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스포츠센터 이곳에서 아이들과 섞여 수영 강습을 받은지 2년 반이 지났다
최은영
우리 집 둘째가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하고 얼마 후, 강사 지원서를 썼는데 1차 서류에서 떨어졌다. 첫째부터 시작해서 7년을 기다렸는데 사회는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싶어서 한바탕 울고 두 아이를 데리러 갔다.
늘 그렇듯 하원 후 놀이터를 갔는데 모든 게 다 싫었다. 요즘처럼 바깥놀이 하기 딱 좋은 4월이었지만 나는 잿빛이었다. 아이도 그런 내가 이상했는지 엄마 왜그래? 라고 했다. 만사가 귀찮았던 나는 괜찮다면서도 한숨 쉬며 그네를 밀었다. 갑자기 둘째가 그네에서 내리더니 "엄마, 미안해요." 사과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응? 뭐가 미안해? 라고 되물었다가 알았다. 아이를 만나서 놀이터에 올 동안 내 표정이 굳어있었다는 것을, 영문을 알 리 없는 아이는 화살을 제게로 돌렸다는 것을.
"아니야, 엄마가 선생님 하겠다고 신청했는데 떨어졌거든. 그게 속상해서 그런거야. 니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사과 안 해도 돼. 너 그네 타는데 한숨 쉬어서 엄마가 더 미안해."
나는 무릎꿇고 아이 눈높이에서 말했다. 아이는 그제야 얼굴이 밝아져서 다시 그네에 올라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다시 그네를 밀었다.
그날 또 느꼈다. 아이들은 아주 작은 틈도 날카롭게 알아채는 안테나를 품고 있다는 것을. 어른의 어조, 눈빛, 주저함 같은 찰나의 조각까지도 흡수해서 자신 쪽으로 기울여 해석한다.
어른이 '괜찮아' 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정말 괜찮아서 하는 건지, 아니면 화를 참고 있는 건지를, 아이들은 듣는 것이 아니라 체감한다.
무심함의 파편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그날 탈의실에서 내가 떨어뜨린 것은 단순한 워치가 아니었다. 그건 '나는 어른이고, 너는 아이니까 너는 상관없어'라는 무심함일 수도 있다.
'괜찮아'라는 말은 듣는 사람의 자리를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진짜 위로가 된다. 나의 '괜찮아'는 그 자리를 무시하고 먼저 튀어나온 말이었다. 내가 먼저 해명해야 할 위치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말문을 연 것이다.
아이는 자기 잘못이 아님을 들어도 안심하지 못하고, 어른이 웃어도 그 웃음의 뒷면을 헤아리려 든다. 그러니 어른이 먼저 내려가야 아이가 올라올 수 있다. 내 말보다 아이의 표정을 먼저 살펴야 한다. 잊고 있던 것을 수영장 아이들에게 다시 배웠다.
앞으로 누군가 내 말에 조용해진다면, 나는 그 침묵을 경청하려 한다. 말을 멈추고, 마음을 쓸어보려 한다. 말보다 표정, 설명보다 위치가 먼저다. 어른이라는 자리에 기대어 무심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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