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개정증보판 표지 1995년 초판 출간 30년 만에 재출간된 이 책은, 혐오와 설득, 민주주의 언어 구조에 대한 통찰을 다시 던진다.
창비
설득 없는 사회에 남은 질문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프랑스 동료 베르트랑과의 갈등을 돌아보는 장면이다.
논쟁 끝에 홍세화는 깨달았다. 자신은 상대의 주장에 반박한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이렇게 썼다. "프랑스에선 주장과 주장이 싸우지만,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운다." 이 진단은 2025년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온라인 정치 담론은 의견 차이를 조정하려는 '설득'이 아니라, 상대를 지우고 혐오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그는 이민자이자 외국인으로 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동시에 의견을 나누고 존중받는 경험도 했다. 프랑스 사회도 완전하진 않지만, 타인을 '설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 존재했다. 반면 한국은 직업, 출신지, 성별 등 사소한 차이를 구실로 타인을 폄하하고 배제하는 언어에 더 익숙하다.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도 프랑스에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았지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하의 대상이 되곤 한다.
'다름'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정치와 언론은 물론, 일상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 상대를 설득하지 않고 조롱하는 언어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든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언어'를 민주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혐오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혐오 표현
혐오 표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다. 1970~80년대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는 데 쓰였고, 90년대에는 '홍어', '개쌍도' 같은 지역 비하 표현이 유행했다. 이후에는 '일베', '메갈리아' 등 각기 다른 성향의 커뮤니티들이 등장하며, 혐오의 언어는 온라인을 타고 더욱 빠르게 일상으로 번져갔다.
정치 성향을 조롱하는 '수꼴', '진보충', 성별을 비하하는 '한남', '페미', 종교를 겨냥한 '개독', '무슬림=테러범' 같은 혐오 표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러한 언어가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3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조사'(2023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 중 73%가 온라인상에서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의 확산은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유포되는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의 목소리를 위축시키고, 결국 침묵하게 만든다.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는 조롱이 '밈'으로 소비되며, 비하적 언어가 유행어처럼 퍼지기도 한다. 이는 혐오를 가볍게 만들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결과를 낳는다.
혐오를 동력 삼는 정치
정치 역시 혐오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왔다. '빨갱이'는 사라졌지만, '좌파', '종북', '진보충' 같은 새로운 낙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22년 대선 당시에도 '주사파', '북한 대변인', '여성가산점' 같은 표현이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며, 혐오 프레임이 선거 전략에 이용됐다. 정치권은 불편한 요구와 목소리를 '혐오의 언어'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대응해왔고, 2014년 세월호 유가족들을 '선동 세력'으로 규정하며 진상규명 요구를 정치적 의도로 몰았던 사례도 그 연장선에 있다.
특히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의 선거 홍보물과 유튜브 채널, SNS 계정을 중심으로 혐오 표현이 다시 정치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정당과 정치인은 '종북', '친중', '좌파 독재' 같은 자극적인 구호를 앞세워 진영 논리를 부추기고 대결 구도를 의도적으로 조성한다. 특정 지역이나 계층, 성별을 겨냥한 언어는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러한 혐오 프레임은 정책 중심의 논쟁을 밀어내고,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수차례 발의되고도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실은, 혐오가 제도적으로 방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6년 첫 발의 이후 지금까지 총 11건의 법안이 제출됐지만, 대부분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폐기되거나 계류됐다. 국회는 '사회적 합의 부족'을 이유로 들지만, 정작 그 합의를 만들기 위한 논의나 설득은 별다른 시도 없이 멈춰 있었다. 2023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역시 상임위 심사에 오르지 못한 채, 2025년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일부 보수 진영은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왜곡된 주장을 반복하며, 법안 자체를 혐오 프레임으로 뒤덮고 있다. 정치가 혐오를 바로잡기보다 그 확산을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사이, 혐오 표현은 일상과 정치 담론을 점점 더 침식해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똘레랑스'는 단순한 개인 윤리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언어 질서를 지탱하는 원칙이다. 홍세화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똘레랑스는 '관용'이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라 설명하며, 설득이 실종되고 혐오가 정치의 언어로 전환되는 사회에서는 공론장이 파괴되고 결국 다수의 권리까지 위협받는다고 경고한다. 특히 "똘레랑스는 권력이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시민이 권력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통찰은, 선거를 앞두고 혐오와 배제가 전략처럼 활용되는 지금의 정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정치권은 책임을 외면한 채, '용서'를 앞세운 화합과 통합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흐름은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이른바 '12.3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군 수뇌부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을 검토한 정황이 확인되며 논란이 일었다. 윤 전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국회와 시민사회는 이를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탄핵을 추진했다. 그러나 '화합'이라는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그 기반에 책임이 먼저 전제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똘레랑스가 작동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출발점이다.
혐오 표현은 단순한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존재를 배제하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폭력이다.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단지 말의 형식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려는 사회적 태도다. 홍세화가 말한 '설득의 언어'는 결국 시민사회가 혐오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복원해야 할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이다.
다시, 질문을 시작하며
'똘레랑스'는 단순한 관용이 아니다. 나와 다른 사상, 신념, 성 정체성, 출신, 피부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인의 태도다. 민주주의는 제도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태도로 타인을 대하느냐가 그 사회의 민주주의를 결정한다. 똘레랑스는 그런 일상의 언어와 태도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윤리이며, 혐오를 견디지 않는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제는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할 때다.
"우리는 정말,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권력의 잘못을 잊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묻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홍세화가 30년 전 던졌던 물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설득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다름을 지우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일상의 실천이다.
국회와 정부는 온라인 혐오 표현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모색 중이다.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강화를 위한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확대를 포함한 종합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지금도 댓글 한 줄, 정치인의 연설 한 마디, 언론의 제목 하나에서 비롯된 혐오 표현은 점점 더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오늘 우리가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떤 내일을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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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언어가 된 사회... 2000년생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펼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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