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 송진우 탄신 135주년 및 서거 80주년 추모식 개최

'진보적 자유민주주의자' 고인의 삶 재조명

등록 2025.05.11 11:26수정 2025.05.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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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8일 오후 3시,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35주년 및 서거 80주기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와 동아일보사가 후원했으며, 약전 봉독을 맡은 김종인 박사(가인 김병로 선생 손자)를 비롯한 독립유공자 후손, 정관계 인사와 학계, 시민사회, 유족, 일반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서울음대 대학원생들의 식전기념공연
서울음대 대학원생들의 식전기념공연 이호인

고하 송진우(1890~1945) 선생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언론과 교육, 정치의 길을 통해 조국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민족 지도자다. 1919년 3·1운동을 기획하고, 천도교와 기독교 세력의 연합을 주도해 민족대표 33인의 공동 행동을 이끌었으며, 이후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에는 동아일보 창립에 참여하고 제3대·6대 사장을 역임, 문맹퇴치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브나로드 운동' 등을 통해 대중 계몽과 항일 문화운동을 이끌었다.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 동아일보가 무기 정간당하고 본인은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으며 광복 직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창당해 수석총무로 활동,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힘썼으나, 같은 해 12월 30일 한현우 등이 보낸 자객의 총격을 받고 서거했다. 정부는 1963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약전봉독중인 김종인 박사
약전봉독중인 김종인 박사 이호인

"항일의 투사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설계자로"

가장 먼저 추모사를 시작한 현병철 고하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고하 송진우 선생의 삶을 "두 시대의 선지자"로 정의하였다. 그는 "고하 선생은 일제에 맞서 네 차례나 투옥되고, 고문과 감시 속에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불굴의 독립운동가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1925년 동아일보에 실린 '세계 대세와 조선의 장래'를 언급하며 "고하는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미일 전쟁과 미소 냉전을 예견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방향까지 제시한 선각자였다"고 강조했다.

현 원장은 고하의 사상이 단지 반공에 머무르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정치적으로 자유를, 경제적으로는 독점 자본에 맞서는 경제민주주의를 지향했던 고하는 오늘날 진보적 자유민주주의자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고하의 글은 1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시대를 앞선 통찰이 담겨 있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어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대신해 기념사를 대독한 염정림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은 고하 선생의 공적을 조목조목 되짚으며 "그는 일제에 짓밟힌 민족 정체성을 되살리고자 신명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하가 중앙학교 교장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동아일보 사장으로 문맹퇴치운동, 브나로드운동, 일장기 말소 사건 등을 통해 항일 정신을 실천했다고 설명하며 "광복 후에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고하 선생 서거 80주기인 뜻깊은 해로, 국가보훈부는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을 정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적 예우의 의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추모사를 전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고하 송진우 선생은 항일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두 시대의 전환점에서 지도자로서 중추적 역할을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해방 직후 137일간의 짧은 정치 활동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한 국가 구상을 제시했으며,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총리는 2022년 출간된 유족 편찬 저서 <거인의 숨결>, 2024년 광복절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최근의 학술회의 등을 언급하며 "고하의 사상과 업적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은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지금, 고하 선생이 걸었던 길을 다시 조명하고 계승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무"라는 말로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의 기념사를 대독하는 염정림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의 기념사를 대독하는 염정림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이호인

 추모사를 전하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추모사를 전하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이호인

"송진우,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출발점"

이날 기념강연에서 이택선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고하의 자유민주주의 건국을 위한 구상과 행동'이라는 주제로 고하 송진우 선생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조명했다.

그는 먼저 고하를 둘러싼 세 가지 대표적 왜곡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첫째는 일제강점기 중 '친일' 논란이다. 이 교수는 "고하가 한국민주당을 창당했다는 이유로 전체 정당에 씌워진 비판이 부당하게 고하 개인에게까지 전가되었다"고 지적하며, "실제로 그는 27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일제의 협력 요청을 끝내 거절한 철저한 독립운동가였다"고 밝혔다.

