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린덴비연은 깃발은 나를 대표하는 나, 라고 했다.
영원한기록자
'내게 있던 것? 오직 혁명이지.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
등장인물의 독백인 '내게 있던 것? 오직 사랑이지'를 패러디했다. 마침 광장에 나가고 싶어하던 트친들은 작중에 혁명을 꿈꾸는 캐릭터도 등장하니 시국에 어울린다며 깃발을 환영했다. 클레이오가 지키는 수도 이름이 룬데인이고 실제로 수도방위대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그와 트친들은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기수존이 따로 마련되기까지는 그의 깃발 아래 트친들이 대여섯 명씩 꾸준히 있었고, 많을 때는 열다섯 명이 넘기도 했다.
"세월호 기억식 때는 쌍기를 들었어요. '웹소설독자연맹'과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을 깃대에 이어 붙였죠. 그때는 이미 팔 힘도 좋아지고 노하우도 생겨서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하하."
이후 룬데인수도방위대연합 깃발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깃발이 촉발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광장에 나오는 그의 마음이 가벼운 건 아니다. 부모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고, 신입생이 되어 자유를 누릴 시간에 거리로 나온다는 건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는 윤석열이 탈옥(!)한 뒤 매일 집회가 열렸을 때 수업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광장에 나왔고, 남태령 2차 때도 달려갔고 장애인 철폐의 날에도 현장에 있었다. 남태령에서는 극우들이 많아서 화장실이나 전철에 오갈 때 여럿이 같이 움직이는 '이동서비스'를 동지들과 함께 만들어 운영했다. 그때 극우들의 날것의 반응을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수업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수업을 빠진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고 수업중 라이브를 켜두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사실 나는 부모가 얼마나 무섭기에 그렇게까지 조심하나 싶어서 좀 더 깊게 질문을 해볼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수업을 빠지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집회에 나온다는 게 그에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이유로 지방으로 간다거나 1박을 하는 투쟁장에는 참석하기 어려웠다.
가끔 엠티나 오리엔테이션 등을 핑계 대기도 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라이브를 켜놓고 연대했다. 울산에서 있었던 이수기업 문화제 때는 다치고 잡혀간 동지들을 라이브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너무 괴로웠다. '연대투쟁가'를 부르며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라는 대목에 진심을 담아 분노했다.
"동지들이 생긴 뒤로는 내가 잡혀가는 것보다 동지들이 잡혀가서 고통받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나만 집에서 따뜻한 이불 덮고 뭐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가 있는 곳에서 호의호식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 몇몇 동지들은 내 본명을 알고 가족보다도 나에 대해 잘 아는 면이 있어요. 이제 그들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요. 내가 없는 곳에서 나의 동지들이 폭력을 겪지 않게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 다양한 투쟁템들
조용미
이전과 달리 경찰이 말벌동지들에게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공포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구시대에 고문실로 사용하던 시설이 잔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잡혀가는 두려움보다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잘못하면 아예 못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들의 폭력을 멈추게 하려면 한 명이라도 더 광장에 나와 머릿수를 채워야 한다.
"기수나 활동가분들이랑 대화를 해보면 절대 가벼운 마음이 아니에요. 비장해요. 탄핵이 지연되면서 우리는 점점 비장해졌고요, 구사대와 마트노조 용역들이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 더 비장함이 불타올랐어요."
그는 탄핵광장에 나오면서 세상이 넓어졌다고 한다. 덕질을 하던 작은 방에 문이 하나 생긴 거다. 그는 언제든지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 사회문제에 연대할 생각이다. 그러다 지치고 힘들 때가 오면 잠시 방으로 들어와 쉴 수도 있겠지만,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동안 안락한 방 안에서 팔짱을 끼고 원할 때만 살짝 커튼을 젖히고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이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관여를 하게 된 거죠."
그는 광장에서 자주 보던 정당에 가입했다. 노조에 가입할 생각도 있다. 하지만 정당이든 노조든 입고 벗을 수 있는 옷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매여 있기보다는 자유로운 연대를 택할 것 같다.
그는 이번 탄핵 과정에서 '80년의 광주가 24년의 대한민국을 살렸다'는 말이 가장 와닿았다. 한강 작가가 제주와 광주를 재조명한 것처럼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
"이번 광장은 소수자가 눈에 띄었어요. 성소수자뿐 아니라 이주민, 노동자, 해고자 등등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요. 덕후도 원래는 손가락질받던 이들이었죠. 그들이 평등 수칙을 믿고 목소리를 냈어요. 광장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게 이번 탄핵 정국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광장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정치가 이루어질 때 진짜 '우리는 성공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8세계에 있던 것도 오직 혁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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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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