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라는 개념이 있다. 요즘 널리 공유되고 있는 개념으로, 경제생활에서 각자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 즉 돈이나 재정이 여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흔히들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에 부업까지 저마다 여건에 맞게 투자한다.
한 방의 기회를 엿보며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영끌'로 주식에 투자하는 청년 '개미'들도 많고, 한때 가상화폐인 코인 시장이 급부상했을 때엔 많은 청년들이 소위 '한 방'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초기에 투자금의 몇 배에서 몇십 배까지 벌고 빠진 '얼리어답터' 청년들도 있었지만 머리 꼭대기에서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이 더 많았다.
왜 다들 이렇게 한 방을 노리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경제상황이 좋지 못한 데다 지출은 늘어나는데 월급은 늘지 않기 때문이다. 저성장에 고물가 현상. 물가인상률과 비례하지 않은 월급인상률은 청년들로 하여금 투잡, 쓰리잡에 뛰어들게 했고, 주식과 코인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거기에 과거와 달리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청년세대들에게는 적성과 재미가 주요 키워드로 부상했다. 어차피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할 수도 없고, 일한다 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취향과 적성대로 일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에게는 딩크족, 파이어족, 욜로족, 오렌지족 등 시대 흐름과 소비 행태를 반영하는 별명들이 붙었다.
딩크족은 Double Income No Kids의 줄임말로 '맞벌이 무자녀 가정'을 뜻한다. 실제로 요즘 낮은 출생률로 많은 국가들이 고민한다. 그중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2023년 기준 0.78%에 불과해 OECD국가들 중 1위로 낮다. 수십 조 예산을 투자했지만 좀처럼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욜로족도 있다. You Only Live Once로 표현되는 욜로족은 한 번뿐인 인생, 자기 자신에게 더 투자하라고 말한다.
과거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꿈과 욕망을 자식을 잘 키우는 것에 투영해 왔는데 정작 자식 세대는 딩크족과 욜로족이 된 것이다. 부모세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세대 차이를 느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과연 딩크족과 욜로족이 진정 청년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었나 하는 점이다. 청년들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 '달관 세대'가 딩크족과 욜로족의 이면을 꼬집는다.
달관 세대는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해 취업 경쟁에 밀려 욕심 없이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세대를 의미한다. 죽도록 열심히 해봤자 월급쟁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청년들이 무기력해진 것이다. 부모들의 인생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그 결과는 그저 경쟁 시장에 내몰린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때, 치열하게 경쟁해봤자 실패와 좌절로 영혼까지 스크래치 당하는 현실에 차라리 달관해 버리는 것이다. 더 많이 벌기 위해 경쟁하는 대신 덜 벌고 덜 쓰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유행하기도 했다.
거기에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먹고사니즘'이라는 용어는 청년세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생계유지에 급급해 먹고사는 것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청년 세대에는 그 나이 대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 현실에서는 썩 맞지 않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며, 한 번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과거 세대가 견딘 온갖 갑질을 견뎌낼 의지가 없다. 그렇게 살면 뭐가 남느냐는 것이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원 하던 대기업에 입사해도 불과 몇 년 안에 퇴사하는 청년들도 상당수다. 일을 하면 할수록 기업은 성장하겠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이다. 의미 없는 노동력을 제공할 바엔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실패를 겪는다는 것이다. 사회 속의 개인이 애쓰면서 살아가는 사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점점 떨어진다. 이런 와중에 분단으로 인한 리스크는 우리 삶에 디폴트로 적용되고 있다. 거창한 통일담론은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말하는 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회문제 그 자체에 관심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돼버렸다.
사치가 된 소명 '통일'
보통 사회가 청년들에게 기대하는 청년의 패기라던가 사회의식, 혹은 소명이라는 담론은 이제 낯설다. 그런 얘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너무 무겁게 들린다. 큰 대출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숙명은 사회문제를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인식케 한다. 사회문제는 자조 섞인 조롱거리가 된다. 진지하고 복잡한 셈법이 들어가야 할 정치는 갈라치기 싸움으로 단순화된다. 세대가 서로를 탓하고, 남녀가 서로를 적대한다.
선거 시즌이 다가오면 정치 어젠다로 청년 문제가 호명된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 무수히 쏟아진다. 이런 일이 반복됐음에도 어째서 청년들의 삶은 나아지질 않을까? 청년들이 정치 문제에 등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들은 청년 세대를 위한 희망을 외치지만, 정작 청년 세대는 그런 희망에 관심이 없다. 그저 당장의 '경제적 안정'에 만 몰두하게 되었다.
한국에 정착한 북향민 청년들이라고 해서 남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 시급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수십 번이든 취업에 도전하고 그 도전이 좌절되면 창업에 뛰어든다. 익숙하게 실패를 겪는다. 탈북했다는 과거를 지녔기에 사회적 소명과 진로 방향에 대해서는 좀 더 다채로운 고민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슨 사회적 소명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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