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5.26 17:33수정 2025.05.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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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해변을 걷는 일은 삶의 속도를 낮추는 일이다. 하루 시작을 파도 소리로 여는 나에게, 모래는 이따금 스승이 된다. 발바닥으로 세상의 결을 느끼며 걷는 그 길 위에서, 며칠 전 나는 '갯메꽃'을 만났다.
한 줌의 바람에도 흔들릴 것 같은 잎. 그러나 그 잎은 짙고, 줄기는 땅을 기며 멀리까지 이어진다. 염분 많은 모래밭에서 피어난 분홍빛 나팔꽃. 그 작은 생명은 마치 '살아남는 법'을 아는 자처럼 보였다. 나는 그 앞에 멈췄다. 잠시 숨을 고르고, 땅과 더 가까운 자세로 그 존재를 바라봤다.
갯메꽃은 높이 자라지 않는다. 바닷바람은 모든 것을 쓰러뜨리기에, 이 식물은 '기어가는 법'을 택했다. 대신 줄기를 길게 뻗고, 뿌리는 깊이 내린다. 자신이 자랄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와 타협하는 것이다.

▲갯메꽃 동해 추암 해변에 핀 '갯메꽃'이 가르쳐주는 '그 낮고도 단단한 지혜'
조연섭
그 모습이 마치 나 자신, 혹은 도시를 견디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나는 해변을 맨발로 걷기 시작하며 비로소 느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꼭 빠르거나 강한 데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해변의 갯메꽃은 말한다. 낮은 곳에서부터 연결되어야 바닷바람을 견딜 수 있다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요한 싸움이 있다고.
걷는 동안 내 발은 더 단단해졌다. 그 단단함이 바로 '뿌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내가 뿌리내리는 자리는, 바로 내가 매일 걷는 그 자리임을 갯메꽃이 일깨워주었다.
갯메꽃 앞에 멈춰 선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나?" "나는 무엇을 위에 나를 세우고 있는가?"
맨발로 해변을 걷는 사람은 압박을 피하지 않는다. 발바닥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촉감으로 세계를 배운다. 갯메꽃도 그렇다. 바람을 밀어내지 않고 통과시키며,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는다.
그 지혜는 걷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철학이다. 피하려 하지 말 것. 견디되, 무너지지 말 것. 아름다움은 그 모든 과정 끝에서 피어난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바다를 따라, 꽃을 따라. 갯메꽃이 가르쳐준 그 낮고도 단단한 지혜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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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 견디고 피어나는 이 꽃이 가르쳐주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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