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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적당한 거리'에서 다시 시작하자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논의되어야 할 한반도 정책과제

등록 2025.05.05 10:43수정 2025.05.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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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으로 시작된 국정 혼란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일단락된 후 조기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 내란 세력의 폭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 국민의 선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국내외의 과제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난제들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 속에 치러지는 대통령선거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어수선한 대선 국면이지만 우리가 정책선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여기서는 그 중요도에 비해 대선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해 온 남북관계에 대해 알아보고 새 정부에 필요한 정책 대안을 모색해 보겠다.

이미 멀어져 버린 남과 북의 거리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요땅크(탱크)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생산실태와 현대화사업 정형(경과), 탱크 핵심기술 연구과제 수행 정형을 파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탱크공장 방문에는 조춘룡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정식 당 중앙군사위원, 김용환 국방과학원 원장 등이 동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요땅크(탱크)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생산실태와 현대화사업 정형(경과), 탱크 핵심기술 연구과제 수행 정형을 파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탱크공장 방문에는 조춘룡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정식 당 중앙군사위원, 김용환 국방과학원 원장 등이 동행했다. 연합뉴스 = 조선중앙통신

현재 남북관계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대로 된 대화도, 교류와 협력 사업도 모두 중단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무력 충돌이 우려되는 긴장 상태도 아니다. 이전에 없던 거리감이 남북관계에서 느껴지고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는 멈춰있다. 특히 2020년 6월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2023년 하반기부터 대북 강경정책을 밀어붙이고 같은 해 연말 김정은 위원장이 소위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선언하면서 남북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남북의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도 멀어졌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2024.11)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협력대상'이라는 응답이 39.9%로 가장 많았고, '적대대상' 22.3%, '경계대상' 18.6%, '경쟁대상' 8.4%로 나타났다. '적대대상'이란 대답은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게 나타난 수치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의 악화는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우리 국민의 응답은 2018년 59.7%에서 지속적으로 악화된 결과 2024년 36.9%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 또한 35%로 역대 가장 높다. 20~30대에서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보다 2배 더 높게 나타났다. 통일의 가능 시기에서도 '불가능하다'는 의견(39%)이 전에 없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우리는 남과 북의 이 거리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새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이 거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때론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을 말한다.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 된다. 남북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남북관계에서 이미 상당한 거리가 발생했다. 이 거리를 무리하게 복원하려 하거나, 불안함을 무리하게 해소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제 이 거리감을 받아들이고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새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서울대 조사를 다시 보자.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남북 간 평화공존과 한반도 평화정착'이 63.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21.6%, '남북통일' 14.3%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북한도 하나의 국가다'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대답이 52.1%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아니다'라는 대답은 11.3%에 머물렀다.

우리 국민이 새 정부에 바라는 대북·통일정책은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거리'를 어떻게 남북의 평화공존과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남북의 적당한 거리를 제도화하자

남북관계의 불안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전체제하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쟁지역이다. 분단이라는 구조 자체가 불안정을 배태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제도화되지 못한 것 또한 중요한 이유이다.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서로를 국가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한 관계'라 선언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은 남북관계가 정상적일 때 효과적이다. 남북의 '특수한 관계'를 명분으로 상호 교류와 협력 과정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결국 한반도 정세의 부침 속에서도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 6월 정지시킨 9.19 남북군사합의는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안전장치였다(관련 기사: 오물풍선 차단 실패, 9.19 군사합의는 효력정지...충돌 원하나, https://omn.kr/28xrl). 새 정부는 우선적으로 9.19 군사합의를 복원하고 휴전선에서 오물풍선과 전단지, 대남, 대북방송을 상호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음으로,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야 한다. 먼저 남북 간 합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의 국내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서울대 조사에서, '남북 간 합의사항 계승'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견이 65.2%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29.9%)보다 높게 나타났다. 우리 국민은 남북의 대결상황 속에서도 남북 합의가 지켜지는 제도적 안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인정하고 한반도에서 상호 평화공존하며 상생할 수 있는 준거 조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이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한 것과 같이, 가칭 '남북기본조약'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되 제도적 기반하에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상생을 위한 교류와 협력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추진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라고? 한반도 평화 없이 경제도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대통령선거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경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만큼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12.3 내란으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라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를 복원해야 한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한반도 리빌딩에서 한반도 평화는 우리 경제의 회복만큼이나 핵심과제로 논의되어야 한다(관련 기사: 트럼프 시대, 새 한국 정부의 '재건 전략' 묻는다면, https://omn.kr/2d68n).

이번 대통령선거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리빌딩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대통령선거 #남북관계 #통일 #평화 #남북기본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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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평양학개론],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속삭이다, 평화],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연재 6.3 대통령선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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