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에는 뱀 비늘, 팔색조 깃털, 꿩 깃털, 쇠딱따구리 깃털, 호랑지빠귀 깃털 등(시계방향)이 있고 통에 든 건 산양 똥이다. 황미냥이 들고 있는 건 노루 뿔.
조용미
그 뒤로 거통고 승리문화제, 동덕여대, 전장연 시위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을 찾아 부지런히 다녔다. 방구석을 좋아하는 내향인답게 그는 주로 뒤에서 가만히 발언을 들었다. 그는 집회에서 발언에 집중하는 편이다. 현장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의제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출장이 많지 않았다. 대구에 출장 갔을 때는 대구집회에 참석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보수의 성지라는 그곳에도 각자 자신의 삶을 지키고 바꿔나가려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는 깃발을 늦게 들었다. 계속 깃발을 들어도 될까,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3월이 되자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만들었다. 한두 번 들겠지, 이번 주면 끝나겠지 했는데 꼬박 한 달을 흔들었고, 파면 후에도 아직 깃발을 놓을 수가 없다.
'방구석 탐조인 연합.' 작년 여름 보령로터리 CCTV에서 새호리기가 관찰된 적이 있는데, 그때 '방구석에서 편하게 탐조하세요'라는 밈이 생겼다. 방구석도 좋아하고 탐조도 좋아하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생명 그 자체, 또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볼 때 정말 사랑스러워요. 죽어도 좋아, 정도의 충만함을 느껴요."
그는 환경과 노동이라는 두 가지 의제에 주목한다. 그가 하는 일만 봐도 그렇다. 환경영향평가는 기본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의뢰인이 시공사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가 되려면 규제와 보호에 대한 시스템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공사를 진행하는 노동자들의 혹독한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업무량이 많고 노동시간이 길어서 결국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조선소에서는 아직도 목숨을 비용으로 따지며 매일 사람이 다치고 죽어간다. 이제는 같이 사는 세상, 내 이웃이 죽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최정상이잖아요.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피와 고름, 잔해와 상처를 돌보기 위해 잠시 멈출 때가 된 것 같아요."
나는 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연 성장을 멈출 수 있을지, 그러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다 바꿔야 할 텐데 그것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그는 어차피 한 번에 멈추지는 않을 테니까 멈추자는 말을 쉬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코로나 때 사람들이 멈추면서 바닷가에 거북이가 돌아오고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던 사슴이 먹이를 찾으러 야생으로 나오고 했잖아요. 저는 그런 공존의 시대로 나아갔으면 해요. 그러려면 공존의 주체인 인간이 먼저 살 만해야 해요. 죽지 않는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해야 해요.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생물들과 공존할 여유가 생겨요."
언론과 자본 세력들은 계속해서 성장을 부추기고 우리의 눈을 가리려 하겠지만, 다행히 이번 계엄을 지나오면서 시민들은 주어진 정보 너머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분석하고 평가하고 다시 확인한다. 이게 계몽이라면 계몽이다.
"이번 마트노조 농성만 해도, 어쩌다가 마트노조가 농성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알려고 귀 기울이게 되었죠. 그들의 노동현실을 알게 되면 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요. 결국 투쟁이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그는 이제 별로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속한 대학원 노조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또한 계몽이라면 계몽이다.
"부모님이 꽤 진보적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제가 슬쩍 커밍아웃을 했는데 조금 놀라셨어요. 그래도 친척의 성소수자 커플을 일부러 만나보시고 나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알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 정도면 굉장히 진보적인 분들인 게 맞다. 성소수자가 이웃으로 같이 산다는 것, 가시화된다는 건 이토록 큰 힘을 발휘한다. "성소수자 문제가 가득 차올라서 세상에 나올 때가 되었다"던 그의 말처럼 이번 광장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이웃으로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광장은 내게 희망이에요. 광장에서 희망적인 미래의 편린을 봤거든요. 보고 나니까 멈출 수가 없어요. 그 끝도 봐야겠어요. 덕질도 열심히, 투쟁도 열심히 할 거예요."
윤석열이 파면된 이후에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조만간 카메라를 사서 탐조하는 즐거움을 본격적으로 누릴 작정이다. 지난주에는 전장연 고공농성장인 혜화동 성당에 다녀왔고 이번 주에는 학비연대 저녁문화제와 노동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한참 핸드폰 속에 담긴 맹꽁이, 곤줄박이, 뱀 등을 내게 보여 주며 웃음 지었다. 그의 웃음이 영락없는 덕후의 그것이라 별 관심 없던 나에게도 조금 전염되었다. 직접 만지는 게 아니라면, 방구석 탐조라면 구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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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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