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서울대평화통일연구원 통일의식 조사
서울대평화통일연구원
북향민들에게 통일이란
북향민들에게 통일은 어쩌면 매우 사적인 일이다. 그들 자신이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친구들이, 친척들이 현재 이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북향민들에게 통일은 단지 한반도가 더 잘살기 위해 두 국가가 통합하는 의미 정도가 아니다. 당장 가족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이들에게 통일은 사적인 것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통일이 됐으면 바라는 게 북향민들의 심정이다.
이렇다보니 북향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통일에 감정이입을 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통일문제에 과격하게 참여하기도 한다. 북한인권 투쟁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는 북한인권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빨갱이로 취급된다. 실제로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의 북향민은 통일을 소망하지만, 그렇다고 몰입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까지 하기에는 먹고사는 현실이 너무 분주하기 때문이다.
"통일? 나와 상관 없는 일,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통일은 '나의 일'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 돼 버렸다. 그저 남북관계가 있을 때에만 조금 관심이 커지는 정도이다. 남북관계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무관심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통일을 소망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자꾸 만들어 지기를 희망한다. 그런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도 그런 관심을 끄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우리네 식탁에 주요 화제가 될 만큼 북한의 체제변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던 시절이 있었다.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북한의 '파격적' 행보들이 이어졌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릴 북미정상회담까지 두 차례 일어났다. 결국 북미 간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진전되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가능성을 목격했다.
우리는 70년을 대결하다가 만났음에도 하루아침에 큰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냉전의 대결을 끝내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시기였다. 이런 기대감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키운다.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
통일이 국가 전략으로 국가의 일로만 계속 머문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통일의 당위성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세월을 다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게 통일이 국가의 일만이 아닌 우리 개인적인 삶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일, 우리 자신의 일로 여겨 질 수만 있다면 통일은 지금보다는 더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통일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남과 북이 한 국가, 즉 1국가로 1체제 또는 2체제로 통합되는 것이 통일이라고 말하겠지만 이제는 이런 통일을 기대하기에도 늦은 듯하다. 1국가 1체제의 통일은 필연적으로 남한의 방식으로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북한이 무너져야 한다는 걸 전제한다. 북한이 언제 무너질까.
어떤 이들은 지금처럼 고립시키면 무너질 것이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소위 '전략적 인내'와 비슷한 주장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방식의 통일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남는 길은 연합의 방식이나 협력 등의 방식으로 좁혀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바람에 협력도 당분간 불투명해졌다. 또 어떤 이는 그냥 이대로 이웃 국가로 살면서 필요하면 교류하는 방식도 좋다고 말한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주장일 수도 있다. 사실상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모아진다.
최장집 교수는 지금 한반도의 구조적 현실로는 통일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미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의 평화공존을 위해 통일이라는 목표를 제외 하고 남북이 각자 독립된 국가로 평화 공존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양국체제론을 주장한 것이다. 반면 백낙청 교수는 평화공존과 통일은 함께 간다며 양국체제론은 '분단 기득권층의 권력을 더욱 공고화하고 연장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 만들기 이사장은 남북이 정치로 합의하지 못하면 가능한 것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과 교류하면서 북한 인민들이 한국에 매력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며 '매력국가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또한 통일을 생각할 때 우리가 참고해 볼만한 이야기다.
학자나 전문가들 모두 저마다 의미 있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로만 멈춰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각 영역에서 이런 주제로 벌이는 구체적 논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념 논쟁의 테두리 안에 멈춰 있다. 색깔론, 이념 공세, 종북론 등 냉전담론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해 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전향 했느냐, 투항했느냐는 식의 사상검증이 버젓이 반복된다.
어느 날 갑자기 홍범도 장군이 빨갱이가 되는 이상한 대한민국, K-열풍이 세계를 매혹시키는 와중에 계엄선포로 내란이 발생하는 이상한 대한민국, 이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세대가 어떻게 통일을 자기 일처럼 고민을 하겠는가. 이제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현실적 대안을 찾아 논쟁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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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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