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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후' 대선토론, 그런데 이 질문이 빠졌다

검증 안 된 가짜뉴스, 일방적 주장만 난무해 실망... 국격에 맞게 '시대의 질문'을 담아냈으면

등록 2025.05.26 17:55수정 2025.05.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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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김문수 국민의힘·권영국 민주노동당·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김문수 국민의힘·권영국 민주노동당·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요즘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와닿는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후위기 대응방안입니다. 날이 갈수록 폭염, 혹한 등 극한의 기후와 이로 인한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각 후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계신지, 에너지 정책 포함해서 기후위기 관련 공약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23일 밤 제21대 조기대선 후보자 초청 2차 토론회(사회분야)의 진행을 맡은 이윤희 KBS 기자의 진행발언이다. '기후 위기 대응방안'이 대선 토론회 사상 처음으로 공식 주제로 채택된 순간이었다. 기후는 사회분야 토론 주제 중 '사회갈등', '연금의료'에 이어 세 번째 공식 토론 주제로 채택되어 약 33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1997년 대선 TV토론회가 실시된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기후를 공식토론주제로 채택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

그러나, 이 날 밤 첫 기후토론 영상을 옆 사람에게 쉽게 추천해드리지는 못할 것 같다. 의문의 1패, 이 날 토론회는 세계 10대 교역국이자 OECD 5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대한민국의 차기 대권주자들끼리의 기후대응토론이라기에는 누가봐도 빈약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 거칠게 말하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10년 뒤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식의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이 토론 대부분을 지배하는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와 일방적 주장들이 난무했으니까.

적어도 이런 질문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어야 했다.

(1) 국가온실가스저감목표 : 지난 정부 때 국가온실가스저감목표를 실현불가능하다며 하향조정했습니다. 이에 대한 후보님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온실가스저감목표야말로 5년 임기내내 기후대응 정책을 통한 각종 규제와 지원의 기준이 되는 총론으로, 전기차나 수소차 보조금 액수와 규모, 심지어 배달용 전기스쿠터 지원규모나 관리비 반값 제로에너지아파트 신축규모에도 영향을 미치는 매우 근원적인 질문이다.)

(2) 대형산불 대응 : 올해 초 LA 산불과 지난 4월 영남 산불 등 대형산불이 기후위기로 더 잦아지고 대형화될 전망인 가운데 후보님들은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재난 대응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에 대한 견해, 국토의 70% 면적을 점하는 산림에 대한 관리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단히 논쟁적이면서 꼭 필요한 질문이다.)

(3) 자원순환 :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감축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어떻게 플라스틱을 줄일 것인지 세부각론에서는 산유국과 소비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입니다. 후보님들은 어떻게 플라스틱 감축을 해야한다고 보시나요? (단순히 종이빨대-플라스틱 빨대 선택이 아니라 일회용품을 포함한 수도권 매립지, 방대한 폐기물 처리에 대한 자원순환경제 시스템에 대한 미래지향적 토론이다.)


(4) 에너지전환 : 재생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늘려가실 생각입니까?
(모든 후보들이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고, 국제 사회 뿐 아니라 우리 정부 에너지정책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가 수립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난개발로 인한 주민반발 우려, 송전망 부족으로 인한 맹지개발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뒤떨어진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나갈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 토론이 모두 생략된 채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원전 토론만 이뤄졌다. 왜일까, 나는 토론 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걸린다.


우선, 무임승차 부작용이다. '기후'라는 숙제를 다들 열심히 풀어서 공약으로 제출했는데, 딱 한 분은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 제출한 10대 공약에서 기후나 관련 정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숙제를 안 낸 거다. 그렇게 숙제를 안 낸 C후보가 숙제를 열심히 해서 제출한 A후보를 검증한다. 이것도 모르냐, 이건 또 뭐냐, 이건 왜 세부내용이 없느냐, 그러자 숨죽이고 있던 B후보가 맞아맞아 하면서 함께 A후보를 공격한다. B후보 역시 A나 D후보에 비해 숙제를 덜 한 후보였는데, 토론회장에서는 열심히 공격모드로 전환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던 D후보는 정말 숙제를 열심히 해서 할 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이없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참전, 그 역시 자신이 할 말의 절반도 하지 못한 채 귀중한 시간을 날린다. 결과적으로 숙제를 해온 3명의 후보들은 자신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숙제 안 한 1명 후보는 안 해 온 티 전혀 나지 않고 토론을 주도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미래지향적인가, 관련 분야 공약을 전혀 제출하지 않은 후보에게도 똑같은 발언권을 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토론방식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두 번째는 자유방임 토론의 한계이다. '기후 대응'은 파리 협정 이후 국제 사회가 합의한 일정정도 룰이 정해져있기에 이념이나 정파적 입장이 다른 사안에 비해 옅다.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미국이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공동대응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주최측이 주제만 던지고 진행은 후보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는 식의 자유방임 토론이 된다면, 상대방 공격에 유리한 쟁점사안의 일부만에 얽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에는, 다양한 언론사의 기후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논의해 현 정부와 다음 정부의 기후의제, 후보들 공약상의 기후쟁점을 취합해 공통의 질문을 던지고 난 뒤, 자유토론을 실시하는 형태로 보다 고도화된 기후토론이 구성되면 어떨까.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2030년 무렵이야말로 지구촌 기후대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모처럼 채택된 기후 대선 토론이 국격에 맞게 '시대의 질문'을 담아냈으면 좋겠다.

[인용자료]
-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초청 2차토론회 영상 (2025.5.23, https://www.youtube.com/live/cx8jxiPD7x4?si=-bMAYWpbywCaD_rN)
덧붙이는 글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의 매일 기후변화 방송으로 FM 99.9 OBS 라디오를 통해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매일 2시간씩 방송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대통령선거 #대선토론 #TV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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