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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작별하지 않는 '과거사 회복청' 필요한 까닭

현재를 살리는 것은 미래만이 아니라 과거이기도

등록 2025.04.29 17:00수정 2025.04.3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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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자문회의와 출장으로 제주에 다녀왔다. 초록의 푸르름이 시작되는 제주는 무척 아름다웠다. 계엄 이후 우리를 구한 과거에 대한 감사함으로 주정 공장 기념관과 하귀리 영모원을 찾아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했다. 계엄 이후 다시 찾은 제주 4·3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날 시민의 힘으로, 군인의 불복종으로 막아내지 못했다면 경험했을 평행세계이다.

제주에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4·3 유적지에 대한 다크 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의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주정공장에서는 한강 작가의 소설을 관람객들이 직접 그 고통을 느끼며 읽어볼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주정공장 기념관
주정공장 기념관 주윤정

하귀리의 유족들이 4·3 피해자, 항일 운동가, 군경의 비석을 함께 세운 제주 4·3의 대표적 화해 상징인 영모원에서는 90이 넘으신 고찬석 어르신을 잠시 뵈었다. 잠시 머무는 동안 영모원에는 다크 투어 참가자와 아이들이 계속 찾아왔다. 어르신께 왜 마을에서 이런 과거사의 화해 기념비를 만들었는지 여쭙자, 마을의 갈등이 너무 많아서 기념비를 만들었고 이 과정을 통해 마을이 합심해 더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들을 잘 모신 덕에 마을에 번영이 왔다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르신께 "12·3 계엄 이후 괜찮으세요?"하고 여쭈었더니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차 싶었다. 연구자의 호기심으로 공연히 기억을 떠올리게 했구나 후회했다. 고찬석 어르신은 그 찰나에 과거 살육과 폭력의 기억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사람이 그렇게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짓은 다시는 못 할 거야"라고 천천히 힘겹게 말을 이어가셨다. 고찬석 어르신 같은 분들이 계속 작별하지 않고 싸우시고, 기억을 모으고, 신들을 잘 모셔서 우리가 겪어서는 안 될 몹쓸 짓은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귀리 영모원
하귀리 영모원 주윤정

 영모원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
영모원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 주윤정

2. 과거사를 덮는다는 유력 대통령 후보

그런데 유력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씨가 보수 평론가들과의 대화에서 친일과 과거사 문제는 덮는다고,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기에 과거사는 지금은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계엄의 충격으로 아직도 밤잠을 못 이루는 국가폭력 피해자들, 아직 해원조차 안 된 수많은 죽은 이들, 땅속에 묻혀 있는 유골들, 억울하게 죽은 이들 덕에 우리 모두 간신히 살아남은 지금, 그 말씀이 어떤 의도인지, 가짜 뉴스는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다(이재명 후보는 최근 한 경선 토론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지금 이념 문제로 너무 분열되고 대결이 격화되어 있는데,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할 때다, 그런 문제들은 가급적 지금 단계에선 (다룰 게 아니라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했다 - 편집자 말).

과거사 정리와 회복은 단순히 진영이나 정파의 목표가 아니라, 나라의 근본과 헌법의 뜻을 바로 세우며, 다시는 12·3 계엄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모아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키우는 일이다. 정파적인 것이 아니기에 과거사 2기 출범 때에도 김무성 전 의원도 힘을 보태며, 간신히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과거사 정리는 국가폭력 고통을 겪은 이들이 그 피해로 인해 겪은 불평등과 격차를 해결하는 일이며, 이들 개인들의 해원에 기반해 사회의 갈등을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 우리가 다시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상생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제주 영모원을 세운 하귀리는 마을 발전을 이루기 위한 절박한 마음에서, 과거를 망각하고 덮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뜻과 마음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


민주주의 선진국인 독일과 캐나다, 스페인은 과거사 정리의 과정과 기억을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이행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은 민주주의의 퇴행과 극단적 정치세력의 성장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 회복력과 퇴행 방지를 위해 과거사 정리를 책임 있는 국가 사무로, 상설 기구로 제도화하는 것은 새로운 정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3. 과거사 정리의 국가 책무성과 전문성의 과제


필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후속 기구로 과거사 재단 정책 연구 책임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 연구와 이후 해외의 다양한 사례 조사를 통해 과거사 정리 관련 업무는 반드시 국가 사무화되어 책무성을 가지고 전문성을 심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전 세계 유례없이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일종의 복합적이고 지속적 운동으로, 동학농민운동부터 시작해 식민지 시기, 4·3, 한국전쟁, 부마민주항쟁, 5·18, 권위주의 시기 인권 침해, 수용 시설 인권 문제, 입양인, 국가 폭력 속 여성 폭력 등으로 지속적으로 확장·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과거사의 영역이 확장·심화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전세계에서 당사자의 인권운동 주장이 가장 강한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유족·시민사회·법조인·학계의 "작별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피땀, 눈물 덕분이었다. 그래서 국가의 기본계획과 정책 전달 체계 없이 운동의 결과로 여러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다 보니, 여러 문제점과 제도적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이를 해결해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위한 제도적 역량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거사 기구를 국가부처로 통합하고 국가기구로 상설화해서 우리 국민의 위대함에 응답해야 한다.

