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경직된 사회에 우리가 균열 내자

[조경일의 '리얼리티와 유니티'] (21) 청년들의 몫이 돼버린 통일, 우리가 감당하자

등록 2025.05.24 19:40수정 2025.05.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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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통일인가

2018년 남북대화가 진전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서로 갑론을박을 주고받았다. 종전 선언이든 평화체제 구축이든 청년 세대는 좀처럼 공감하지 못한다. 왜 종전이 먼저인지, 왜 평화가 먼저인지, 그런 것들이 어째서 중요한지 청년들 입장에서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통일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진보든 보수든 각자가 말하는 통일 정책만 있었을 뿐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통일이 어떤 통일인지 저마다 자기 입장 속에서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만 주장할 뿐이니, 통일을 소망하는 내 입장에서는 매우 답답한 심정이다.

만약 통일이 실제로 진행됐을 때 생기는 영향과 파급력은, 그것이 좋은 기회이든 아니면 나쁜 부담이든, 청년 세대가 받게 된다. 기존 세대가 늙어 힘을 잃을 때, 과업을 이어서 해야 하는 사람들 역시 청년 세대이다. 청년 세대에게 전혀 비전이 없는 통일이라면, 더 나은 사회를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책무 관점에서 기성 세대는 그런 통일을 추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우리 세대가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우리 세대에게 묻지 않을까?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통일은 청년 세대의 몫인 것 같은 데, 어째서 우리 세대는 침묵하며, 사회는 그 침묵을 방치하는 것일까?

남과 북은 이미 70여 년을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로 단절된 채 살아왔다. '한민족론'은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변했다. 그렇게 다르게 살아왔음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이제 남과 북은 동질감 회복을 위해서든 아니면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려는 목적으로든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해야 한다. 체제 경쟁과 이념 갈등, 정치적 논리로 비정치적인 것까지 서로 이용하다 보니 대화가 단절되었다.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북한 정권에 있다. 그러나 남 탓 하는 쉬운 태도가 아닌 우리에게도 문제가 없었는지 두루 성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소모하는 통일 담론은 우리 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어차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 뒤집어지는 정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떨어트린다. 클리셰가 반복되는 쇼는 진부하다. 진지한 겉치레보다는 재미있는 쇼가 낫고, 먼 산을 가리키는 관심 없는 정책보다 지금 당장의 생존을 위한 지원 정책이 낫다.

청년 세대가 바보는 아니다. 통일 정책?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엎어질 정책이라는 것을 안다. 청년들에게 통일은 더 이상 필수적인 과정이 아니다. 굳이 통일이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감이 곳곳에 조용히 퍼져 있다. 어른 세대는 목소리를 높이며 싸웠지만 청년 세대는 무관심으로 싸운다. 그럼에도 통일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더 크게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의 위협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러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철조망을 없애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하는 게 필요하고, 또 그런 일들이 저마다 막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런 에너지를 공급할 동력을 위해서라도 통일은 필요하다.

그러려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어째서 통일인지, 어떤 통일인지, 그런 기초적인 얘기부터 다시 해봤으면 한다. 통일은 우리가 마지막에 도달해야 하는 종착점이다. 우선 남북 양국 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 역사적 사명이다. 그 모습이 흡수된 대한민국 체제의 통일일지, 또 다른 체제의 통일일지는 나중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논쟁은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의 통일만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깊숙한 골을 들여다보면, 결국 분단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발견한다. 우리는 통일 이전에 우리 내부에 회복해야 할 상처가 너무 크고 많은 것 같다. 통일에 앞서 트라우마 치유가 먼저 해야 할 순리가 아닐까. 마음에 평화가 없는데 무슨 통일이란 말인가. 그래서 평화가 먼저다.


그동안 남북은 의미 있는 합의들을 만들어 왔다. 지금껏 국제사회에서, 또 우리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불량한 이웃', '불편한 이웃'이라는 인식이 심화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선언, 4·27 판문점 선언, 9·19 군사합의 등 그동안 남과 북이 체결한 합의들은 상호인정, 즉 공존을 전제로 했다. '같이 살든 따로 살든'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정상적인 2국가 체제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일이 안 된 채 한 세대가 될지 두 세대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시간의 문제다.

청년들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따로 사는 것에 익숙해 있고, 오히려 이대로 사는 게 낫다는 여론이 높다. 지금 젊은 세대는 민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낮아지고, 오히려 평화적 공존, 즉 급격한 변화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통일을 원하지만, 현재의 위치 변화는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통일은 여전히 '가치'라는 담론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머리가 만들어 내는 가치는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몸은 머리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다. 몸은 피곤하고 아프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머리와 몸이다.


나는 통일을 소망한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북한의 독재정권이 무너져서 당장 통일이 되면 좋겠다. 그런데 이건 나의 바람일 뿐 현실성이 없다. 독일처럼 갑작스런 통일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너무 먼 나라 이야기다. 무력으로 상대를 흡수하는 통일은 안 된다. 전쟁이 난다. 수많은 국민의 목숨이 무력통일보다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는 통일은 당장에 생겨나지 않는다. 어쩌면 몇 세대가 더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급한 마음 버린 채, 통일은 다음 세대에게 맡겨놓고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 사회도 남북 체제 공존에 대해 진지한 논의와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지금 북한을 쓰러뜨릴 수 없다. 북한붕괴론에 기댄 지난 30년은 실패다. 그렇다면 공존 외엔 뾰족한 대안이 없다. 북한이라는 독재 체제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느냐는 거부감을 나도 안다. 지금보다 더 심한 거부감과 적대심을 갖고도 남북은 70여 년을 공존해 살아왔다. 대한민국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것처럼 북한 정권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공존을 말하고 추진하더라도 별반 달라질 게 없다.

남북한 공존은 불가능할까

북한을 정상적인 나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 간의 교류를 정상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우리가 지금의 북한을 어떤 방식으로든 무너뜨릴 수 없다면, 무시와 제재, 그리고 압박으로도 바꾸지 못했다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적극적인 교류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 주장이다. 물론 이런 식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조심스럽다. 특히 나 같은 북향민이 이런 주장을 하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일도 언젠가는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과 공존해 왔다. 하지만 이 공존에는 좀 신비한 구석이 있다. 우리는 북한을 잘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북한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북한이 철저한 독재 국가이며 극심한 인권 탄압 국가라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그런 모진 사회 속에서 북한 인민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시 말하면 지금껏 진행 돼 온 남북 공존은 무지 속의 공존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무지가 아닌 지식 속의 공존을 실험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특히 대한민국 관점에서는 북한 인민들의 평범한 삶을 제대로 알면서 정보를 널리 공유하면서 교류하는 그런 공존을 말이다.

통일,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올 수도 있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통일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갑자기 통일이 되면 우리 세대의 인생이 바뀐다. 그러므로 기성 세대에게 당하지 말고 청년 세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통일은 멀다. 여기서부터 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 몫의 짐을 져야 한다. 이 경우 청년 세대에게는, 아는 게 힘이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바로 우리가 대화해야 할 대상인 북한 인민들의 진짜 평범한 삶이다. 이것을 알려면 만나봐야 한다. 이걸 가능케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바로 평범한 교류의 보장이다. 그런데 교류를 말하면 북한정권에 좋은 일만 한다면서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고 반응한다. 너무 경직됐다. 청년들이여, 경직된 사회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우리가 하자. 우리의 시련을 우리 자녀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자.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군(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통일 #북한이탈주민 #청년세대 #통일담론 #조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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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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