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집회에 참여 중인 이재정 윤퇴청 대표(오른쪽), 김나율 활동가(왼쪽).
이재정 제공
- 청년의 관점에서 광장을 열고 윤석열 탄핵을 외친다는 건 어떤 의미였던 걸까요?
철규 : "제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나이대인데요, 두 참사의 순간들이 무척 생생해요. 이번 광장을 통해 청년들은 이기적이고 각자도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프레임을 극복해냈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는 세대로 거듭났다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바뀌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굳어버릴 것 같은 사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고 느낍니다. 그 중심에 소위 '말벌 시민'들을 포함한 청년들이 있는 거고요."
- 그런 와중에, 당시 극우 청년들의 발흥이 더 주목받았던 것 같아요. 고민이 많아지셨겠어요,
재정 : "탄핵 집회는 진보화된 여성들만 오는 곳이고, 반대 집회는 극우화된 남성들만 가는 곳이라는 프레임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이런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는 언론들이 많았거든요. 다만 완전히 '저쪽'으로 가버린 특정 집단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철규 : "저는 극우 청년의 행태를 경찰이 방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극우 집단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직접 행사하고 있음에도 제지를 하려는 의지가 안 보여요. 특히 안국역에서 극우 청년들이 접근해서 위협을 가하니까 제가 경찰한테 제지 안 하고 뭐 하냐고 명확하게 말했단 말이에요. 근데 경찰은 귀찮다는 듯이 그냥 빨리 지나가라고만 했죠. 이런 모습들이 방관을 넘어서 극우 청년이 발흥할 수 있는 판을 깔아서 부추기는 일이 된다고 생각해요."
- 조직을 개편하여 '광장을 잇는 윤퇴청'으로 활동하신다고요. 개편 과정에서 있었던 고민들이 있었다면.
재정 : "탄핵이 됐다고 이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아쉽다는 마음이 컸죠. 특히 윤퇴청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애정을 품고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광장의 반가운 얼굴이 되자는 의지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일상의 광장을 만들면서 광장의 목소리를 정치적 변화로 끌어내자는 비전을 '광장을 잇다'는 컨셉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나율 : "광장에서 나온 구호 중에 '윤석열은 광장으로 우리는 일상으로'가 있었잖아요. 광장 말고 집에서 따뜻한 밥 먹으면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 게 당연하죠. 그런데 우리가 원래 살던 일상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같은 사람들의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우리가 그런 수준의 일상 회복을 하기 위해 광장에 나섰던 게 아니니, 일상 속에서 광장을 열자는 재정의 말을 크게 공감을 하게 됐어요. 광장이 남아 있는 일상이라면 돌아가고 싶은 일상일 수 있겠다 싶은 거죠."
- 탄핵 이후, 사람들이 관심을 좀 더 가져줬으면 하는 의제가 있으신가요.
나율 : "남태령과 한남동에서 농성장을 지키면서, 하루 이틀 거리에서 밤새우는 것도 건강에 무리가 많이 간다는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거리에서 사는 것이 일상인 홈리스 분들은 어떨지 이번 기회에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정 : "광장 자주 오시는 분 중에는 나는 이렇게 광장 계속 나와서 싸우고 있는데 정작 내 일터에서 임금을 떼먹히거나 대학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들다는 분들이 계세요. 각자의 일상적 공간에서 광장을 이어나가는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철규 : "적어도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존재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죠. 차별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는 소수자들이 너무 많아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시급합니다. 또, 노동자들도 고공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도 너무 비참하죠. 내일모레(5월 21일)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노동자들이 고공에 오른 지 500일이 되는 날이에요. 별 탈 없이 건강하게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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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있던 그 얼굴들... 광장을 잇고 사람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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