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한다면 통일은 가까워질 것이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조경일 작가
환대와 냉대의 조건
북향민들은 보수적 견해를 가지면 '남한사회에 잘 동화된 탈북자'로 환대받지만, 진보적 견해를 가지면 즉각적으로 '북한을 옹호하는 자'라는 냉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중적 기준은 북향민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고 표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북향민들이 보수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자기검열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북향민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야 한다. 그러나 북향민이 진보적인 정치인이나 진보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탈북했는데 어떻게 종북정당을 지지하냐?"는 식의 혐오 반응에 마주하게 된다. 이는 북향민들에 대한 사상검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북향민들은 차라리 정치와 담을 쌓은 정치무관심층으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둘째, 북향민 네트워크의 보수적 정치 성향의 강화이다. 한국 사회에는 북향민 출신 정치인, 언론인, 활동가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대체로 보수적 정치 노선을 따른다. 이들은 북한 체제에 대한 강한 비판을 기반으로 정체성을 형성하며, 보수 정당과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북향민들에게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생존법'을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즉, 북향민 사회 내부에서도 "우리는 보수 진영과 함께해야 이익"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에 무관심한 북향민들도 자연스럽게 보수 성향을 갖게 된다.
셋째, 정치적 보수 진영과의 연계 및 이용이다. 보수진영은 북향민들을 선거에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북향민들은 북한 체제의 '피해자'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반북 담론을 강화하는 데에 이용하는 것이다.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신뢰투쟁
북향민들은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을 넘어 신뢰투쟁(struggle for trust)을 해야만 한다. 신뢰투쟁이란, 북향민들이 단순히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넘어, 사회적 불신과 의심의 구조 속에서 적극적으로 존재론적 신뢰를 쟁취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인정의 단계로 공고히 해나가기 위한 선행단계이다.
인정투쟁을 만인들의 사회적 인정을 얻는 투쟁의 범주로 본다면, 신뢰투쟁은 존재의 정체성 증명을 통한 신뢰확보 그 자체로 해석할 수 있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잘 정착하기 위해 구조적 불신과 의심의 시선을 극복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 신뢰투쟁은 북향민들이 '빨갱이나 간첩'이 아니라는 사상검증과 정체성 검열을 극복하고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출신불문 누구나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북향민들, 즉 '탈북' 정체성들을 일종의 비(非)시민으로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이 존재한다. 이는 분단체제가 우리 내면에 체화되어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인 재구조화를 통해 끊임없는 타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는 제2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적용한 '분단의 아비투스'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 때문에 북향민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간첩이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북향민들은 사회적 인정 이전에 존재에 대한 신뢰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혐오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혐오담론은 사회적으로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낙인찍는 기능을 한다. 특히 혐오담론 속에서 '빨갱이' 혐오 분단 체제하에서 형성된 강력한 정치적 공격 프레임으로 작동해 왔다. 이 혐오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북향민들이 정치적 의견을 표명할 때마다 '색깔론'의 틀 안에서 해석되도록 만든다.
생각이 다른 타자를 쉽게 공격하는 빨갱이 혐오가 한국에서 사회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기검열을 강요받는 심리적 부담이 사회 기저에 배태되어 있다. 북향민들은 이러한 혐오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정상적' 시민, 즉 적대국인 북한에서 탈출했지만 대한민국을 전복하거나 남한 국민들에게 결코 해를 입히지 않을 '안전'하게 '재사회화'된 시민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또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국민임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탈북 귀순용사들이 기자회견 장소에서, 또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최고위원 후보 유세 공개연설 장소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것도 바로 언어로 표출하는 방식의 존재론적 증명이었다. 북향민 출신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공천권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훼손한 내란을 기꺼이 옹호하는 적극적 정치행태를 보이는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탈북 정체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존재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 언어로 표출해야 한다. 더 적극적 행위인 자발적 반북활동을 통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도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북향민들은 여전히 "간첩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받는다. 특히 진보적 입장을 표명하면 "빨갱이", "간첩", "다시 북으로 돌아가라" 등의 파시즘적인 공격도 받게 된다.
이렇다 보니 북향민들은 보수정당과 같은 입장을 취하거나,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을 취한다. 아예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제거하고 정치무관심층이 되는 방식으로 사상 검증을 회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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