자 원하는 정치를 판타지에 담아보고 싶어요. 비록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거죠."
그가 묻는다. 당신의 정치판타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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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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