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수많은 매뉴얼을 만들었다.재난 대응 지침, 위기관리 교육, 학생 안전관리 매뉴얼이 쏟아졌고, 교사들은 실습과 훈련을 반복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묻는다. "왜 구조하지 _않았는가?", "그 시간, 무엇을 했는가?"
제도는 있었다. 하지만 결정하고, 움직이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비단 재난 현장만의 일이 아니다. 교육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교한 설계가 있어도, 현장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면 정책은 종이 위에만 존재한다.
3년 전, 나는 학교에 돌아왔다. 코로나 이후의 학교는 내가 떠나기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늘어난 정서·행동 문제로 교실에서 울거나 뛰쳐나갔고, 교사들은 아동학대·학교폭력 신고로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서를 써야 했다. 회의실에서는 갈등과 두려움이 감돌았고, 교직원들은 감정노동의 벽 앞에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제도와 정책보다 '조직과 구성원의 고통'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정책은 있었지만, 실행하는 현장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다.
석사과정에서는 교육행정을 전공했다. 제도와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고, 학교라는 조직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분석하고 싶었다. 행정학과 조직이론, 정책학을 공부하며, 교육정책을 움직이는 이론과 권력, 구조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의 연수휴직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그러나 현장으로 돌아온 나는 곧 깨달았다. 제도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살아 있는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임교사 한 명의 에너지에 따라 학년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관리자 한 명의 결정이 교사 집단 전체의 몰입이나 소진을 좌우했다. 법령과 정책, 연구와 매뉴얼은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건 현장의 조직과 구성원들이었다.
나는 점차 조직 내 상호작용, 학습, 리더십, 몰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박사과정에서는 HRD(인적자원개발) 분야로 교육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전공을 확장하게 되었다. HRD는 나에게 교사라는 직무의 성과와 성장, 교육조직 내 관계와 학습, 구성원의 심리적 몰입까지 고민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교사를 위한 정책'은 제도 이전에, 사람을 이해하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한편, 점차 심화되는 저출산·고령화와 학령인구 감소는 교육의 중심축을 초·중등에서 성인학습과 평생교육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나는 교사이자 연구자로서, 이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역 기반 평생교육, 성인학습자의 삶, 일과 학습의 결합은 이미 교육정책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윤석열 정부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교육정책은 제도 중심적이었지만 사람 중심적이지는 못했다. 디지털 전환, AI 기반 교육, 고교학점제, IB 도입 등 겉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의제들이 있었지만, 정작 학교 안의 구성원, 특히 교사들의 심리적 안전감과 조직 내 학습문화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교육부는 '평생교육 전담부처'로서의 역할도 뚜렷하게 하지 못했고, HRD와 평생교육 정책의 연계도 여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정책의 성패만을 논하고, 너무 쉽게 폐기해버린다. 그러나 정책이란 단지 결과로만 평가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수많은 회의와 연구, 행정력과 예산,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예컨대 혁신학교 정책은 위에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형성된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실행과정에서 학교 조직 구조와 구성원의 준비 상태에 따라 편차가 생겼고, 정책이 위축되거나 왜곡되기도 했다.
정책은 기억되어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것이 어떻게 설계되고 현장에 스며들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저항과 지지가 발생했는지를 복기하는 백서 작업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연구를 할 때 반드시 선행연구를 인용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질문은 기존 논의 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육정책도 완전히 새로울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시대적 흐름과 전임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재구성된다. 소설 구조의 모든 원형이 오디세이 이후 등장했다는 말처럼, 교육정책도 새로운 언어를 쓰더라도 그 뿌리는 과거에 닿아 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폐기하는 정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매몰비용을 인식하자. 그 정책 하나에는 예산, 시간, 사람들의 의지와 감정이 담겨 있다. 진영논리에 따라 무엇이든 부정하지 말고, 백서를 만들고, 분석하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자.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정치와 진짜 정책 설계의 시작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각 정당이 무조건적인 반대를 반복하기보다, 현 정부 5년의 교육정책 백서를 기반으로 다음 국정과제를 설계하길 바란다. 선거철에 발표되는 공약은 공허한 슬로건이 될 수 있지만, 국정과제는 향후 5년, 그리고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좌우한다.
우리는 지금, 미래의 교육을 논해야 하는 동시에, 과거의 교육을 책임 있게 돌아볼 용기도 함께 가져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