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순 시집 <닿을 듯 말 듯 입시울가배야운소리>(모악, 2025년) 표지
안준철
'우수(憂愁)로 읽히는 걸 어떡해요.
그래서 우수가 좋아요.
상처 입은 마음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터지려는 갯버들 눈에서
희망을 봤어요.'
- <우수(雨水)> 부분
1연과 2연 사이에 작은 내(川)가 흐르고 있다. 거길 건너오면 슬픔이 희망이 되는. 나의 슬픔은 너의 희망을 위함이다. 슬프지 않다면 그 일을 못 할 것이다. 내가 슬퍼야 너의 상처 입은 마음을 쓰다듬어 희망을 싹트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의 연금술이라고나 할까. 시인은 아예 슬픔을 사겠다고 한다.
'나는 당신의 슬픔을 사렵니다. 사서 가슴에 걸어두고 그 슬픔 함께하렵니다. 말 못 할 슬픔이 연못물로 고이면 나는 당신을 울겠습니다. 처마 끝 듣는 빗방울 모양 방울지겠지요. 슬픔을 내다 판 당신이 비 갠 하늘로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야, 슬픔을 업으로 사니 당신의 슬픔이 제게는 일이 되지요. 당신이 평화롭다면 저 또한 기쁘지 않겠습니까?'
- <슬픔을 삽니다> 부분
기쁜 일이야 누구나 있으면 가슴에 담기 마련이다. "겨울밤 꺼내먹던 고욤 청처럼" 가만히 꺼내 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슬픔을 담아두고 꺼내 보는 사람이 있을까? 슬픔은 무시로 찾아오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 슬픔을 사겠다는 거다. 당신은 슬픔을 팔아서 기쁘고 나는 슬픔을 사서 즐겁고. 세상에 이런 시인이 또 있을까 싶다.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제 돌아가려네./옛집은 이미 없어졌으니/가까운 시냇가에/오두막을 짓고/포플러나무 잎사귀가/바람에 귀 씻는 소리를 즐기려네./그리고 다섯 이랑 남새를 길러/벌레들과 나누겠네.'
- <귀향> 부분
벌레들과 나누고 남는 남새는 무인 판매대 귀퉁이에 슬며시 두겠다고 한다. 팔아서 돈이 되면 이웃들에게 탁주 한 잔을 내겠다고도 한다. 시인은 귀향 후 이미 "포풀러나무 잎사귀가/바람에 귀 씻는 소리를 즐"길 수 있기에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예 슬픔을 사는 장사꾼(?)이 되겠다고 작정한 것도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생긴 일로 보인다.
타관살이 40년에 고향에 돌아온 시인은 누이와 여동생과 함께 벌초를 한다. 어려서부터 일을 했던 누이는 낫질이 능숙하고, 여동생은 조금 못하다. 일한 뒤 단잠을 자고 떠나는 누이와 여동생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언제나 떠나는 사람은 나였는데 남은 자가 되어 배웅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에 헛헛하여 저수지 둑길을 한 바퀴 돌고<(떠나는 자와 남은자)>" 오기도 한다.
조성순 시인과 동향으로 오랜 우정을 나누어온 안도현 시인은 추천사에서 "고요함과 하릴없음과 헛헛함은 쉽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허욕을 덜어내고 나 아닌 모든 대상에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인이 돌아와 사는 옛집 처마 끝의 빗물로부터 내공을 익혔는지도 모르겠다"라고 평하고 있다.
귀향은 고향 말이 돌아오는 일이기도 하다. 시인은 사라져가는 토박이말들을 다시 복귀시킨다. 남새, 복상, 봉당, 정지, 구들장, 군불, 아궁이, 들냉이, 나싱개, 고들빼기, 칼속새, 속곳 등. 고향의 투박하지만 정겨운 귀향의 언어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가 된다.
'누님이 텃밭에 납시면/들냉이는 웃고//나싱개랑/고들빼기 칼속새는/노랗게 질린다.//한 눈에 알아본다.//우리 누님/두 눈이면/저승도 본다.'
