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1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에서 거제 교제 폭력 사망사건의 가해남성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있은 뒤 여성단체들이 법정동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성효
가해 남성 측은 항소심에서 스토킹범죄처벌법에 해당하지 않고 형량이 무겁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달기 재판장은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반복적으로 전화를 하고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사실을 열거하면서 "피해자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으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평가된다"라고 판단했다.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 민 재판장은 가해자가 누워 있던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행위를 열거하면서 "건장한 체구의 성인 남성이 체격 차이가 현저한 피해여성한테 폭력을 행사했다"라고 설명했다.
민 재판장은 '무차별 폭행' 등의 표현을 하면서 "사람의 신체 중 머리와 목 부분은 생명에 주요한 부분이고, 강하게 가격할 경우 생명에 중대한 위험이 될 수 있다"라며 "상해 행위가 일반적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객관적인 예견을 할 수 있음이 상당하다"라고 판단했다.
민 재판장은 가해남성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온전하게 인정하지 않고 유족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법정 태도를 보면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 재판장은 "우발적 범행에 이르게 되었고, 얼굴이 부어 오르는 외상이 나타나자 범행을 중단하고 병원에 가도록 한 것으로 볼 때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보여지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여지지 않는다"라며 "연령 등을 종합해 판단했다"라고 판결했다.
피해여성 아버지 "가해자는 징역 12년 살고 나와도 서른살, 우리 딸은..."
▲ 교제살인 피해자 아빠의 호소 “다시는 이런 죽음 없어야” [현장영상] ⓒ 윤성효
유족과 여성단체들은 항소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했다. 이들은 창원지법 법정동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여성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여성의 아버지는 "딸이 사망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진짜 힘없이 달려왔다. 항소심 판결에 만족스럽지 않다. 무기징역이나 살인죄에 준하는 판결을 기대했다"라며 "사람의 목숨은 하나다. 판사가 말했듯이 초범은 사람을 죽여도 괜찮나. 가해자는 징역 12년을 살고 나와도 서른 살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살아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제 딸은 돌아올 수가 없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지금도 제 딸이 아빠 하면서 들어올 것 같다"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들께 감사드리고 지지하고 엄호해준 여성단체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지원해줄 수 있는 단체가 있느냐는 전화를 제가 먼저 받았다. 그 밤중에 전화를 받고, 금요일 밤이었고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으며, 지원해 주지 않으면 고인은 화장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잊혀지는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라며 "전화를 돌려 상담소는 영안실로 달려갔고, 여성시민사회단체는 그 밤중에 사실 확인하느라 밤늦게까지 정신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그 전화를 받았던 저는 오늘 법정에서 상해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로 판결이 날 거라는 기적을 바랐다"라며 "얼마나 여성이 더 죽어야 법을 바꿀 것이냐. 데이트 폭력 아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살인이고, 교제폭력이고 엄연한 살인이다. 고인은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듣지 않으려고 했을 때 교제폭력, 살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떠났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판부 판결을 보고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겠나"

▲ 5월 21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에서 거제 교제 폭력 사망사건의 가해남성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있은 뒤 여성단체들이 법정동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성효
박진숙 여성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 재판부도 인정했다. 사람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집중적으로 폭행했다면, 사망에 이를 수 있었음을 가해자는 알았을 것이라고 민달기 재판장도 인정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장 변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해치사로 처벌한다면 가중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대로 징역 12년이 말이 되느냐. 초범이라서 감형이라는 말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 심지어 지난 1년 동안 단 한번도 죽을 거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유족한데 피해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재판부가 인정해 놓고도 가중처벌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했다"라며 "재판부는 여전히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교제폭력으로 살인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재판부 판결을 지켜보고 국민,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겠나. 내가, 엄마, 동생, 친구, 가족, 주민들이 안전할 거라고 검찰과 재판부를 믿고 살 수 있겠나. 반성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은 회견문을 통해 "1심과 동일한 징역 12년은 엄벌이라 할 수 없다. 폭력의 수위나 반복성, 피해자의 고통,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의 태도, 유족들의 고통을 헤아려 볼 때 1심 선고형보다 중형을 선고해야 함이 마땅했다"라며 "가해자의 범행은 일반적인 상해치사가 아니라 가중처벌되었어야 할 악질적인 범죄였다"라고 했다.
이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은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살인죄가 아니라 상해치사로 적용돼 왔다. 친밀한 관계 내의 상해치사는 친구 또는 이웃 끼리 우발적인 일회성의 몸싸움에서 발생하는 폭행치사와 엄연히 다르며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신체적, 관계적 우위에서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행이다"라고 했다.
이어 "거제 교제폭력 살인사건 가해자는 피해자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헤어지고 싶어 하는 피해자에게 협박과 폭행을 일삼아 관계를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라며 "피해자는 결국 사망에 이를 때까지 가해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은 "국가는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을 전면 개선하라", "국가는 친밀한 관계 내 폭행, 상해치사 범죄에 양형을 가중하라", "국가는 반의사불벌죄폐지, 피해자 보호조치 등 살 수 있는 피해자를 살려내라", "국가는 교제폭력처벌법을 조속히 마련하라"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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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교제폭력 사망사건, 2심도 징역 12년 "감옥 나와도 3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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