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해지는 낙산사 홍련암. 파도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이준수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무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은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유일하게 외우는 염불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뜻이길래 이리도 오래, 널리 알려진 걸까. 우선 '나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 namas를 음역 한 말이다. 인도식 인사인 "나마스떼(namaste)"와 어원이 같다. 존경합니다, 경배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무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중생을 돕는 존재를 가리킨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왜 유독 '관세음보살'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걸까. 아이들에게 불쑥 물어보았다.
"너희 길 가다가 꽈당 넘어지면 뭐라고 외쳐?"
"엄마야!"
"그래, 엄마부터 찾고 보잖아. 불교에서는 위급할 때 찾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이야."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으로 석가모니 곁에서 법문을 보좌한다. 미륵보살은 언젠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부처가 될 존재로 중생의 희망을 대변한다. 대단히 중요한 분들이다. 그렇지만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한다. 자비의 화신으로서 삶이 괴로울 때 보호해 주는 것이다. 지혜도 멋지고, 미래의 희망도 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세상살이하면서 바로 피부에 와닿는 건 따뜻한 위로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부르면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나 도와준다.
낙산사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세 곳 모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해안 절벽 부지에 있다. 우리 가족은 열 차례도 넘게 낙산사를 방문했다. 매번 느끼지만 낙산사만큼 사계절 가리지 않고 참배객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도 드물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낙산사를 경건한 사찰이라기보다 전망 좋은 곳에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멋진 장소로 받아들인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이런 느낌인 걸까.
"낙산사가 세워진 산의 이름은 '오봉산'이었어. 그런데 왜 절 이름이 '오봉사'가 아니라 '낙산사'일까?"
"산 이름을 바꿨겠지."
"멀쩡한 산 이름은 왜 바꿨을까?"
"오대산이랑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 구분하려고?"
재미있는 추측이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인도의 보타낙가산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절을 세우면서 이름을 '낙산사'로 정했다. 자연스레 산 이름도 오봉산에서 낙산이 되었다.
관음성지답게 낙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각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원통보전'이다. 보통 절에 가면 '대웅전'이 있다. 그러나 낙산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웅(大雄)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에서 지칭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 할 수 있다.
원통보전을 나와 언덕으로 향하면 '해수관세음보살상'을 만날 수 있다. 해수관음상은 낙산사의 랜드마크다. 우리가 낙산사를 방문한 날에도 어린이와 노인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기도를 올렸다. 흥미로운 현상도 발견했다.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다른 장소로 곧장 이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다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주문에 걸린 것처럼.
"여기서 보는 바다 너무 예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홍련암에서도 의상대에서도 사람들은 바다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때로는 감탄하면서, 때로는 눈을 감으면서. 이 순간을 위해 낙산사에 온다고 말하고픈 얼굴이었다. '바다'가 모든 것을 받아준다고 해서 바다라고 불리는 것처럼, '관세음보살'은 모든 괴로움을 받아주는 듯했다.
어린이와 함께 낙산사를 방문한 엄마 아빠라면 '보물찾기'에 도전해도 좋겠다. 보물 제499호로 지정된 원통보전 '칠 층 석탑'을 비롯해서 '건칠관음보살좌상',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비 및 사리장엄구' 등 낙산사에는 진짜 보물이 있다. 보물을 부지런히 찾다 보면 어느새 갑갑했던 마음이 풀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낙산사의 상징과도 같은 '해수관세음보살상', 108 법륜석이 주변에 깔려있다.
이준수

▲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할 때 머무르며 참선한 장소에 세운 '의상대'. 의상대 일출은 관동팔경 중 하나다.
이준수

