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월 23일 무죄판결을 받고 나서. (좌측 여성부터) 고 김진생(송상진선생 부인), 고 이영교(하재완선생 부인), 문정현 신부, 이정숙(이수병선생 부인), 강순희(우홍선선생 부인), 고 신동숙(도예종선생 부인), 유승옥(김용원선생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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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 당하기 직전 가족들이 이들을 구명하기 위해 벌인 활동 중 가슴 아픈 사연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편들이 다음날 신문에 간첩으로 발표가 된 상황에서 어이없어 하던 부인들이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뜻 있는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이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노트 신부님은 지인들 통해 인혁당재건위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하며 구명운동에 함께 해주셨다. 이 분들 도움으로 한국민주화를 위해 가졌던 '월요모임',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인혁당 사형수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전했다.
특히 하재완 선생의 부인 이영교, 도예종 선생의 부인 신동숙, 송상진 선생의 부인 김진생 님들은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숱한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이렇게 사형수의 부인들이 종교계 정치계 등 사회 인사들을 만나며 구명활동을 벌여나가자 부인들을 연행, 협박하며 '더 이상 남편의 구명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했다. 특히 한 부인에게는 환각제를 탄 물을 주고 서명을 강요했다. 그 부인은 남편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서약서를 작성한 게 너무도 억울해 자식들과 함께 약을 먹고 죽으려 했다는 사연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구명운동보다 더 힘든 일은 어린 자식을 돌보는 일이었다. 구명운동을 위해 자주 집을 비우다 보니 어린 자식들을 돌 봐줄 사람이 없었고, 그런 아이들이 거리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는 일이 자주 있었으며, 심지어 가짜 권총을 들이대며 사형 시킨다고 큰소리를 치는 못된 놈들도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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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이 억울하게 어느 날 갑자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 그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나?
"남편을 잃은 이들에게는 더 무서운 천벌이 다가왔다. 연좌제다. '간첩가족'이라는 딱지는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게 하고, 삯바느질을 하던 부인에게는 일감이 줄어들게 했고, 양장점을 하던 부인은 문을 닫게 만들었다. 가까운 친인척들도 도움은커녕 이들을 멀리했다.
가정살림을 하던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기 위해 학습지를 돌리러 거리로 나섰고, 조그마한 구멍가게라도 열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다. 이런 힘든 삶을 더 힘들게 한 것은 공안기관의 감시였다. 집 앞에는 경찰초소가 세워지고, 나라에 큰 행사나 외빈이 방문하면 외출을 금지 당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의 아픔을 아는 이들의 도움이었다. 구명운동에 함께 했던 신부님들이나 목사님들은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이들을 찾아와 격려와 선물을 제공했으며, 직장을 구해주거나 자녀들 학자금을 보태 주기도 했다. 또 사형수가족들의 아픈 사연을 국제엠테스티에 알려 회원들이 스스로 나서 격려편지를 보내거나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이런 구원의 손길 덕에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녀들은 잘 성장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녀들도 있었다. 아버지 죽음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녀들은 그 트라우마에 갇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생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아픔으로 인해 유가족들은 2007년 1월 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고 기뻐하기는커녕 '내 남편을 살려내라. 왜 죄 없는 사람을 죽였냐'며 통곡했다."

▲ 대검찰청이 작성한 도예종씨의 ‘형 선고통지’. 사진 아래 두 개의 도장을 보면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가 접수한 시각이 '4월 8일 3시'이고, 서울구치소가 접수한 시각은 처음에는 '4월 8일 14시'로 찍혔다가 '9일'로 고쳐졌다. 즉 대법원 선고가 8일 오후에 있었는데, 그 전에 이미 사형선고통지가 있었고, 서울구치소에서는 8일이 맞다면 역시 대법원 선고가 진행되는 시각에 구치소에 벌써 통고가 된 것이고, 고쳐진 9일이라면 사형이 집행된 다음에 사형선고통지서가 도착한 것이 된다. 이렇게 실제 상황과 맞지 않은 공문이 작성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대법원 형확정 즉시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법원절차를 무시한 채 명령을 하달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9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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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의 대표적 '사법살인' 희생자인 8분에게 '무죄확정'을 시켜 준 명예회복은 사건발생 1975년부터 32년이 지난 2007년 1월에야 뒤 늦게 이뤄졌다. 그동안의 진상규명과정은 어떠했나?
"아픈 이야기지만은 87년 6월 항쟁이 터지고 우리사회 곳곳에서 민주화바람이 불었다. 항쟁 직후 87년 7, 8월 노동자대투쟁이 있었고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88년에는 분단올림픽을 반대하는 통일운동도 거세게 일어났다. 광주민중항쟁도 국회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투쟁도 벌어졌다. 이때 인혁당 사형수의 부인들도 남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그런데 '간첩의 부인들'이 이곳에 왜 왔냐며 냉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메카시즘이 6월항쟁 이후에도 우리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8년 '소위 인혁당재건위사건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진실을 바라는 유족들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다행이 당시 김대중 정부는 과거 의문사 사건들을 조사하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고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2005년에 가해자였던 중앙정보부의 후신 국가정보원에서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었다고 발표하고 재심이 개시되었다."

▲ 지난 2025년 4월 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4.9통일열사 50주기 추모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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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지난 해 12월 탄핵 직전 임명한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 위원장 박선영은 박정희가 "독재 안 했다고 할 수 없다. 유신도 했고. 그런데 왜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라가 달라져야겠다, 제대로 된 국가가 들어서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라며 평소 박정희 독재를 옹호하고 이에 대한 책도 써서 진화위 직원들에게 배포해 큰 물의를 빚었다. 이렇게 박정희 독재를 열렬히 옹호하는 박선영씨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조언할 생각이 없다. 박씨는 당장 진화위 위원장에서 사퇴해야 한다. 박씨는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윤씨가 헌법재판관 친인척이라 탄핵을 모면해보고자 임명한 것이다. 박씨는 박정희 전두환을 칭송하는 사람인데 그 정권에서 자행된 인권탄압사건을 조사하는 진화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자체가 부당한 것이다. 이제 윤씨도 탄핵된 마당에 뭘 더 기대하나. 조언을 하라면 바로 사퇴하라는 말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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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월 3일이면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것 같다. 새 정부에 인혁당사건과 관련해 바라는 바가 있나?
"1975년 4월 9일을 국제법학자협회에서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칭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불명예스런 그 단어를 그대로 둔 채 단지 그 위에 '무죄'라는 단어를 적어 놓은 꼴이다. 독일 정부는 지금도 나치잔당을 추적해 단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인혁당 사건을 무죄로 하고도 그 가해자들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않았다. 이는 비겁한 행위다. 국가는 진실화해법을 만들면서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배상은 물론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적어 놓고 있다. 그런데 배상만 하고 그 외의 명예회복을 위한 일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는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들을 위한 명예회복을 위해 나서야 한다."

▲ 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인 문정현 신부가 직접 서각한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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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창훈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충북 제천에서 성장해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경희총민주동문회에 몸담으면서 민족민주운동에 참여해 왔다. 지난 2011년부터는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으로 일하면서 박중기 선생, 시노트 신부, 권양섭 선생, 박정기 선생, 권재혁 선생 등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전기 자료집 백서 등을 펴내는 일에 참여했다. 지난 2015년에는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2020년에는 <김말룡 평전>를 폈다.
다시, 봄은 왔으나 - 인혁당재건위 사건 사형수 8인의 약전
이창훈 (지은이),
삼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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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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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자가 없으면, 진실은 두 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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