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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또 죽이는 끔찍한 현장... 그래도 승리합니다

[세종보 천막농성 1년] 이경호 보철거시민행동 집행위원(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등록 2025.05.11 11:40수정 2025.05.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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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은 세종보 천막농성 1년이 되는 날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맞이해 기획 기사를 내보내고 미니다큐 영상도 제작해 선보인다.[편집자말]
흰목물떼새 울음소리가 잦아졌다. 새 봄,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해 짝을 찾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자기 삶의 터전인 세종보 농성장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엔 농성장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흰목물떼새들이 이제는 30~40m 앞 자갈밭에서 거리낌 없이 논다. 우리를 이웃으로 받아들였다는 명백한 징후여서 무엇보다 기쁘다.

 농상장에 나타난 흰목물떼새
농상장에 나타난 흰목물떼새 김병기

[미니다큐] ‘윤석열 환경부’에 맞선 세종보 천막농성 1년... 말 없는 강도 말을 했다 ⓒ 김병기


지난해 4월 29일, 세종보 상류 하천부지에 농성천막을 치고 풍찬노숙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한결같이 위로와 지지 의사를 표하면서도 많은 염려의 말을 쏟아냈다. 비가 많이 와도, 눈이 와도 걱정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천막이 날아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전화가 자주 왔다. 내가 막상 우려했던 건 과거 악몽의 재현이었다.

 눈이 내리는 농성장
눈이 내리는 농성장 박은영

세종보 수문 개방 이전의 생태계 악몽

2009년 착공한 4대강 사업.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웅덩이에 갇힌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했다. 시공사는 이를 몰래 감추다 발각돼 비판을 샀다. 공사장을 감시하는 환경운동가들은 거친 욕설을 듣고 멱살도 잡혔다. 이명박 정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밀 군사작전을 하듯이 3년만에 4대강 16개 보를 세웠다. 실제로 청강부대라는 군부대도 동원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2012년 완공되고 담수를 시작한 지 4개월만인 10월 17일, 백제보 하류에 수만마리 물고기가 떠올랐다. 그 뒤 2주일 동안 매일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 당했다. 현장을 매일 찾았던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는 물고기 사체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2년 물고기 떼죽음 사진
2012년 물고기 떼죽음 사진 이경호

김종술 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셈한 사체의 수는 60만 마리였다. 충청남도가 조사한 결과는 30만 마리였다. 하지만 환경부는 5만 마리라고 우겼다. 환경부는 4대강 사업과 물고기 떼죽음은 관련성이 없다고까지 했다. 우리나라 생태환경 보전의 최후 보루여야 할 정부기관의 궤변. 환경단체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성토했지만 환경부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길 자처한 모양새였다.

대규모 물고기 학살이 일어나고 2년 뒤인 2014년에는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 호수와 저수지와 같이 고인물에 사는 생명체가 흐르는 강에 나타난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3m가 넘는 군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3개 보로 막힌 금강의 수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징후였다. 4대강사업에 부역했던 언론들도 대서특필했다.


 이름도 생경한 큰빗이끼벌래의 모습
이름도 생경한 큰빗이끼벌래의 모습 김종술

 세종보상류의 녹조
세종보상류의 녹조 이경호

2016년에는 금강을 코팅하듯이 창궐했던 큰빗이끼벌레가 사라졌다. 2~3급수에서 사는 이 생명체도 살 수 없을 정도의 수질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큰빗이끼벌레가 사라진 강에 녹조가 창궐하고, 4급수 지표 생물인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득시글하기 시작했다. 고인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금강이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수문 개방된 뒤 나타난 멸종위기종의 귀환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굳게 닫혔던 금강이 살아나기 시작한 건 문재인 정부 들어선 뒤 '업무지시 6호' 보개방 지시로 3개 보의 수문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4대강사업 공사 기간 3년, 담수 기간 6년 동안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의 환경활동가들의 끊임없는 요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란 이후 시민들이 내란을 막고 국가를 지켰든 환경시민이 강을 지켜냈다.

 2019년 2월 15일 4대강 보 개방, 지금까지 이렇게 변했습니다! 환경부카드 뉴스
2019년 2월 15일 4대강 보 개방, 지금까지 이렇게 변했습니다! 환경부카드 뉴스 환경부

자연의 회복은 역동적이었다. 금강 3개 보의 수문이 개방되자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창궐했던 시궁창 펄은 쓸려나갔고, 악취도 사라졌다. 풀과 버드나무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모래톱과 자갈톱이 드러났다. 이곳에 사라졌던 생명들이 깃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생명체가 천막농성 첫날 하중도에서 발견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였다. 이제 봄이면 흰목물떼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침묵의 강이었던 금강의 변화는 이렇게 새들의 소리로 시작되었다. 함께 모래톱에 번식하는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 쇠제비갈매기 역시 봄을 상징하는 새가 돼 갔다.

 다시 돌아온 쇠제비갈매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다시 돌아온 쇠제비갈매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이경호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미호종개와 흰수마자도 귀환했다. 세종보 농성장 앞뿐만 아니라 백제보, 공주보, 세종보 상류의 모래 여울에서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졌던 멸종위기종들이 잇달아 발견됐다. 수문이 개방으로 모래여울이 복원되면서 물속 생명들의 변화를 직접확인 할 수 있는 강이 됐다.

환경부도 흰수마자가 확인이 수생태계 건강성 향상이 있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수문개방이 가져온 생태계 회복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2019년 8월 21일 환경부 브리핑자료 캡쳐(흰수마자의 확인과 수생태건강성)
2019년 8월 21일 환경부 브리핑자료 캡쳐(흰수마자의 확인과 수생태건강성) 이경호

이후에도 꾸준히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확인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염풍뎅이와 수달, 황새, 그리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 등이 다시 출현하거나 개체수가 크게 늘었다.