▲ 천 오백 관음상을 봉안하고 있는 보타전. 천수관음이 시각화되어 있다.
이준수
고즈넉한 천년 고찰, 강릉 보현사 한 바퀴

▲ 대관령 자락에 위치한 보현사는 650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이준수
천년 고찰을 '최고의 산책' 코스로 꼽으면 다소 불경한 걸까. 강릉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보현사는 떠올리기만 해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숲 산책' 핫 플레이스다. 사실 주변에 더 유명하고 화려한 절도 많다. 평창 쪽으로 월정사가 있고, 설악산에는 신흥사가 있다. 그렇지만 보현사는 다른 어떤 절 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보현사는 대관령과 선자령 바로 아래에 자리하여 산세가 훌륭하다. 보현사로 접어드는 도로부터 예사롭지 않다. 보광리 입구에서부터 보현사까지 이어지는 4km 길이의 도로는 계곡을 끼고 있다. 사파이어빛 물총새가 날아다니고, 물 소리가 고막을 편안하게 두드린다. 자동차 창문을 저절로 내리게 만든다.
"얘들아, 보현사가 왜 보현사인 줄 알아?"
"너무 쉬운데? 보현보살이 있겠지. 아빠가 낙산사에서 보살들 가르쳐줬잖아."
관세음보살과 보현보살을 비교하며 흘리듯이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보현사에는 재미있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천축국에서 돌로 된 배를 타고 남항진 해변에 당도했다. 두 보살은 도착한 자리에 절을 세우는데, 절이 완공되자 보현보상이 말하길.
"한 절에 두 보살이 같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나는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지는 곳을 새 절터로 삼겠다."
보살의 신력으로 활시위를 당기자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데, 떨어진 곳이 바로 현재의 보현사라는 것이다. 굉장한 신력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힘이 세면 그 먼 바닷가에서 대관령까지 활을 보낼 수 있을까. 닮고 싶은 신력이다. 보현보살의 신력을 내 체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리 가족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보현사 바로 앞 주차장에 차를 대지 않고 1.5km 전방의 공터에 주차하는 것이다. 그럼 계곡을 거슬러 가며 '성황당'과'부도군', '불유각'을 차례차례 만날 수 있다. 자동차로 바로 절 앞 주차장에 가버리면 놓치는 것들이다. 단 부작용이 있다.
"여기는 너무 멀어. 다리 아프단 말이야."
운동을 즐기는 어른은 괜찮으나, 체력이 약한 아이에게 원망을 들을 수 있다. 이때 대안으로 삼기 좋은 선택은 낭원대사부도탑에 오른 후 계단을 따라 내려오지 않고 산 둘레길을 돌아오는 코스다. 자동차는 절 앞 주차장에 두어도 무방하다.
우선 보현사에 들어가 대웅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과 삼성각, 영산전을 충분히 둘러보자. 지장선원 너머로 보이는 동해바다도 감상하고 동정각 옆 약수도 한 모금 마시자. 경내를 천천히 감상했다면 최종 코스로 '낭원대사부도탑'에 도전하는 것이다. 부도탑까지 가려면 오솔길을 걸어야 한다. 어렵진 않다. 최근 보수를 하여 튼튼한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키 큰 나무가 양 옆으로 자라있어 햇빛을 막아준다. 돌계단의 끝에서 '낭원대사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가 포인트다. 귀환할 때 올라왔던 돌계단으로 되돌아 가지 않아도 된다. 위로 난 산길을 타면 절을 우회해서 입구 쪽 주차장으로 내려올 수 있다. 산길 중간중간 벤치와 계단이 갖춰져 있다. 늦은 시간에 가면 숲이 어두울 수 있으나, 보현사 템플스테이 하는 분들도 참여하는 산책 코스 중 일부라고도 하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
보현보살은 지혜의 실천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그런 탓인지 '보현사'에 오면 꾀를 부리거나 편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땀을 흘리고 싶어진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정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잡생각이 빠져나간다. 이런저런 고민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부처님 오신 날에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이 또 있을까.

▲ 보현사 옆으로 이어진 숲길을 오르면 보물 제191호 낭원대사탑을 볼 수 있다. 가운데 받침돌이 없어져 밑받침돌 바로 위에 윗받침돌이 얹혔다.
이준수

▲ 보현사 한쪽에는 어린 방문객을 고려해 고리 던지기 놀이가 놓여있다.
이준수

▲ 저 멀리 동해가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 시설도 잘 갖춰진 편이다.
이준수
깨달은 마음, 어린이 마음
천 년이 넘은 고찰 세 곳을 들르며 나는 절의 생명력에 새삼 놀랐다. 문화재나 보물이 있는 국가유산으로서가 아니라 절은 현재진행형으로 휴식과 평안을 제공했다. 유록빛 잎이 돋아나는 봄날이었다는 점도 나의 감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우리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강원도의 오래된 절은 여러 번 불타고 무너졌다. 그렇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코 다시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올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듯 고요하게 자리를 지켰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려 나가는 어린이의 마음처럼 사찰은 늘 현재에 머물며 '지금 여기에' 있었다.
모처럼 초파일과 어린이날이 겹친 긴 연휴다. 강원도 동해안에는 몸과 마음을 휴식할 수 있는 근사한 고찰이 있다. 천진한 어린이 마음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절에 가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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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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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족 여행지를 찾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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