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왜 북향민들에게 적응하려 하지 않는가?

[북향민과 사회통합] ⑥통일에 앞서 북향민들의 제도적 정착부터

등록 2025.05.16 16:23수정 2025.05.16 16:23
0
원고료로 응원

"북향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한다면 통일은 가까워질 것이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_조경일 작가

환상에 머문 통일담론

독재체제에서 탈출한 고유의 경험은 대한민국에서 '자유'의 상징처럼 표상화되지만 정작 이들의 한국 사회 정착은 만만치 않다. 3만 5000여 명에 가까운 북향민들 중에 대략 3000~4000명가량은 다시 탈남(脫南)해 유럽을 비롯한 서구의 나라로 떠났다. 한국 사회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 위해 떠난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높은 마음의 경계와 장벽 때문이다.

동포의 나라에서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갖고 편견과 차별, 동정의 시선을 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다른 민족의 나라에서 '아시아인'으로 차별을 받는 게 덜 서운하다는 얘기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도 살아가기 힘들긴 매한가지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로 탈남했던 이들은 결국 다시 입국했고 현재 대량 800명 정도가 영국과 캐나다 등에 정착해 있다. 또 더러는 비록 소수지만, 다시 월북했다. 자신이 떠나 온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살고자 경계를 넘었지만 다시 살고자 경계를 넘는다. 무엇이 북향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주는 것일까.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는 통일을 말한다. 통일, 어떻게 가능할까. 어디서부터 통일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필자는 올해로 한국 생활 21년 차다. 북에서 산 시간보다 남에서 산 시간이 훨씬 길다. 지금까지 북향민 사회를 지켜본바, 통일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며 또 통일에 대한 비현실적 담론과 허상들을 보며 수없이 고민을 한다. 통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 제도권 안에서 잘 정착하여 산다면 통일은 가까워질 것이고, 반대로 북향민들이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북향민들이 배제된 통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북향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은 통일준비 과정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더욱 북향민들의 삶을, 그들의 서사를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새로운 땅에 정착한 북향민들, 이들과 마주한 한국 사회, 과연 통합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북향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사 30년

 Unsplash Image
Unsplash Image yohoney on Unsplash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 세월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에 입국하는 북향민이 연인원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의 강력한 단속문제도 있지만 탈북 과정에서 안전과 비용의 문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탈북의 동기가 줄어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먼저 정착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곧장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전달된다. 한국 사회도 살아내기가 벅차다고.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높디높은 회색 빌딩 숲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듯,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북향민들의 초기 정착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북향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은 만만치가 않다. 우선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의 3배가 넘는다. 한국이 OECD국가 중에 자살률 1위인 점을 감안하면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자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백골이 된 지 1년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다. 한국 사회에서 북향민들의 고립감이 어느 정도인지, 정부는 정책수립에서 감수성과 공감력을 더 개입해야 한다.


북향민들의 근속 근무 기간도 일반 국민의 절반밖에 안 된다.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그만둔다. 개인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직장 적응에서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소통의 문제이며 출신에 따른 '다른 점을 부각'하는 시선들이 큰 작용을 한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은 단순노동 또는 3D업종에 종사한다. 이는 북향민들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실상 거의 작동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업에 성공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한국 사람들보다 몇 배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가 있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일반 국민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북향민들만 어렵다고 마냥 불평해서도 안 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개인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는 것이니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 북향민들의 현재 한국 사회 정착을 재평가하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분명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진짜 사회 통합을 위해

북향민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장애요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데에 사회적,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아니라 '사회통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왜 북향민들은 자신의 과거와 역사를 모조리 지워야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걸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한국 사회는 왜 북향민들에게 적응하려 하지 않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논리를 북향민들과의 사회통합에서도 적용해야만 하는가?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극도로 낮은 포용성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들 중에 '다름'에 대해 이토록 배타적인 사회는 아마 드물 것이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탈북'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배타적 시선들 때문이다.

결국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한다면 통일은 가까워질 것이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통일을 논하기 전에 북향민들과의 사회통합이 먼저 필요한 이유다. 조금 더딜지라도,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통일은 멀리에 있지 않다. 가까이에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자.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통일,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북향민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조경일 #통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2년간 싸운 군의원 "김건희 특검, 양평군 도시건설국장 주목해야" 2년간 싸운 군의원 "김건희 특검, 양평군 도시건설국장 주목해야"
  2. 2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있다"는 윤석열, 서글펐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있다"는 윤석열, 서글펐다
  3. 3 원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막힌 일... 눈물 나는 24명 '최후진술' 원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막힌 일... 눈물 나는 24명 '최후진술'
  4. 4 '김건희' 묻자 기자 밀치고 다급히 떠난 양평군수, 김선교 의원도 묵묵부답 '김건희' 묻자 기자 밀치고 다급히 떠난 양평군수, 김선교 의원도 묵묵부답
  5. 5 대장동 첫 대법 판결, 김만배 무죄 확정... 남욱 신빙성 배척 대장동 첫 대법 판결, 김만배 무죄 확정... 남욱 신빙성 배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