겨울철새들의 증가세도 두드러졌다. 담수가 됐을 때 약 1840개체에 그쳤던 겨울철새가 수문개방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4819개체 까지 꾸준히 증가하하는 추세를 드러냈다. 세종보의 담수가 가져온 생태파괴를 오히려 역으로 입증해주는 결과인 것이다.

 조류조사결과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류조사결과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경호

세종보를 담수했을 때 대폭 줄거나 사라졌던 큰고니와 큰기러기, 황오리가 돌아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큰고니는 4대강사업을 진행하면서 완전히 사라졌었다. 세종보 수문 개방 뒤, 큰고니는 매년 48여 개체가 상류에서 월동하고 있으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고니도 목격되고 있다. 수금류의 복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멸종위기 생물들의 변화는 역동적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큰기러기의 경우, 4대강사업 이전 세종보 상류에 약 5000마리가 월동했었다. 세종보를 담수했던 6년 동안 거의 사라졌던 개체수가 수문 개방 후 2000마리로 회복됐다. 이 지역의 생태계가 4대강사업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회복된 자연 생태계는 강변으로 사람을 불러모았다. 다시 드러난 대규모 모래사장과 자갈밭을 거니는 발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수심 6m로 준설한 '접근 금지의 4대강'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세종보 농성장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자갈밭을 산책하면서 물수제비를 날리는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게 바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했던 원래의 강의 모습이었다.

 물길이 돌아온 금강에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물길이 돌아온 금강에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김병기

금강의 평화를 깬 윤석열 정부의 폭력 행정

이렇게 조성된 금강의 평화를 깬 건 윤석열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 때 4년여에 걸쳐 결정된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인 금강·영산강 보처리 결정을 단 15일만에 뒤집었다. 국가 물관리 정책과 민주적인 절차를 어긴 행정 폭거였다. 결국 전 정권에서의 세종보 해체 등의 결정을 없었던 일로 팽개친 채 일사천리로 30여억 원을 들여 세종보 보수공사를 벌였다.

이 과정 또한 폭력적이었다. 나는 박은영 보철거시민행동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세종보 보수공사장에서 당시 한화진 환경부장관에게 의견서를 전달하려고 차를 3분 정도 막아섰다가 경찰에 의해 고발당했다. 국가물관리위원회 공청회를 막아선 활동가의 손에 수갑을 채워 구속하기도 했고, 이후 기소까지 했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과잉 대응이다.

이런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환경부가 추진했던 게 세종보 재가동이었다. 세종보 보수공사를 끝낸 환경부는 2024년 5월부터 본격적인 담수에 착수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4월 29일, 세종보에 담수가 시작되면 곧바로 잠기는 하천부지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돌입한 건 윤석열 정부의 파괴적인 4대강 정책을 몸으로라도 막아보자는 발버둥이었다.

 세종보 농성장의 모습
세종보 농성장의 모습 김병기

다행히도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환경부를 막아냈다. 이는 온전히 금강변에 한 평 남짓한 자리를 차지한 채 위태롭게 버티고 선 농성천막을 방문해 지지와 연대 의사를 표명해 준 1만 5000여 명의 환경운동가와 시민들 덕분이다. 또한 불가피한 이유로 자신의 영토로 들어선 환경운동가들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준 수많은 생명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금강에서 만끽하는 자연의 위로... 우리는 승리한다

천막농성장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연이 건네는 축복같은 위로를 만끽할 수 있다. 가끔 강물 위로 머리만 빼꼼하게 내밀고 사라지는 수달과 배설로만 확인되는 삵의 존재. 천막 주변에 길을 낸 오소리와, 너구리, 고라니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건 팍팍해지기 쉬운 장기 풍찬노숙 생활의 큰 활력이다. 또 사시사철 다양한 종의 새들의 노래소리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농성장 바로 위쪽 교각의 뚫린 작은 구멍에서 번식했던 박새는 치열한 혈투 끝에 참새에게 둥지를 빼앗겼다. 위풍당당한 참새들이 매일 새끼에게 줄 먹이를 입에 물고 둥지로 들어가면서 농성천막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칠 때 밀려드는 짜릿함. 장기 농성에서 오는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사람과 생물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사람이라는 큰 천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두고 생물들은 생활한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 여기에 있던 생물들에게 이방인이었고 위협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 거리는 좁혀졌다. 새들도 동물들도 이제 농성장 가까이 온다. 우리가 농성장을 지킨 만큼 더 거리를 좁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일들이 현장에 함께 한다.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이 되었다. 금강은 여전히 유유자적하며 흐르고 있다. 천막농성장 앞에 세워놓은 생명의 깃발이 꺾이지 않았기에 지킬 수 있었던 풍경이다. 지난 1년간 농성장에서 직접 확인한 생명체는 250여종에 달한다. 법적보호종인 황새, 수염풍뎅이, 가창오리, 고니, 장다리물떼새, 발구지 등도 확인했다. 농성장이 지켜낸 생명들이다.

언제 끝날지 모른 지난한 싸움. 하지만 생명의 편에선 우리는 끝내 승리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의 농성을 통해 설령, 천막농성장이 침탈을 당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천막농성 1년 기획 기사]
1편 : "금모래빛 강변..." 이재명 후보의 이 말 기억한다 https://omn.kr/2dakk
2편 : 그의 소름 돋는 유언... "강은 멈추면 죽어요" https://omn.kr/2dbro
3편 : 낙동강 점령한 '조용한 살인자'... 정략이 과학을 죽였다 https://omn.kr/2ddpv
4편 : 365일 동안, 1만5천명이 '녹색 알' 품은 까닭 https://omn.kr/2ddqk
#세종보 #녹조 #대전환경운동연합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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