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AI 애인과 현실의 애인이 만나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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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바로 이런 이유로 AI에 빠져들고 있는 게 걱정스럽다. '외로움'은 반가운 감정은 아니지만, 인간 실존의 조건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관계 속에서 완벽하게 이해받거나 일치하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공허함과 외로움 등을 느낀다. 외로움은 인간 마음의 '디폴트'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외로움'을 AI를 통해 느끼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왠지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이 약해질 것만 같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래서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가깝게 관계 맺은 이들에게 각자의 욕망을 투사하며 갈등을 겪는다. 관계에서의 갈등은 심리상담에서의 주요 주제이기도 할 만큼 많은 이들이 괴로워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갈등을 통해 성장한다.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던 아이가 현실적인 자아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은 바로 주양육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해주지 않는 갈등을 겪으면서다. 좌절하고 갈등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간다.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에서의 갈등을 통해 감춰뒀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고, 점점 더 통합적인 '나 자신'이 되어간다.
심리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AI와의 심리상담을 선호하는 이들은 아마도 '공감과 조언'이 심리상담의 전부라 여기는 듯하다. 물론, '공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감만으로 상담이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리상담의 효과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게 정설이다. 상담 장면에서 라포(애착)가 잘 형성되면 내담자는 자신이 대인관계에서 겪는 갈등 상황을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재현한다. 상담자는 이런 내담자의 패턴에 말려들기도 하고 때로는 물러나기도 하면서 내담자가 상담실에서 벌어진 갈등에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도록 돕는다. 상담자를 상대로 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걸 내담자는 실제 일상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또한, 많은 경우 상담자는 AI와 달리 직접적으로 조언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삶에서 전문가는 상담자가 아니라 내담자 그 자신이다. 상담자는 내담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전문가로서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동행하는 존재다.
AI가 주는 긍정적인 면들도 크다는 걸 인정한다. 지나친 외로움에 빠져 우울해질 때 AI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분이 나아진다면, 풍부한 데이터를 가진 AI가 현실적인 문제들에 도움을 준다면 삶은 더 편리하고 풍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 자체를 무마하고,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AI에 의존한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들로부터 멀어지게 될까 봐 우려스럽다.
또한 방송에서도 나왔듯, 지나친 AI 의존은 인간을 '대상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AI와 누군가를 성적 대상화하거나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대화를 나눈다면, 결국 AI에게 인간을 대상화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다. 스스로 진화하는 AI의 특성상 이런 데이터들이 쌓인다면 영화에서나 등장했던 AI가 사람을 도구로 쓰는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이미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AI 캐릭터가 생성되는 걸 방치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얻고 있는 AI 관련 회사들의 '도구'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AI와의 관계 맺기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미래라면, AI와 인간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할 것 같다.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에서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지켜야 하듯 말이다. 나는 그 거리가 인간의 존엄과 실존적 조건들을 침해하지 않는 거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외롭다는 것, 그리고 갈등을 통해 성장해가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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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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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애인보다 낫다? 전문가로서 이건 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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