- <누님> 전문
조성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무엇인가 하겠다고 생각했으나/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다행이다"라고 적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이 다행인 것은 그동안 시인이 이루려고 했던 것에 대한 깊은 명상과 성찰의 한 결과이리라. 오늘날 인류가 생태 위기에 내몰린 것도 무엇인가 하겠다는 욕망의 관성으로 하나뿐인 지구를 혹사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시인의 내공이 느껴지는 이런 놀라운 시적 반전은 시집 맨 첫자락에서도 나타난다.
세상에 상처받고
의지가지없이
무너져가는 몸으로
고향집에 왔다.
누군가 보내준
수선화 뿌리를 심어놓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한 송이는 필 테지.
- <어떤 봄> 전문
세상 신간 편하다.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다. 그러다가 문득 내 안에서도 일말의 반전이 일어난다. 시는 어쩌면 세속의 수다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선승의 깨달음 같은 것이 되면 안 되는 거 아녀? 그러다가 만난 반가운 시다. 제목은 <설거지>다.
"아내는 일하러 가고/아이들은 애인이나 봄빛 보러 나"간 사이 시인은 "빈집에서 혼자 궁싯거리다가/싱크대에 쌓인 그릇을/설거지"를 한다. "온 마음을 설거지에 몰입하는 동안/높은 곳에 있는 것인지 내면에 있는 것인지/무엇인가 함께"하는 진기한 경험을 한다. 귀향 후 무언가에 쫓길 것도 쫓아갈 일도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주는 행복은 삶의 여유와 더불어 유머 감각도 선사해준 듯하다.
'세제는 아주 조금 풀어서 설거지를 하다보면/알 수 없는 사이 행복감에 젖어든다./아내와 아이들은/나의 이런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설거지를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배려에 눈물이 찔끔 난다.'
- <설거지> 부분
조성순 시인은 경북 예천군 감천에서 나고 자랐다.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89년 이광웅, 김진경, 도종환, 안도현 등과 '교육문예창작회'를 창립했다. 2004년 <녹색평론>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11년에는 교단문예상을 수상했다.
시집 4부에는 <너븐숭이 아기동백> <동백 결사> <손가락 총> 등 국가권력에 희생 당한 넋을 위로하는 시편들도 눈에 띈다. 오송회 사건의 후유증으로 타계한 시인 이광웅을 추모하는 시 <파랭이꽃>에서는 어떤 두려움과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로써 적에 맞서 싸우는 전사의 전형을 그려내고 있다.
"벼랑 끝/바람에 흔들리는 패랭이/흔들려도/허릴 굽히거나/손바닥 비비지 않는다//천길 낭 아랜/시퍼런 바닷물"
- <패랭이꽃> 부분
시집의 표제작에 해당하는 <닿을 듯 말 듯 입시울가배야운소리>도 4부 맨 끝자락에 실려 있다. "바람이라도 맵게 불면 문풍지가 부~우 울었다"로 시작하는 시에는 "1950년 6월 25일, 사남매를 두고 혼란의 소용돌이에 정처를 잃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작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겨울밤 된바람에 사랑채 문풍지가 울 때면 시인의 할아버지는 아우의 부르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곤 했다고 한다.
'바람이 전하는 말을 놓고 가던 문풍지, 분절음으로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입술과 입술 사이 닿을 듯 말 듯 스치고 가는 소리여. 혼백이 되어서라도 전할 말씀이 있었던가. 퇴락한 사랑, 빛바랜 문풍지에 매달려 울고 가는 입시울가배야운소리'
- <입시울가배야운소리> 부분
최성침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ㅂ'도 'ㅇ'도 아니고 'ㅂ'과 'ㅇ'의 경계에서 나는 소리, 아니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둘을 이어주는 소리, '입시울가배야운소리'는 사물과 사물, 사람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구별을 무너뜨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조성순 시인의 언어"라고 평하고 있다.
시집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은 시편들이 많다. <학도병의 책가방> <시간의 숨> 등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동족상잔의 6.25 동란 중에 일어난 일들을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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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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