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10번출구에 빼곡히 붙은 추모 포스트잇 사진
서울시 제공
여성들의 분노와 변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강남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여성들은 강남역 앞에서, 전국 곳곳에서, 여성폭력 없는 사회를 외쳤다. 한동안 잠잠하다고 여겨졌던 여성운동은 다시 깨어났다. 여성혐오 범죄를 부정하며 덮으려는 사회, 성별 갈라치기가 난무하는 사회에 돌을 던지고 파장을 일으켰다.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여성혐오 범죄 규정과 처벌 강화 요구가 이어졌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남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강제결혼,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90년대 가정폭력, 2010년대 디지털 성범죄까지, 여성폭력은 늘 일상이자 현실이었다. 그런 여성들에게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던 불안과 공포를 실체화한 사건이었으며,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폭발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많은 여성과 남성 시민들이 페미니스트로 다시 태어났고, 차별과 폭력을 고발하며 성평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운동을 무력화하려는 백래시도 거세게 일어났다. 특히 20대 남성들 사이에서 반페미니즘 정서가 확산되기도 했다.
기억하고 추모하며 이어오다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 활동은 매해 이어져왔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5주기에는 포스트잇 추모를 온라인 담벼락 활동으로 이어가기도 하고(안티페미니스트 남성들의 백래시성 포스트잇도 다수 게시되었다), 7주기부터는 서울여성회와 서페대연(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가 제안하고 34개의 여성단체,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이 공동주최하며 추모행동을 이끌어왔다.
9주기인 올해는 2025년 5월 17일에는 66개 여성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5월 2일 오후 3시 기준)가 추모행동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를 주관할 예정이며, 현재 공동주최 단체와 개인을 모집 중이다.

▲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 온라인 추모공간 캡처
<페미연대>
그러나 또다시 반복된 페미사이드, 미아역 여성살해사건
9년 동안 여성들은 강남역 사건을 기억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지난 2025년 4월 22일 오후, 미아역 인근 마트에서 3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여성 1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모든 시민에게는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안전은 여전히 기본권이 아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권리였다. 피해자의 죽음 앞에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많은 여성들이 이번 사건에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폭력 사건들 때문이다.
계속되는 여성폭력, 이미 안전하지 않은 여성들의 일상
여성살해 및 여성혐오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반복되어왔다. 지난 2023년 11월 경남 진주에서는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편의점 여성 점원을 페미니스트라며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2024년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8주기를 열흘 남겨두고, 강남역 인근 건물의 옥상에서 한 남성이 이별을 요구한 여성을 살해한 연인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2024년 분노의게이지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었거나 살해 위협을 받은 여성은 650명에 달했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해자의 여성 비율은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86%~88% 수준을 유지해왔다.
2024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36.1%가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지난 1년 동안 피해를 경험한 여성도 7.6%에 달했다. '일상에서 여성폭력을 당할까 봐 두렵다'고 느끼는 여성은 40%로, 3년 전보다 3.6% p 증가했다. 반복되는 여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여성들이 범죄에 대한 공포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일상에서 여성폭력을 당할까봐 두렵다'고 느끼는 여성도 40%로 지난 조사 대비 3.6% p 늘어났다. 다만 '우리 사회가 여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낀 응답자는 20.9%로, 3년 전 조사 대비 4.6% p 증가했다. 사회는 안전해졌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더욱 커진 셈이다.

▲ 2024 여성폭력 실태조사 주요결과 '한 눈에 보는 여성폭력 실태' 사진
여성가족부 제공
여성폭력 심각성에 비해 부실한 국가 시스템
강남역, 신당역, 신림동, 그리고 미아역까지. 우리는 거리 곳곳에서 여성의 죽음을 마주해왔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가야 했던 여성들의 죽음 위로 또 다른 죽음이 켜켜이 쌓여가지만, 국가와 정치권은 이런 참혹한 현실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면 일시적 대책만 내놓을 뿐, 여성폭력을 막기 위한 근본적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는 진보 정당을 제외하고는 여성폭력 문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조차 없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들의 불안감에 대해 "'스토킹처벌법' 등 신종 범죄에 대한 법과 제도는 정비되고 있지만 교제 폭력이나 딥페이크 범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가는 이 수치가 던지는 질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행동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현장 사진 사진 서울여성회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행동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단위들의 공동행동은 벌써 올해로 9주기를 맞이한다. 5.17 9주기 추모행동은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강남역에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의 주관으로 개최된다.
또한 이들은 2025년 대선을 맞이해, 대선 후보들이 또다시 여성 지우기에 돌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여성폭력 의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을 열어 연서명을 받고 거리에서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해오고 있다.
오는 5월 17일에는 5차 젠더폭력해결 캠페인과 추모행동이 함께 운영되며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이번 탄핵 광장 역시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로 여성혐오와 여성을 향한 폭력에 반대해온 여성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는 9주기 5.17 추모행동에 탄핵 광장에서의 투쟁을 이끌어온 여성들의 힘을 다시 한번 모아 여성혐오범죄에 더욱 강력하게 맞서 싸우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의 여성폭력 다이인 캠페인 및 5.17 9주기 추모 공동행동 홍보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