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게 해준 땅을 빼앗길 수는 없다

남양주시 수동면 김태수씨가 들려주는 땅과 삶에 관한 이야기

등록 2025.04.28 14:03수정 2025.04.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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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버팀목 김수철님과 전승철 주민비대위원장
▲든든한 버팀목 김수철님과 전승철 주민비대위원장 박철순

정현종 시인은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의 인생이 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사람의 일생이 다른 일생을 만나 과거와 미래를 그리는 일이다."

그 좋다는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그런 만남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추억과 소망을 넘어, 자신들의 땅을 지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의 염원을 품고 있다.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내방리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그려 보고자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생태 위기를 사는 우리들의 책무이자 인간의 존엄을 놓지 않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살고 싶었어요"

햇살 좋은 4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어느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집에서 만난 김태수(79세)씨는 등걸 의자에 앉아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그 안에는 살아낸 시간과 지켜야 할 날들에 대한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2005년 대장암과 폐 전이를 진단받은 그는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이주라는 결단을 내렸다.

"마석을 거쳐 결국 수동면으로 내려왔죠. 공기 좋고 물도 너무 맑았어요, 한 번 살 만한 곳이다 싶었답니다. 가족들과 함께 집을 짓고 아들 내외랑 손주까지 오손도손 어울려 집을 일궜죠."

땅은 그를 다시 살게 했다. 자기 손으로 밭을 일구기도 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시 생활과 사업으로 돌보지 못 했던 마음과 몸을 조금씩 회복해 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가족이 있었고,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의지로 가득한 마음이 있었다. 가족과 환경의 응원을 받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던 어느 날 그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관이 떠올랐어요. 골프장은 그런 거예요."

어머니의 묘소 근처에 골프장이 건설된 후 병든 몸을 회복하며 오랜만에 방문한 동네는 예전 그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땅이 질척거리고, 관 안에는 물이 찼더라고요. 어머니 관이 떠오른 걸 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죠."


이장을 하고 돌아오는 무거운 길,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 간혹 어머니께 가던 길을 다시 지나며 만나는 동네 풍경은 그런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사람보다 공장이 더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물 울음소리가 들리던 곳에 골프공 날아가는 것만 보이고."

이제 그 골프장이 그의 삶터에도 들어설 예정이다. 그는 말한다. "이 땅은 우리 손주들의 것이기도 해요. 그런데 골프장이 들어오면 농약도 뿌려야 하고, 짐승들도 다 사라지고... 이곳에 숨이 죽는 거예요. 사람이 없고 동물이 사라진 땅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하죠?"

"번듯한 건물이나 잘 뚫린 길만 행복을 주는 건 아니에요."

김태수님 자택 정성을 다해 일군 가족들의 쉼터
▲김태수님 자택 정성을 다해 일군 가족들의 쉼터 박철순

불편했을 법도 하다. 지금도 시골의 정취가 남은 곳이지만 그가 마을 사람으로, 살기로 했을 때는 교통이나 손주들을 위한 교육이나 모든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이에요." 모처럼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도 중학생과 초등학생 손주들 교육에 마음이 쓰이지는 않았을까? 서울까지 오랜 시간 출근길을 달려야 한다는 아들 내외는 만족했을까?

"여기서 아이들 크는 걸 보면 나는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해요. 밝고 예의 바르고 성적도 좋거든요. 아들 내외도 손주들 크는 걸 보면서 그 먼 거리를 즐겁게 출퇴근했답니다. 별빛으로 가득한 집에서 잠드는 경험 그거 돈 주고도 못 사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세 곳, 네 곳 다닐 학원을 하나 줄이고 대신 아이들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일 것이다. "마음 편히, 제대로, 행복하게 크는 손주들을 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대화 하고 싶어요. 진짜 대화를."

싸움꾼이라서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그도 대화를 원한다.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공무원들도 만났어요. 높은 분도 직접 만나서 면전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그가 느낀 것은 벽이었다. 결정된 것을 집행하고 싶어하는 욕망, 업적을 쌓고 싶어 하는 공직자들의 경직된 마음을 느낀 것이었다.

"말을 들으려고 하질 않아요. 저도 농사를 짓는데 300 정도 되는 밭도 농약을 치지 않으면 관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골프장은 그보다 훨씬 크잖아요. 무슨 친환경 제품이 있다는데, 효과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인지, 사유 재산이라 골프장 건설 진행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면서 농약과 제초제를 기업이 선택하는 것은 간섭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더라구요."

"사람도 죽어요. 벌레가 죽는데 사람이 안전할 수가 없어요. 먼저 죽느냐 늦게 죽느냐 그 차이지. 사람만 안전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으라고만 하나요?"

시장, 시의원, 국회의원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을까요? 어쩌면 뻔한 질문을 던졌다. "막아주셔야죠.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 희생되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게 정치와 행정의 역할 아닌가요."

"나를 살려준 땅을 살리고 싶어요. 싸우다가 밀려나더라도."

그는 싸우겠다고 한다. 골프장 건설이 본격화 되면 시청 앞에 앉아서 단식이라도 하겠다고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이가 바로 김수태씨다. 가족들도 말리고, 함께 아파하지만 그의 결의는 분명했다. "그냥 있을 수는 없죠. 나를 살려준 땅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그래도 결국 골프장이 들어선다면 그는 밀려날 것이다. 생의 일부를 땅에 심은 주민들을 뿌리 없이 떠돌게 만드는 것이 과연 발전일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얼마나 크고 오래 갈까?

"어디 물 맑고 공기 좋은, 사람이 사는 곳을 찾아 떠나야죠. 나를 살려준 땅이지만, 이젠 나를 죽이는 땅이 되는 걸 어떻게 보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끝까지 담담했다. 그러나 말 마디 마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깊이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저 살고 싶어요, 예전처럼."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아픈 손을 감싸며 다시 땅으로 향했다.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가꾸며 돌봤던 땅으로 향하는 그의 등 뒤로 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 #골프장 #생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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