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음의 2차 창작물들과 태섭인형
조용미
대전집회는 지역사회라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계속 평등수칙을 주지 시켜도 여전히 지키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집회 주최 측이 계속해서 노력해 주었고, 덕분에 별일 없이 광장을 열 수 있었다. 역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의 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피땀 흘려 노력해야만 가능했다. 그는 앞으로 지역을 바꿔가는 일에 힘을 보탤 생각이다.
"광장이 일상으로 이어지게 해야죠. 그렇게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거나 안 될 거라 미리 실망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죠. 자기 주변부터 바꿔가야 하는데,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시위 나가면서 무지개띠를 들고 다니는 걸 보셨을 테니까 적어도 제 존재 자체는 받아들여주지 않을까요?"
그는 최근에 교회를 옮겼다. 정확히 말하면 4-5년간 교회에 다니지 않았으니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된 거다. 천천히 교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예정이다.
"예수님도 사회의 민감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분이잖아요. 나도 그렇게 살아야죠. 무력했던 인생에 작은 플랜이 생겼어요."
그는 극우세력들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에 경각심을 갖고 있다. 아무리 싫어도 그들은 같이 살아가야 하는 동료시민이다. 적어도 우리는 어떤 집단을 향해 포기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절대 사람을 포기하지 말 것, 그것이 신앙 안에서 그의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사회문제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할 의지가 생겼다. 파면이라는 큰 고비는 넘겼지만 크고 작은 집회가 여전히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고,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라도 그곳으로 달려가려 한다.
"탄핵집회가 끝났으니 시간이 비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뿐 아니라 다른 동지들도 투쟁일정으로 빼곡하게 채우고 있어요. 구미옵티컬, 세종호텔, 사회대개혁 토론장, 금강보 철거 등등... 우리가 필요한 곳에 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배우겠다는 자세도 놓치지 않으려 해요."
그는 언론개혁과 노동개혁이 우선되어야 사회대개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연대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시작되는데, 상대도 나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게 관건이다. 지금의 언론은 상대와 나를 갈라 치기하고 분노의 칼을 서로에게 돌리게 만든다. 노동개혁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산재청구인인 그에게는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노동량이 너무 많으면 그 사람이 아프거나 일을 못하게 될 경우 위로가 아니라 비난하게 돼요. 그 일이 고스란히 주변사람에게 주어지니까요. 그 사람이 피해를 준다고 느끼는 거죠. 기본소득이 같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시급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소득도 줄어들기 때문이에요. 기본소득이 있어야 노동약자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게 정치잖아요."
민주당이 과연 노동개혁을 할지 걱정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민주당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대선이 끝나면 그는 작은 정당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다당제로 구도를 바꾸는 것도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는 얼마 전 그림과 글, 타로 커미션을 열었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라 덕질로 갈고닦은 실력을 생계에 써먹는 거다. 그는 <슬램덩크> 덕후로, 꽤 인기 있는 2차 창작자다. 벌써 9권의 책을 냈고, 지금도 써놓은 원고가 꽤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린이 판타지 시리즈를 읽으며 컸다. 판타지 속 세상을 살짝 비틀어보거나 새롭게 상상하는 게 익숙했다.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2차 창작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원하는 글이나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런 시도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
"최선을 다해 버티다 보면 인생에는 때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슬램덩크>의 송태섭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살풀이하는 것처럼 자꾸 쓰게 되네요."
광장에 덕후가 많아서 더 편하게 광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쉽게 공감대 형성이 되었고 인권감수성이 높은 편이라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어서 편안했다.
"광장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살짝 엿봤어요. 성경구절 중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거든요. 나는 오래 살 생각이 없어요. 살아있는 동안 뭘 할 거냐 하면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천국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이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던 그가 느닷없이 "나는 오래 살 생각이 없어요"라고 말해도 놀랍지 않다. 기독교, 퀴어, 슬개골 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여성, 노동약자, 빈민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있는 그에게는 예사로운 일일 테니까. 그보다 궁금하다. 그가 엿본 천국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용기 없이도 받아들여지는 광장처럼 존재 자체로 순순히 받아들여지는 삶이 여기 이 땅에도 뿌리내렸으면, 오래오래 투쟁하면서 그가 엿본 천국을 이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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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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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매트릭스> 빨간약 같아요" 침묵서 깨어난 청년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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