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도 산업전환도 공적 규제가 필요해"

[일터 기후정의 공론장] <반도체특별법 논란을 넘어 대안 찾기 회원 집담회> 후기

등록 2025.04.29 11:25수정 2025.04.3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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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를 막론하고 반도체특별법 입법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한노보연은 이 법안의 저지를 위해 적극 대응해 왔다. 지난 3월 12일에는 한노보연 노동시간센터와 기후정의팀이 공동으로 ‘반도체특별법 논란을 넘어 대안 찾기 회원 집담회’를 열었다. 반도체특별법 논란으로 촉발된 ‘주 52시간제’ 문제를 넘어 그간 끊임없이 시도되어 온 노동시간 유연화의 역사적 흐름을 읽어내는 한편,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반도체산업과 특별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했다. 또한 한노보연도 함께하고 있는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이하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의 주요 고민 지점이었던 ‘현장 당사자의 요구’와 문제의식이 기후정의 대안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려 했다. 연구소의 두 의제 단위가 마련한 공론장에서 나누었던 여러 층위의 고민들을 간략히 소개한다.[기자말]
우리에게 노동시간은 주간에 일하고 야간에 자는 것, 즉, '규칙적인 노동'을 의미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신체의 생체리듬을 항상성 있게 유지하기 위하여도 필요한 일이다. 일반법(근로기준법)에서 노동시간의 한도를 정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노동시간센터 전주희 센터장은 특별법 제정으로 이러한 일반법의 원칙을 무력화하는 '예외'의 상례화 현상에 주목하며, 한국의 노동시간이 현재까지 어떻게 유연화되어 왔는지를 짚었다. 과거 김영삼 정부의 변형근로시간제 졸속 강행, 문재인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규제 완화, 2023년 연장근로 판단기준을 변경한 대법원 판결(1주 연장근로 12시간 가능하지만, 1일 연장근로 한도는 없다)과 그로 인해 변경된 2024년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예로 들었다.

그렇기에 반도체특별법은 새롭게 불거진 이슈가 아니며 이미 '노동의 유연화'와 나란히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함께 있었다고 전 센터장은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한국 사회가 장시간 노동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몰아서 일하는 관행을 만들었다"고 제기했다. 또한 이러한 특별법 제정은 과거 '경제위기 타개'라는 미명하에 국가 주도로 이뤄진 경제성장 문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현 시점에서 전혀 선진적이지도 새로운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연구소 기후정의팀의 상현은 기후정의에 역행하는 반도체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제기했다. 반도체산업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전력과 산업용수 소비가 필수적으로 전제된다. 2053년까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국가산단 및 일반산단)에서만 10GW 이상의 전력이 소모되는데, 이는 10개 발전소의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산업용수 역시 매일 133만 톤 규모로 공급된다. 또한 이 같은 반도체 칩 생산 확대는 온실가스 대량 배출과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

상현 회원은 SK하이닉스, 삼성 같은 재벌 대기업에 특혜를 몰아주는 반도체특별법 시행은 국가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 계획을 후퇴시키며 환경 규제 완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기후악당인 반도체산업 대신 필수·공공 분야 일자리 육성과 공공재생에너지, 교통, 의료 등에 공적자금을 투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회원은 공동행동의 향후 활동 계획을 공유했다. 현재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산업의 노동조합과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 70여 개 단위가 참여하고 있는 공동행동은 노동시간 연장 문제와 함께 노동자 건강권 훼손, 대기업 특혜, 위험의 외주화 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심화시키는 특별법의 문제점을 폭로하며 '특별법 전면 폐기'를 목표로 활동 중이다.

또한 최근까지도 연이어 제기되고 있는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와 위험의 외주화·이주화 문제도 함께 짚어보았다. 작년 12월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했고, 반도체 고등학교, 특성화대학교, 대학원 등을 설립하여 향후 10년간 약 15만 명의 반도체 노동자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종란 회원은 ▲반도체산업의 설비, 방사선 노출, 화학물질 중독에 대한 관리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 국가 차원의 규제와 위험 통제가 더욱 요구됨에도 오히려 반도체산업에 집중 투자하며 맞춤인력 공급에만 힘 쏟는 정부의 재벌 특혜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지난 2월 15일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이 대한역사박물관 인근에서 방진복 퍼포먼스와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지난 2월 15일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이 대한역사박물관 인근에서 방진복 퍼포먼스와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

이어진 회원 토론에서 참여자 대부분은 장시간 노동체제에 몰아치기 노동을 확대하려는 반도체특별법의 문제가 반도체산업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일하는 사람 모두의 문제이며, 그렇기에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공동대응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후정의 관점에서 제기된 반도체산업의 전력과 산업용수, 화학물질의 과다 사용과 탄소배출 문제는 농업, 철강, 자동차, 화학 등 여타 산업과 대비했을 때 차별점이 있는 문제제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간 반도체산업이, 특히 삼성이 노동자 건강권 문제와 고용구조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책임을 회피했던 부분을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하며, 특정 산업과 기업에 규제 공백을 만들며 자본 축적을 가능케 하는 특별법의 문제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나아가, 화석연료의 채굴과 추출에 기댄 성장주의에 반대하며 기후정의운동과 더욱 긴밀히 연결될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공동행동의 특별법 저지 활동은 주 52시간 적용제외 논란으로 본격화됐지만 이후 기후정의동맹과의 토론회, 진보3당과의 기자회견, 다양한 영역에서의 연대를 통해 확장될 수 있었고, 근본적인 대안까지도 고민하게 되었다는 발표자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연구소 기후정의팀과 노동시간센터가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였다. 이번 집담회를 통해 반도체특별법 문제가 노동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 탄소배출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성장주의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제기되지 못하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집담회 제목처럼 노동시간과 산업전환, 그리고 노동자·시민을 위협하는 산업을 공공이 어떻게 규제하고 관리하게 만들 것인지, 그 모든 과정에 노동자가 어떻게 개입하고 통제할 것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현장과 접속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의 필자인 유경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공인노무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에도 게재됩니다.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정의로운전환 #노동시간유연화 #반도체클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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