둘째로 '극우 정치인'이라는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하는 오히려 반공을 기조로 하되, 사회주의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했던 중용의 정치인이며, 경제민주화를 지향한 진보적 자유민주주의자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하가 1945년 한국민주당 창당 강령에 '경제적 생존권'을 명시하고 사회민주주의적 인사들을 포용한 점을 들어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에 가까운 입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셋째로는 몽양 여운형과의 좌우합작 실패에 고하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고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존중하며 임정 중심의 건국을 주장했고, 건준과 인공의 실체를 간파하고 있었던 인물"이라며, "당시 공산주의 세력과의 통합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고하의 '진보적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고하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독점 자본을 경계했고, 민생 중심의 정책을 강조했다"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공공성과 형평성을 중시한 실천가였다"고 밝혔다. 특히 고하의 사상은 단순한 중도 우파가 아니라, 오늘날 서구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융합된 '제3의 길'적 정체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내렸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고하의 체제 선택과 농지개혁에 대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이룬 나라로 꼽히는데, 이는 고하의 영향 아래 형성된 한민당의 정책적 전향 덕분"이라며, "지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를 막기 위해 사유재산 일부를 포기한 인촌 김성수 등의 자세 역시 고하의 지도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그 출발점에 고하가 있었다"며, "그는 실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으로 재조명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서울대 음악대학 대학원생들의 식전 공연,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고하 송진우 AI 영상, 우주호, 서혜연 교수의 추모 공연 등 송진우 선생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송진우 선생의 손자인 송상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유족 대표인사를 통해 감사를 전하였으며, 참석자 전원에게는 송진우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한 연구서 <고하 송진우와 민족운동>가 배포되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AI 송진우'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AI 송진우' 이호인

 <고하 송진우 선생 추모의 노래>를 부르는 우주호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고하 송진우 선생 추모의 노래>를 부르는 우주호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호인

 고하 송진우의 손자로서 유족 대표인사를 전하는 송상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고하 송진우의 손자로서 유족 대표인사를 전하는 송상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호인

위기의 보수, '송진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일부 진보 역사학계에서는 고하 송진우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식민지 시기 '자치론'과 '민족개량주의'에 가까운 입장, 그리고 해방 후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한민당의 영도에 대한 지적은 일정 부분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고하 송진우가 재조명받아야 할 이유 역시 분명하다.

첫째, 그는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말기, 태평양 전쟁의 광풍 속에서 조선총독부의 극심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칭병을 이유로 칩거하며 어떠한 친일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이는 절친한 관계였던 인촌 김성수(1891~1955)가 같은 시기 학병 지원 독려 기고 및 연설 등으로 친일 논란에 휩싸인 것과 뚜렷이 대비되며, 고하가 민족의 자존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둘째, 그는 통합의 리더십을 지녔다. 3·1운동 당시 기독교 세력의 참여를 주도했으며, 1931년 만보산 사건으로 한중 간 민족감정이 악화되었을 때는 진상을 보도해 조선과 중국 민중 간의 화해를 도모한 고하 송진우는 해방 이후에 사회주의 계열의 김약수, 원세훈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는 등 '우파 빅텐트'식 연합정당 모델을 실현하고자 했다. 비록 고하의 갑작스러운 서거 이후 한민당이 급격히 우경화되었지만, 고하 생전의 한민당은 이념을 넘어 민족 통합을 지향했던 정당이었다.

셋째, 그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고하는 해방 정국에서 임시정부 봉대, 미군정 협력,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는 좌우 합작을 부정적으로 본 반공주의자였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생존권 보장을 중시하며 독점 자본을 비판하는 등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고 있었다. 1945년 한국민주당 창당 강령에 '경제적 민주주의'를 명시한 것, 그리고 고하가 남긴 글 곳곳에 등장하는 '자유권과 생존권의 조화'라는 개념은 그가 단지 이념적 자유주의자가 아닌, 실천적 자유민주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2024년 12·3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다시금 민주주의의 근간을 되짚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특히 보수 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혼란과 분열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와 노선의 공백을 절감하고 있다. 정의와 원칙 대신 계산과 침묵이 앞섰고,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자유도 민주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일부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매달리고, 특정 정치인 비판에만 열중하면서도 정작 미래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비겁한 정치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나 고하 송진우는 달랐다. 그는 반공과 친미를 명분 삼아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했고, 비판보다 대안을 먼저 고민했고, 외세와 국내 갈등 사이에서 이성적 설계자이자 통합의 조정자가 되고자 했다. 특히 1945년 말 신탁통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 고하는 격앙된 여론과 정치권의 극단적인 반탁 움직임 속에서도 미군정과의 정면충돌은 피해야 하며, 반탁은 국민운동으로 관철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실 확인도 안 된 오보에 휘둘리지 말고,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신념과,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 절제와 품격,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다.

오늘의 보수가 살 길은 과거 회귀도, 감정적 반발도 아니다. 갈등을 넘고, 이념의 대립을 뛰어넘어 자유와 통합, 그리고 도덕적 일관성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하 송진우가 우리에게 보여준 길이자, 오늘날 보수가 마땅히 회복해야 할 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티스토리에도 실립니다.
#고하송진우 #고하송진우기념사업회 #염정림 #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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