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정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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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탄 냄비 오래되었으니까 버리자." 엄마는 쏜살같이 냄비를 낚아채서 숨기셨다. 엄마가 숨겨둔 냄비는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도 먹이감을 낚아채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자식들이 가끔씩 나타나서 오랫동안 애지중지했던 세간을 자꾸 버리는 모습에 뿔이 나신게 분명하다. 한동안 가져와서 쓰기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리기도 하고, 나눔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부모님 댁에서 모두 해결하고 돌아온다. 가져올 만한 물건은 이미 대부분 가져왔으니, 조금이라도 실어 나르는 수고스러움을 덜기 위한 방법이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부모님 댁을 보면서, 매일 무언가를 주워오는 엄마를 보면서 이제는 내가 비밀 탐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께서 모두 주간보호센터에 계시는 시간에 몰래 집에 들어간다. 엄마는 2년 전부터, 아빠는 1년 전부터 치매로 인해 등급을 받아 센터에 다니시고 계신다.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가 탐정처럼 샅샅이 수색한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에서 주워온 물건, 엄마가 숨겨둔 물건, 주워온 꽃과 나뭇가지, 오래된 세간살이가 주된 목표물이다.
목표물이 탐지됐으면 먼 거리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에, 일반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차곡차곡 버린다. 일부러 먼 곳까지 가는 이유는 혹시라도 버린 물건이 집으로 돌아오는 사태를 막는 특단의 대처다.
부모님께서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실 시간이 되면 빠르게 뒷수습을 한다. 모든 흔적과 증거는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부모님과 반갑게 인사하며,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온다. 치매 가족의 탐정 놀이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처음에는 이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이 계속 발생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냥 내가 엄마의 '비밀 엄마'가 되기로 했다. 물건이 늘어나도, 쓰레기가 늘어나도 탐정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며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물론 또 다른 물건으로 숨고 숨기는 숨바꼭질은 계속될 것이고,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탐정이니 괜찮다. 또 다시 수색 작전을 펼쳐서 탐정 놀이를 반복하면 된다.
엄마의 비밀 엄마는 탐정 역할도 충실히 해야만 자격이 있다. 탐정은 주어진 문제에 늘 정면으로 맞설 준비를 한다. 탐정은 문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지혜롭게 해결한다. 탐정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응한다. 치매 부모를 돌보는 긴 여정도 이렇게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다짐한다. 우리 가족의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하겠다고, 침착하게 행동하겠다고 말이다.
내게도 탐정 놀이에 꼭 필요한 나침반이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숨겨둔 물건도 찾고, 부모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는 나침반이 있기를. 그리고 그 마법의 나침반으로 모든 치매 가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찾는 날이 다가오기를. 모두의 노력으로 탐정이 되고 싶은 치매 가족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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