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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서 만들어낸 일자리... 결과는 놀라웠다

[농촌 쓰레기 문제 ②] 강원도 홍천군 마을환경동아리 '삼삼은구'와 노인일자리

등록 2025.05.22 18:52수정 2025.05.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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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삼은구가 활동하는 모습.
삼삼은구가 활동하는 모습. 삼삼은구 제공

농촌 쓰레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법 소각과 무단 투기, 분리배출의 어려움은 오래도록 지적돼왔지만, 정작 그 해결은 늘 난망한 과제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공공의 의지와 주민의 상상력이 맞물리면, 쓰레기 문제는 충분히 마을 단위에서도 풀 수 있는 일이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2리, '삼삼은구'는 그 가능성을 증명한 사례다. 마을환경동아리에서 시작된 이들의 실험은 마을에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마을 쓰레기 문제를 단순한 청소활동이 아닌,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공동체 회복의 기회로 전환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이 일을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해볼 순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작은 실험은 쓰레기 문제 해결을 넘어 농촌 일자리 문제, 자원 순환 구조 그리고 마을공동체 회복의 실마리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상상을 실현하다

 모아짱과 모아지기. 서로 초등학교 동창으로 끈끈한 사이다.
모아짱과 모아지기. 서로 초등학교 동창으로 끈끈한 사이다. 삼삼은구 제공

'마을자원순환텃밭 모아', 물걸2리 마을회관 앞에 자리한 이곳은 쓰레기 분리배출 공간이다. 1명의 모아짱과 3명의 모아지기가 이곳을 상시 관리하며 운영한다. 이들은 마을자원순환텃밭 '모아'를 관리하는 마을 인력이다. 재활용품 재분류 및 주변 정리에 앞장서는 '모아짱'이, 그를 도와 마을 주민들의 올바른 분리배출을 이끌어내는 '모아지기'가 있다. 단순한 마을 환경미화원에서 나아가 마을활동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다. 이들의 활동은 노인일자리로 운영되고 있다

2023년부터는 폐농약 폐농약병 수거함도 설치해 활동범위를 넓혔다. 철저한 분리배출을 통해 번 수익은 다시 마을 환경 활동에 쓰여 선순환된다. 이렇듯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환경 정비를 넘어 자원순환을 위한 마을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마을환경동아리 '삼삼은구'가 마을 쓰레기 문제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것은 2021년 봄. 마을 평상 만들기, 이웃집 눈 쓸기, 마을 어르신 돌봄 등 활동을 이어오다 홍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계기로 쓰레기 문제 해결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때 했던 상상이 지금의 배경이 됐죠. 마을 거점에 배출되는 쓰레기가 지저분해보이니, 마을에 클린하우스를 설치하고 이를 관리할 마을 환경미화원을 둔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었어요. 당시에는 단순히 쓰레기 배출 방법, 기후 위기 특강 등 주민교육 캠페인을 하는 데에 그쳤고요." - 삼삼은구 김은호 대표


2022년 강원지역문제해결플랫폼과의 만남으로 이 상상이 실현됐다.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 마을자원순환텃밭 모아, 이를 관리하는 모아짱·모아지기와 함께 실험이 진행된 것.

"실험 결과가 좋았죠. 마을에 쓰레기 무단투기 거점이 사라졌고, 모아짱과 모아지기는 단순한 마을 환경미화원이 아닌 마을활동가 역할까지 해냈어요. 실험이 끝난 뒤 마을총회에서 주민 95% 이상이 이 시스템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답을 주었고요."


이 과정을 지켜본 나기호 홍천군의회 의원은 '홍천군 쓰레기 줄이기와 자원재활용 촉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주민 주도 자원순환 활동에 군 차원의 지원을 가능케한 제도적 기반이 됐다. 일반쓰레기, 재활용품과 더불어 폐농약·폐농약병 수거시스템이 정리된 것도 이후의 일.

"텃밭모아를 운영해보니 폐농약·폐농약병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다른 마을에서 들고 오시는 경우도 있었고요. 폐농약·폐농약병을 분리배출할 장소가 마땅히 없다 보니 생긴 문제였죠. 분리배출의 필요성을 느끼고 따로 수거함을 만들게 됐어요."

보람된 일자리가 되도록

 삼삼은구가 활동하는 모습.
삼삼은구가 활동하는 모습. 삼삼은구 제공

텃밭모아 운영의 핵심은 모아짱과 모아지기. 배출된 재활용품을 재분류하고 투명페트를 발로 밟아 정돈하는 등 관리부터, 거동이 불편해 이곳까지 오지 못하는 가정에 정기적 방문, 쓰레기를 수거하는 역할도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김인호 대표는 이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을 지속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한 노인일자리가 아니라 마을활동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걸, 끊임없이 말씀해드리고 있어요. 주민분들도 그런 인식을 갖고 이분들을 대하시는 게 중요하고요. 또 이 활동으로 정당한 보수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랐어요. 지금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실 수 있도록요."

초기에는 노인공익활동사업 노인일자리로 매월 29만 원의 활동비가 지급됐다. 하지만 삼삼은구는 역할과 책임에 맞는 임금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자체와 사업체를 꾸준히 설득한 끝에 올해부터는 모아짱 일자리가 노인역량활용사업으로 전환돼 월 76만 원을 지원받게 됐다.

"3년 만의 결실이에요. 꾸준히 활동을 지속하면서 필요를 이야기하니 자연스럽게 설득이 됐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운도 좋았다 생각하고요(웃음)."

김인호 대표는 농촌 노인일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노인일자리 종류가 다양하지만, 농촌 특히 면 지역에는 노인일자리 종류가 한정돼 있어요. 이번에 모아짱 일자리를 통해 '마을에서 필요한 일을 발굴하고 이를 노인일자리에 직접 연결하면 지금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자리가 면 지역에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죠."

이 아쉬움을 발판삼아 삼삼은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지자체 지원과 공모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마을 자체 사업으로 자립하는 목표가 그것. 이를 위해 폐교를 활용한 제로웨이스트 공방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민들이 모여 꾸준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천연수세미 재배, 천연염색, 직물공예 및 판매를 통해 수익을 만들고 이를 확장해 새로운 양질의 노인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

물걸2리 마을과 삼삼은구 이야기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넘어 농촌 노인일자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마을과 지자체가 한마음으로 발맞출 때, 단단한 공동체 기반의 변화가 가능하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아니라 마을을 살리는 일. 주민의 목소리에 지자체가 귀 기울이고 적절한 지원을 더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풍경이다.

 제로웨이스트 고방에서 활동하는 주민들.
제로웨이스트 고방에서 활동하는 주민들. 삼삼은구 제공

월간옥이네 통권 95호(2025년 5월호)
글 한수진 사진 삼삼은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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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삼삼은구 #동아리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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