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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 세월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에 입국하는 북향민이 연인원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의 강력한 단속문제도 있지만 탈북 과정에서 안전과 비용의 문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탈북의 동기가 줄어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먼저 정착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곧장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전달된다. 한국 사회도 살아내기가 벅차다고.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높디높은 회색 빌딩 숲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듯,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북향민들의 초기 정착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북향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은 만만치가 않다. 우선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의 3배가 넘는다. 한국이 OECD국가 중에 자살률 1위인 점을 감안하면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자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백골이 된 지 1년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다. 한국 사회에서 북향민들의 고립감이 어느 정도인지, 정부는 정책수립에서 감수성과 공감력을 더 개입해야 한다.
북향민들의 근속 근무 기간도 일반 국민의 절반밖에 안 된다.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그만둔다. 개인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직장 적응에서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소통의 문제이며 출신에 따른 '다른 점을 부각'하는 시선들이 큰 작용을 한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은 단순노동 또는 3D업종에 종사한다. 이는 북향민들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실상 거의 작동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업에 성공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한국 사람들보다 몇 배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가 있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일반 국민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북향민들만 어렵다고 마냥 불평해서도 안 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개인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는 것이니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 북향민들의 현재 한국 사회 정착을 재평가하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분명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진짜 사회 통합을 위해
북향민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장애요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데에 사회적,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아니라 '사회통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왜 북향민들은 자신의 과거와 역사를 모조리 지워야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걸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한국 사회는 왜 북향민들에게 적응하려 하지 않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논리를 북향민들과의 사회통합에서도 적용해야만 하는가?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극도로 낮은 포용성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들 중에 '다름'에 대해 이토록 배타적인 사회는 아마 드물 것이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탈북'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배타적 시선들 때문이다.
결국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한다면 통일은 가까워질 것이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통일을 논하기 전에 북향민들과의 사회통합이 먼저 필요한 이유다. 조금 더딜지라도,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통일은 멀리에 있지 않다. 가까이에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자.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통일,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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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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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왜 북향민들에게 적응하려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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