보훈부의 일 년 예산은 5조가 넘으며, 보훈에 대해서는 연구원이 설립되어 체계적으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을 위해서뿐 아니라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해원과 상생 역시 담당하는 국가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실제로 프랑스 보훈부에는 전투에서의 민간인 피해자, 핵실험 피해자, 테러행위 피해자 등 특정 범주의 국가행위의 피해자들을 지원범위에 넣고 있다.

첫째, 제도적 역량 제고를 통해 국민통합

과거사 정리가 20년 이상의 역사에도 제도적 역량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한국에는 20여 개가 넘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으나, 전체 기획·조직화·제도화 없이 사건별·지역별로 산발적이고 임시적 운영에 그쳤다. 이로 인해 개별 위원회 활동이 제도적 역량으로 확장되지 못하여 기록물도 산재해 있으며, 진실화해위원회 권고 역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으며 개별 피해자들은 민사손해배상을 통해 배보상의 절차를 밟고 있다.

국가폭력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무책임성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사 관련된 영역이 이념갈등과 사상갈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은, 국가가 책무성을 가지고 제대로 기본법, 기본계획, 정책 전달체계를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런 국가의 골간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이념 갈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국가의 신뢰 문제를 야기한다.

국가의 잘못을 국가가 제대로 바로잡지 않는다면, 국가긴급권의 남용으로 불행한 사태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12·3 계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이승만 대통령 당시 1952년 계엄부터 언급한 것은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여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사 조사와 회복, 기억의 과정을 체계적인 국가사무로 만들어 국민통합의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기억문화/기억경제를 전문적으로 활성화

곧 임기가 끝날 진실화해위원회, 지역 위원회, 행안부 산하 과거사 지원단, 향후 설립될 과거사 재단이 산재해 있다. 광주의 5·18 재단, 제주의 4·3 평화 재단 등 지역별 유해 발굴·진상규명 과제가 산적하지만, 기억 문화(memory culture)·기억 경제(memory economy) 활성화를 위한 예산과 전문성이 부족하다. 지역의 청년들이 기억문화와 기억경제를 통해 지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 현재 다크투어에 대한 관심이 제주, 광주 등에서는 상당한데, 이는 민주시민교육과 결합하여 새로운 민주주의의 회복력의 사회적 제도가 될 수 있다. 이런 콘텐츠들이 개발되고, 박물관, 민주시민 교육, 관광 등으로 연계해 사회의 새로운 가치의 영역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전 세계 민주주의 후퇴와 한국의 역할

미국·유럽·동남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군부 등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민주주의의 공간이 위축되고 있다. 한국의 경험, K민주주의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발전단계에서 미국과 독일의 민주주의 관련 기관들이 한국에 많은 도움을 준 것처럼, 우리도 K민주주의를 통해 우리의 경험을 아시아, 더 나아가 아프리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물론 이런 활동이 한국에 대한 전 세계적인 신뢰를 높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회복력은 단순히 원상복구,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경유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변혁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의 과정이다. 더 나은 미래는 성장이라는 추상적이고 텅 빈 구호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경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 변혁 속에서 가능하다. 현재를 살리는 것은 미래만이 아니라 과거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과거사 회복청을 정부 조직안에 신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새 정부 출범 즉시 과거사 정리 혁신 추진단을 대통령실 산하에 조직하여 조사·배보상·회복·기록·기억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획·설계·조정해야 한다. 과거사를 덮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설사 정권차원에서 덮는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민주화 이후 만들어진 민주주의 회복력의 핵심 기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며, 축적된 국가적 역량을 낭비하는 것이다. 제주의 하귀 마을이 영모원을 통해 기억을 간직해 마을 발전을 이룬 것처럼, 새로운 대한민국도 과거의 기억을 잘 모시고 아픔을 어루만져 민주주의 회복력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글쓴이 주윤정은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SSK 느린 재난의 연구책임자, 부산대 대학평의원, 국가유산청 근대문화유산분과 문화유산전문위원이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과거사 회복의 새로운 흐름―아동, 소수자, 소수민족의 변형적 정의」(2024),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2020,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화해 모델 및 진실‧화해재단 설립 방안』(2022) 등이 있다.
#과거사회복청 #과거사진상규명 #국가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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