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5.18민주묘지에 세워져 있는 ‘헌수 기념비’. 5.18민주묘지 조성에 맞춰 광주와 전남지역 12개 언론사가 주도한 범국민 헌수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김왕현 작가의 작품이다.
이돈삼
김 작가가 사적지 표지석 디자인을 맡게 된 사연도 궁금했다.
"동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1996년으로 기억하는데, 5·18묘지 성역화 사업의 하나로 역사마당 조형물을 공모했습니다. 저는 '3·1마당' 조형물 제작에 응모했고, 당선됐죠. 1998년 5·18묘지에 세운 '헌수 기념비'도 제 작품입니다. 그 인연으로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표지석 제작 설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표지석 구상과 디자인까지 맡게 됐습니다."
김 작가가 얘기한 '3·1마당' 조형물은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모습과 일본군이 한국인을 살육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명성황후와 안중근 의사까지 두루 표현하고 있다.
조형물은 5·18민주묘지 1묘역과 2묘역 사이 역사마당에 세워져 있다. 역사마당은 우리 역사에서 불의와 폭압에 맞섰던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운동을 비롯 동학농민혁명, 3·1만세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혁명, 5·18항쟁, 그리고 통일마당 등 7개 부조벽으로 이뤄져 있다.
제2묘역 앞에 세워져 있는 '헌수 기념비'는 5·18민주묘지 조성에 맞춰 광주와 전남지역 12개 언론사가 주도한 범국민 헌수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당시 헌수 참여자의 이름을 모두 새기고 있다.
"처음엔 간단하게 표지석 형태를 스케치했습니다. 제가 스케치한 디자인을 토대로, 광주광역시에서 설계사무소에 맡겨 도면을 만들고 입찰에 부쳤죠. 제가 감수자로 참여했는데, 작업자들이 '실물모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사비를 들여서 1미터 크기로 모형을 만들어줬죠. 제가 만든 견본을 토대로 전문업체에서 제작했는데, 그게 지금의 표지석입니다."

▲ 전남경찰청 앞 안병하공원에 세워진 안병하 치안감 흉상. 안 치안감은 5.18 당시 신군부의 강경진압 지시를 거부했다. 흉상은 김왕현 작가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돈삼
김 작가의 조각작품은 5·18사적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굵직한 서사가 담긴 작품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전남경찰청 앞 안병하공원에 세워진 안병하 치안감 흉상도 그가 만들었다.
안병하 치안감은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경국장(현 전남경찰청장)으로 있으면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 그 이유로 5월 26일 직위 해제돼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6월 2일 의원면직됐다. 형식상 본인이 사의 표시를 통한 면직이지만, 사실상 파면이다. 안 치안감은 1988년 10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전남도청 앞 남악중앙공원에 있는 높이 450센티미터 크기의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과 독서하는 김대중상도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작가의 마음이 많이 가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나주 완사천에 세워진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동상, 무안 남악에 설치된 정약용과 정철·윤선도 등 '전남을 빛낸 12인' 흉상, 목포현충탑, 오산휴게소 상징조형물 등도 그의 작품이다.

▲ 전남도청 앞 남악중앙공원에 있는 높이 450㎝의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김왕현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돈삼
김 작가는 '천사섬'으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신안군의 비금도에서 나고 자랐다. 목포에서 목포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추구하며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헝가리, 폴란드, 독일 등 외국에서 연 개인전도 헤아릴 수 없다.
조각가로 산 지 50년을 훌쩍 넘겼지만, 지금도 그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엔 기하학적인 추상작품 '포지티브&네거티브'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포지티브는 형태, 네거티브는 여백을 의미한다. 이 둘의 관계를 3차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고향 바다에서 만난 천일염의 결정구조를 형상화하고 있다.

▲ 50여 년을 조각가로 살고 있는 김왕현 작가. 그는 지금도 새로운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엔 기하학적인 추상작품 ‘포지티브&네거티브’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돈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공유하기
5.18 사적지 표지석에 조각가 이름 빠진 이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