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들어가며
지난 십 수년 동안 KBS, MBC 등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극심한 내홍을 겪어왔다. 공영방송 이사나 경영진을 임기 도중에 교체하려는 시도는 몇 년 주기로 되풀이되었고, 이곳저곳에서 벌어진 푸닥거리는 결국 법원에서 결말을 맞았다. 여러 판결을 통해 법원은 공영방송 사장이나 이사를 함부로 해임하는 것이 방송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방송의 영향력이 전에 비해 크게 약해진 상황이었지만, 공영방송 물갈이는 전보다 빠르고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이진숙 방통위원장 체제 아래 공영방송 이사와 경영진들은 정권의 우호 세력으로 채워졌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평온한(?) 상태에 있던 EBS도 이번엔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사적으로 가깝다고 알려진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가 EBS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EBS 또한 정치적 격랑에 휘말리게 되었다.
사건의 경위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에서는,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EBS 사장을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법 제10조 제3항에서는 사장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전임 사장이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후임 사장 임명이 늦어지더라도 EBS에 경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김유열 EBS 사장은 2022. 3. 부터 2025. 3. 까지 제11대 사장으로 재임했고, 방통위가 적법하게 후임 사장을 임명할 때까지 사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방통위는 위원 5인 중 2인만 남아 있는 상태여서, 정상적인 의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원 상태에 있는 위원들이 일부라도 임명되어 방통위가 정상적으로 심의 및 의결을 할 수 있게 된 뒤에 EBS 사장 임명 절차를 진행했어야 했지만,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2025. 3. 26.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를 EBS 사장으로 임명했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방통위원 1인 김태규의 동의를 구한 뒤 자신의 후배를 EBS 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EBS 구성원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임명 과정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최근 수년 동안 정치적 행보를 해 온 인물이 EBS 사장으로 올 경우 벌어질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컸다. 노동조합이나 직능단체가 비판에 나섰고, 보직을 맡고 있던 간부들 대다수가 사퇴 의사를 밝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유열 EBS 사장은 신동호에 대한 임명 처분을 법적으로 다투기로 하고 서울행정법원에 임명처분 무효확인 및 임명처분 효력정지신청을 제기했다. 김유열 사장은, 방통위가 정상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상태(이른바 '2인 체제')에서 신동호에 대한 임명 절차가 강행되어 절차상 하자가 중대하며, 이로 인해 자신의 직무수행권이 침해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재판에서의 쟁점 및 법원의 판단
심문기일에서는 몇 가지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이미 임기가 만료된 사장이 후임자 임명 과정의 절차 위법을 문제 삼을 자격을 인정할 수 있는지, 방통위가 2인만으로 구성된 상태에서 집단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절차상 문제가 있는지, 임명처분의 효력을 정지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는지, 효력을 정지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지 등에 대한 양쪽의 입장이 맞섰다.
법원은 방통위와 같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경우, 2인의 구성원만으로 집단적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해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입법 목적 등에 비춰 방통위법은 방통위의 회의체에서 이뤄지는 의사 결정이 위원 간 토론과 협의를 통해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이뤄질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런데 이 사건 처분의 경우 피신청인을 포함한 2인의 재적 위원이 신동호를 EBS 사장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하기로 심의·의결하고 그에 따라 임명이 이뤄졌는 바, 피신청인의 주장과 자료만으로는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라고 판시하였다.
2인의 구성원인 경우에는 의견이 갈릴 경우 과반수 찬성이 원천적으로 불가하므로 오로지 일치된 의견으로만 의사 결정이 가능하게 되는데, 이는 다원적 구성을 통한 자기 통제 및 다수의 의견 교환을 통한 의사 결정의 합리성 도모라는 합의제의 특성 자체를 흠결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더하여 법원은 김유열 EBS 사장이 사장으로서 직무 수행권을 침해 당하는 것은 단순한 금전 보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손해에 해당하며 사장 직무의 공백으로 인한 조직 혼란, EBS의 공공성·독립성 훼손 우려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와 함께 오히려 위법한 임명이 강행될 경우 EBS 경영 안정성, 교육 공공성에 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서울행정법원은 신동호에 대한 EBS 사장 임명 처분의 효력을 본안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김유열 사장은 12일 만에 EBS 사장에 복귀하여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결정의 의의
이른바 방통위 '2인 체제' 의결에 대하여는 그간 여러 법원 판결과 결정이 그 위법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진숙 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 헌법재판소가 '2인 체제 의결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재차 신동호에 대한 임명까지 밀어붙인 것이다(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2인 체제 의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그것이 헌법재판소 다수 재판관들의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4인의 헌법재판관은 방통위원장이 2인 체제 의결을 밀어붙인 것은 파면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비위행위라고 판단하였다).
이 결정에서는 다시금 '방송의 자유와 독립 등 중대한 공익과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는 2인만으로 심의와 의결을 진행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짚었다. 얼마나 더 많은 법원의 결정이 나와야 방통위가 위험한 질주를 멈출지 궁금해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연구조사, 변론, 여론형성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88년에 결성된 변호사들의 모임입니다.
공유하기
'2인 체제 방통위'의 EBS 사장 임명처분 위법성 확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